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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꽂이 Feb 07. 2023

함께 해줘서 고마워

최고의 선물

  나에게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은 그다지 좋은 기억이 아니다. 사실 안 좋은 기억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2018년 2월 28일은 내가 우리 가족의 반려동물이자 소중한 가족 구성원이었던 호동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것을 본 날이다.


  2003년 내가 초등학교 3학년에서 4학년으로 올라가던 해에 뭣도 모르던 나는 집 가는 길에 위치한 동물병원 창가에 있는 자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를 보고 어머니를 졸랐다. 그렇게 만남부터 올해까지 총 15년을 함께 했다. 수의사 선생님께서 우리 가족을 향해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을 때부터 난 이미 무너졌다. 상황이 급속도로 안 좋아지기 시작한 이후로 변해버린 호동이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희망을 기대하기는 너무나도 어려워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며칠 뒤 호동이는 우리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닥터 수스는 말했다.

순간의 소중함은 그것이 추억이 될 때까지 모른다.


  호동이를 보면 정말 그랬다. 우리 집에서 항상 같은 곳에서 지내는 호동이를 볼 때마다 소중함을 느끼려고 하지 않았다. 반려동물의 삶은 우리보다 짧기에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아껴주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호동이를 떠나보내고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슬픔이 아니라 극에 달한 미안함이었다. 너무 미안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온몸으로 퍼졌다. 슬퍼하는 주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축복받은 반려동물이라 말했던 반려동물 지도사 강형욱 님의 말을 떠올려보아도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호동이가 우리 가족에게 가르쳐준 것은 그 어떤 감정보다도 컸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소중한 것들 중 하나를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낸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 느낀 감정조차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모든 존재는 끝이 있다는 사실을 머릿속 어느 부분에서만 인지하고 있었지 실제로 세포 하나하나가 반응해서 슬픔을 오롯이 받아가며 느낀 것은 처음인 것이다. 사실 호동이에게는 미안할 말일 수도 있지만 내가 2월에 느낀 감정을 알고 나서 2003년으로 돌아갔다면 어머니에게 15년 전처럼 조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호동이는 나에게 책임감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호동이는 나에게 책임감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누가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일 수도 있다. 아니 멍청한 말일 수도 있다. 끝을 경험하고 나서야 책임감에 대해서 배웠다는 것은 어찌 보면 정말 어리석은 생각일 수 있다. 사실 내가 정말 어리석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책임감이란 그러한 것들과는 다르다.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본 구절이 떠오른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점은 내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안다는 것이다.


  정말 와 닿았다. 저 말을 미루어보면 나는 주민등록상 어른이 된지는 5년이 넘었지만 진정으로 아이와 구분되는 어른이 된 시점은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나는 15년 전 내 행동과 선택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였을 뿐이고 책임을 지고 있는 중인 것이다. 다만 그 책임이 내가 처음이다 보니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루어야 할지에 대해서 서툰 것이다. 호동이는 그렇게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주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끝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부인하고 싶을 것이다. 사실 반려동물과 처음 살기 시작할 때부터 끝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모두들 당장 눈앞에 존재하는 귀여움과 장점들 뿐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반려동물을 대하면 안 된다. 힘들더라도 우리는 끝이라는 것을 한 번쯤은 떠올려보고 결정해야 한다. 내가 직접 겪어보니 그러한 과정은 무조건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주인보다 늦게 일어나서 아침마다 자고 있는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시간도 축복이고 이름을 부르면 달려 나오는 것, 밤이 되면 다시 자러 가는 모든 것들이 축복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야 하고 느껴야 한다. 산책을 시키러 나갈 때 하네스를 채우는 시간, 산책을 다녀와서 발을 씻겨주는 시간, 목욕할 때 힘들지만 깨끗해진 반려동물을 사랑스럽게 만져주는 모든 시간이 소중하고 축복이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잊게 되고 일이 되어서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 그리고 심지어 시간이 많이 흘러서 노령화가 진행되면 손은 손대로 두 배로 가게 되고 비용적인 부분도 절대로 무시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아주 잘못됐다. 반려동물의 한 평생을 책임지고 함께 한다는 것은 정말 값진 일이고 숭고하고 고귀한 일이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니다. 단순히 요즘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서 무작정 분양하고 보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된다.


  살아오면서 2월 28일만큼 가족들 앞에서 울어본 적이 없었다. 사실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해오면서 가장 슬픔에 잠겼던 날이기도 하다. 정말 슬펐다. 절대로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숨이 차서 죽을 수도 있다는 느낌을 처음 받아볼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그 정도로 생명은 소중하고 가족은 소중한 것이다. 지금 현재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모든 좋은 사람들이 꼭 현재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장례를 치르면서 우리 가족은 화장을 택했다. 모든 절차들은 예의를 지키고 최대한 좋은 환경에서 떠나보낼 수 있도록 조성해 주었다. 화장 전과 후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들었던 감정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한 생명의 처음과 끝을 눈으로 확인한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말 그대로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마지막 모습을 보니 눈물로 꽉 막혀있던 속이 텅하고 비는 느낌까지 들었다. 공허함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호동이는 우리 가족에게 정말 큰 선물을 주고 갔다. 우리 모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선물해 주었고 가족의 소중함을 선물해 주었으며 영원한 것은 절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무엇보다 순간의 소중함이 정말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해주었다. 간과하기 쉬운 것일수록 중요하다. 그만큼 일상에 잘 스며들어 녹아있기 때문이다. 일상을 자주 공유하는 것일수록 사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소한 것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것이다.


  지금도 우리 집 거실 한쪽에는 호동이가 원래 머무르던 공간이 그대로 남아있다.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지금은 작은 나무로 된 집 안에 고이 잠들어 있다는 점뿐이다. 호동이는 항상 우리와 함께할 것이고 우리는 또다시 호동이로 하여금 '일상의 소중함', '사소한 것이 주는 무게감'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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