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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da 린다 Dec 21. 2022

그 겨울, 낮잠의 기억

하루가 다 갔네 아차싶은 낮잠이 있다. 몸살 약기운에 노곤해진 몸뚱이를 뜨끈해진 방바닥에 맡기고 그렇게 늘어지게 자다 하루를 꼬박 보낼듯이 자는 성난 낮잠이 그것. 깨워달라는 부탁이나 알람 따윈 하지 않아도 되는 꽤나 사치스러운 낮잠이다.


어린시절 대개는 이런 낮잠 후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브금들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부엌칸 달그락거리는 엄마의 저녁밥 만드는 소리나 거실 티비에 잔잔히 울려퍼지는 동물의 왕국 낯익은 성우의 보이스오버가 그것이었다. (오늘날 TV조선이 어르신들 테레비를 점령하기 전에 KBS1이 있었다지-)


며칠을 자고 일어난 것 같은 기분에 오늘이 며칠인지 달력을 찾다 이내 오늘인 걸 알고 안도감이 찾아온다. 어스름한 거실의 저녁 풍경이 아직은 밤이 아닌 걸 알고는 기분이 스윽 나아지던 시간. 말그대로 그냥 내 하루를 꾹꾹 눌어담아 약처럼 쓰고 퀭한 눈의 나를 따뜻하게 반겨주는 엄마가 있어서 특별히 더 괜찮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런 기억을 꺼내놓은 낮잠이 오늘 나에게 있었다. 낮에 아픈 아이를 재우다 일어나보니 어느새 긴 오후를 지나고 있었다. 첫째 아이와 며느리를 배려해주시느라 둘째 녀석들이 옆동 시댁으로 하원하기에 생긴 여유가 이유라면 이유다. 빈 거실의 흐릿해지는 겨울 볕의 끝자락 속에서 그때의 편안함을 맛보았다. 바스락거리는 아이의 움직임에 잠든 방문을 한껏 몸을 낮추며 탈출하는 엄마의 자리에서 맞이하는 어릴적 긴 낮잠의 향수. 감기로 등원하지 못한 네살 첫째 아들램의 안테나에서 벗어난지 채 십분을 못넘기고 깨어나서 두 문장을 쓰고 닫아 버린 이 글을 이 야밤에서나 마무리 하고 있다는 게 참으로 희극스러운 결말이지만 말이다.


육아를 늘 이렇다. 인생이 눈부시게 아름다울때쯤 아이가 깬다고 할까나? (아이가 잘때 더 아름답다 정도가 좋겠다) 가끔씩 우연히 꺼내보는 어릴적 장면은 늘 반갑다. 그런 선물같은 장면들을 내 아이들에게 많이 만들어가고 있는가 생각도 드는 하루. 결론은 잘 하고 있다. :)


오늘 오후 4시 반, 아이가 깨기 오분 전 거실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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