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이야기
남편과 저는 같은 나이의 친구출신 부부에요. 스물여섯살, 사회초년생이던 저와 대학생이던 그때의 남친은 자원봉사 주제의 한 교외동아리 동창회에서 만났는데요. 그래서인지 관심분야나 가치관이 비슷했어요. 오지랖 넓은 것 역시 닮았던 저희 커플은 공감하는 사회이슈라면 발벗고 나서기 일수였어요. 저는 그런 남친과 제가 유유상종의 결정판이라고 생각했어요. 주변에서 죄다 괴짜같다는 남친의 행동도 그 뿌리에 결국 저와 비슷한 신념이 있었기에 이해했지요.
결혼하고나서도 그 생각은 크게 변하지않았는데, 그런 그가 생각보다 나와 다르구나 느낀 지점이 바로 육아가 시작되고나서였어요. 육아의 어려움은 설명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설명한다한들 경험하지 않고서는 다 이해하기 어렵잖아요. ㅜㅜ 출산전에 마주하는 어려운 일들은 보통 왜 그러한지 말하며 하소연했었던 것 같은데 육아야말로 일찍이 설명을 포기했어요. 이상하게도 육아만큼은 내가 왜 그렇게 힘들었지 하면 표현은 안되는데 다시 그 상황에 처하면 또 죽고싶게 힘들것 같다 막연한 그 감정만큼은 확실한것 같아요...
연애만 해봤지 이렇게나 큰 과업을 함께 해본 경험이 없던 저희 부부는 회사 신입사원이나 다름없었어요. 저도 남편도 참 몰랐어요. 주말 몇시간 시간을 내어 어린 조카를 본다던지, 책이나 유투브에서 육아컨텐츠를 본다한들 절대 알 수 없는 설명하기 쪼잔하고 정신빼는 일인데 참 너무 쉽게만 생각했지요...
좋은 말로 할수 있는 것도 가시선 대화를 하게되니 육아의 복병은 배우자와의 대화였어요. 아이들을 씻길때 주의해야하는 것들부터 허벙한 맨투맨 티셔츠 안에는 왜 런닝을 입히는지까지 사소하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각자의 것들이 난장토론처럼 쏟아져 나오기도 하고 작은 행동에도 서운함은 왜 이렇게 터져나오지... '저 사람 진짜 왜 저럴까?'서로가 서로에게 참 다르다 이해가 안된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육아였네요. 연애시절 나와 너무나 닮았던 남자친구가 지금은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이랄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고 아이들이 쬐끔 커가면서 (뭐 물론 아직도 셋 중 두명은 만 두살입니다만..) 서운한 감정에서 이제는 너무나 다른 서로를 어느정도 인정하고 받아들인 경력직(?)부부의 삶을 살고 있어요. 사실 좋은말로는 그렇고 그냥 먹고살기 바빠서 포기하고 사는 셈 이지요. 그런 요즘, 우연치않게 지금 남편과 다르게 나와 닮았던 전남친을 소환한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며칠전, 살고있는 아파트에서 공용구역에 흡연 흔적을 발견했는데요. 그 길로 실내흡연을 삼가해달라는 메모를 출력해 붙여놨는데, 이틀 후 제 메모에 한 댓글이 보였어요. 함께 노력하자는 익숙한 필체의 댓글, 남편이었어요. 필자가 나인줄 알았나싶어 물어봤더니 나인줄 몰랐다고 놀라더라고요. ㅋㅋ 역시 다 달라도 오지랖 데시벨은 여전히 비슷했구나 실소를 참지 못했네요. 잠깐이었지만 옛날 우리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네요. ㅋㅋㅋ 그러게.. 우리가 이렇게 닮았었지...
ENFJ와 ENFP 부부니 알만하시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