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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Aug 25. 2022

신랑이 취직을 했지만, 우리는 첫 이혼 위기를 겪었다.

 공부하는 동안 주식을 했다고? 미쳤어?

 신랑은 곧 취직을 한 학교 근처에 집을 구했다. 내가 아무리 반대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너무도 일을 하고 싶어했으니. 집을 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랑이 전에 말한대로 우리 가족은 다 같이 주말에 신랑의 새 학교를 구경하고, 새로운 살림살이에 필요한 빗자루와 세제 같은 것을 사서 신랑이 구한 원룸에 가 보았다. 새로운 출발을 인정하고 축하하는 마음으로 간 가족 여행이었는데, 그 날도 언성을 높이며 많이도 싸웠다.


 시작은 신랑의 원룸을 구경하고 난 후, 차 안에서 신랑이 자신의 미래를 설명할 때였다.

 "지금은 9급이지만, 곧 8급으로 승진할 수 있어. 최소 연차만 차면 내가 승진시켜 달라고 할거야."

 "9급? 자기야. 나한테 전에 합격했다고 할 때는 8급이라고 했었잖아."

 8급으로 곧 승진을 할 것이기에 그냥 8급이라고 했단다. 며칠 전에 취직한 사람이 곧 승진을 한다고? 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일반직(사무를 보는 분야)이 아니고 기능직(시설을 고치는 분야)이라는 걸 털어놓았다.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왜 자꾸 실망하게 하고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냥 넘어가자는 식이냐고 싸웠다. 신랑은 처음에는 미안하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분이 차올라 욕을 하고, 이럴 거면 이혼을 하자고 했다. 너같이 꼬치꼬치 캐 물으면서 사람을 나쁘게 몰아가고, 말도 싸가지 없이 하는 여자랑은 살기 싫다고 했다. 나도 지지않고 너처럼 말만 하면 거짓말을 하는 놈이랑은 그만 살고 싶다고 했다. 그 모습을 아이들이 다 보고 있었고, 뱃속에 아이도 품고 있기에 더 싸우는 것은 제 상처를 후비는 일이란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싸늘한 분위기에서 아무 말도 없이 차를 돌려 집으로 왔다. 시꺼먼 먹구름이 우리 차 위를 계속 따라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 일은 이혼 위기가 아니었다. 그냥 갈등이었고, 시간이 지나고는 서로 심한 말을 한 것을 사과했다. 나는 신랑이 거짓말을 한 것에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넘겼고, 신랑에게 말을 곱게 하겠다고 사과했다. 신랑도 거짓말해서 미안하다고 이제 자기가 돈을 벌기 시작하니 잘 살아보자고 했다.


 신랑은 야금야금 거짓말을 해서 나에게 신뢰를 잃고 있었다. 나는 신랑이 나를 속인 것에 조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신랑이 나에게 숨긴 다른 것이 있었다.



 우리는 주말부부를 시작하면서, 시댁이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계획했다. 나는 전출을 신청해서 학교를 옮길 예정이었다. 부동산을 통해 기존 집을 전세로 내어 놓고, 이사갈 집을 알아보고, 이사하는 집을 리모델링하는 것 등 이사와 관련된 모든 것은 신랑이 추진했다.  

 "살던 집은 전세로 내놓을 거야. 집값이 오를 수도 있으니까 팔긴 아깝잖아. 지금 집값이 1억 3천이니까 전세는 1억 2천에 내놓기로 했어. 그럼 전세값 받은 걸로 새 집 계약하고, 리모델링 하려면 돈이 좀 더 있어야 하는데, 한 5천만 대출하면 될 것 같아."

 "새로 들어갈 집이 얼만데? 1층이라서 싸잖아. 리모델링에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

 "이런 저런 세금도 많이 들어가고 복비도 줘야 하잖아. 새로 들어갈 집이 한번도 리모델링을 안 한 집이라서 다 고쳐야 하는데 그러려면 한 4천은 들어갈 거야."

 조용히 머릿 속으로 계산을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 빈다.

 "아니. 안 맞는데... 5천이나 대출을 받는다고. 안 맞아. 이상해."

 그렇게 추궁에 들어갔다. 신랑은 30분도 넘게 상황을 설명을 하며 넘어가려 했는데, 말이 자꾸 바뀌면서 전세금 받은 것을 아버님께서 쓸데가 있어서 빌려갔다고 하다가, 공부하면서 용돈으로 조금씩 쓴 마이너스 통장이 있어서 갚는데 썼다고 했다. 횡설수설했다. 눈빛도 명확하지 않았다. 불안해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날 따라 더 집요하게 계속 물었다. 갑자기 벼락을 맞아 천재가 된 것처럼 논리적으로 꼬치꼬치 캐 묻기 시작했다.


 끝없는 추궁에 식은 땀을 흘리던 신랑은 결국 실토했다.

"주식을 했어..."

"뭐? 언제? 지금 우리가 살던 집으로 대출을 받아서 주식을 했다는 말이야? 언제 대출을 받았는데? 얼마나?"

"퇴직하기 직전에, 학교에 근무할 때 주택담보대출을 받았어. 5천만원. 직장이 없으면 대출도 안 되잖아. 그래서 공부할 때 쓰려고, 주식을 해서 용돈이라도 벌면서 자기한테 기대지 않으려고 한거야. 나 군대에 있을 때도 주식해서 100만원, 200만원씩 벌고 그랬었거든. 근데 내가 산게 좀 떨어져서 2천만원을 잃었어. 나머지 천 만원은 공부하는 동안 용돈으로 쓰고, 2천만원은 아직 통장에 남아있어. 진짜야. 2천만원은 가지고 있어. 나중에 보여줄게."


 2천만원을 주식으로 잃었다고 했다. 나는 그 일로 신랑에 대해 아주 큰 신뢰를 잃었다. 사실 돈을 잃은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신뢰를 잃은 것이 아주 큰 문제였다. 내가 신랑과 결혼을 결심할 때, '이 남자는 여느 남자들과 달라. 마음이 따듯하고, 순해. 말도 예쁘게 하고 믿을만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결혼 생활에 몇 번의 고비들이 있었지만, 신랑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주식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이 사람은 나를 잘 속이는구나. 나를 속였어. 마음먹고 속였어."라는 깨달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깊은 배신감이었다.


 그로부터 2주 정도 지났을까? 주말에 가족이 다 같이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둘째 아이가 운전석 뒷좌석에서 웬 통장을 꺼냈다. "이건 뭐야, 엄마?" 하고 묻는데, 나도 별 생각없이 받아서 열어보았다. 마이너스 2천만원이 찍힌 통장이었다. 신랑이 별 생각없이 운전을 하다가 내가 통장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사색이 되어서 아이를 꾸짖었다. "왜 아빠 허락도 없이 아무거나 만지고 그래! 진짜 너 혼날래, 어!"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추궁한 끝에, 주식으로 잃은 돈이 4천만원이었다는 것을 밝혔졌다. 이명박 테마주로 00해운을 샀는데, 상장폐지가 되었다고 했다. 이건 정말 운이 없는 경우라고, 제발 한번만 봐주라고 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말이 이런 뜻이구나 싶었다.




 신랑이 본격적인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할 때, 처음엔 책을 사서 도서관을 다니다가 아무래도 혼자서 공부하는 건 어렵다며 인터넷 강의를 들어야겠다고 해서 200만원짜리 강의를 계산해 주었다. 신랑의 공무원 준비 기간인 2년 반 동안 내가 신랑에게 준 돈은 그게 전부였다. 식비나 차비, 용돈은 하나도 받아가지 않았다. 달라고 하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신랑에게 "왜 용돈 달라고 안 해?" 하고 물어보니, "음. 퇴직금 받은 거 좀 남겨 놓은 거 있어서 그걸로 쓰고 있어."라고 했다. 퇴직금이 얼마나 남았는지, 한 달에 용돈을 얼마를 쓰고 있는지 정확히 물어보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간단히 집에서 한 후 도서관에 갔다가, 점심은 도서관에서 알게 된 공시생들과 같이 5천원짜리 백반을 먹고, 저녁은 집으로 돌아와 나와 같이 식사를 한 후 다시 도서관으로 가서 밤12시까지 공부를 하고 오는 간소한 생활을 했으니, 돈을 쓸 데라고는 점심 식사비와 간혹 친구들을 만날 때 식비 정도였다. 아마 한 달에 쓰는 돈이 몇 푼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삼십만원 정도. 하지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신랑이 한 달에 얼마를 쓰고 있으며, 어떻게 돈을 구하여 쓰고 있는지 확인하거나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나의 큰 실수였다. 


 사실 나는 신랑이 시댁으로부터 일부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있을 거라고 여겼다. 시부모님이 공무원으로 퇴직하셔 연금을 받다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고, 신랑과 시부모님은 매일 안부전화를 주고 받을만큼 가까운 사이였으니 말이다. 신랑이 직장을 그만 두고 난 후 두어 번 1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며 살림에 보태어 쓰라고도 도움을 주신 적도 있었다. '퇴직금을 다 썼으면 나한테 달라고 할텐데, 왜 말을 안 하지?' 하고 속으로 궁금한 적은 있었으나, 신랑은 전혀 나에게 금전적인 부분을 이야기 하지 않았고 나도 묵인했었다. 200만원 남짓의 외벌이로 세 식구가 살아가고 있었고, 그 시기에 나는 친정에 신랑의 퇴직을 이야기 하지 않고 결혼 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50만원 가량을 보내드리고 있었으니 나도 살림이 늘 어려웠었다. 벌이가 없는 신랑에게 궁핍한 현실을 털어놓고 싶지 않았기에 돈 이야기는 되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신랑에게 용돈을 줄 여유도 없었기에, 되도록이면 신랑이 그대로 시댁에서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신랑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용돈으로 천만원을 쓰고, 주식을 해서 나머지 4천만원을 다 날렸다니!




 그제서야 모든 것이 끼워 맞추어졌다.


 내가 카톡으로 압박을 줬던 시기가 아마도 주식이 급격히 떨어지고, 결국 상장폐지가 된 시기였을 것이다. 그러니 밥을 못 먹고 살이 빠졌지. 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느라고 집에서도 말이 없어졌던 것이구나. 종일 주식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공부가 되었겠니? 취직이나 해야지 싶었겠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속이고 있었구나. 너는 나를 속이고 있었어. 이제 나는 당신와 같이 살 수 없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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