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게 된 계기: '다녕'님의 브런치 글을 읽고
https://brunch.co.kr/@red7h2k/125
나는 나의 슬픔과 고통과 고민을 쉽게 털어놓지 못한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그 덕분에 부모님은 늘 나더러 "걱정 한 번 시킨 적 없이 자란 딸. 공부하란 소리 한 번을 안 해도 스스로 공부를 한 딸. 어떻게 내 뱃속에서 저런 애가 나왔을까?"라고 하셨다. 내가 태어나서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우리 부모님은 갚아도 갚아도 줄어들지 않는 빚더미를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 치고 살았었기에, 아이들의 성장을 돌볼 여유가 전혀 없었다. 나의 고민과 슬픔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너무도 무거운 빚의 수렁에 빠진 부모님께 항상 좋은 소식만 전해주는 딸이고 싶어서 나의 고민과 슬픔을 숨겼다. 학원을 한 번도 다녀보지 못했지만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했고, 장학금을 받고 과외를 해서 집에 손 한 번 벌리지 않고 알아서 대학을 다녔으며,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번 돈의 많은 부분을 부모님께 갖다 드린 착실한 딸이었다. 그래서 조금 부족한 듯한 사위를 데리고 왔을 때에도 '어련히 알아서 제 앞가림하는 딸인데'하며 허락해주신 부분이 컸던 것 같다.
부모님을 만족시키고 싶었고, 기대에 부흥하고 싶었던 나는 힘들면 힘들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을 하지 못했고 지금도 내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못한다. 특히 즐거운 감정보다 슬프고, 불안한 감정은 더욱 드러내지 못한다. 그저 답답한 속마음을 일기에 쓰는 것이 전부였다. 일이 일어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밝히기도 했다. '엄마, 나 고등학교를 집에서 멀리 떨어진 00으로 갔었잖아. 그때 엄청 힘들었어. 왜 이렇게 외로웠는지 모르겠네. 그래서 지금도 00 가면 나는 그 도시 전체가 슬퍼. 안 가고 싶어.', '엄마, 애 아빠가 직장을 그만뒀어. 한 2년 되었어.' 늘 그런 식이었다. 참고 또 참다가 시간이 지나서 그 일이 내 마음속에서 튀어나와도 울음이 터져 나오지 않을 정도로 식었을 때에야 말을 꺼냈었다. 이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담담하게 말이다.
부모님 앞에서 뿐만 아니라 남들에게도 완벽한 사람이고 싶은 욕심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뭐든 잘하고, 씩씩하고, 잘 이겨내는 사람이 고만 싶었다. 슬픔이나 고통이 있더라도 티 내지 않고 견디며 말을 하지 않으면 남들은 잘 모르니까. 견디고 버텨서 상황이 다 회복되고 나면, '나는 이런 고통도 견딘 사람이다'라고 더욱 긍정적인 표현이 가능했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인생이 익어가니까 그런 건지 우연히 읽은 이 글이 마음에 들어왔다.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딸이 쓴 글이다. 장례식에 찾아온 친구의 모습을 보고 위로를 얻는 모습. 나보다 먼저 엄마를 잃은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육개장을 먹는 모습이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괜찮아질 수 있겠구나.' 하면서.
남들에게 나의 고통과 실패가 위로일 수 있겠구나...
사람은 남의 행복을 보고 자신의 불행을 느끼고, 남의 불행을 보고 자신의 행복에 감사하니까.
생각해보니 나도 많은 주변인들의 실패와 고통을 전해 들으면서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우리 부모님도 나이를 많이 드셨지. 아직 건강하게 살아계셔서 다행이다. 잘해드려겠다.', 건너 건너 들리는 이혼한 친구의 소식을 들을 때에는 '가정을 지키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 나의 가정은 아직 버티고 있어서 다행이다.', 아이를 갖지 못해 고생하는 지인의 얘기를 들을 때는 '내가 아무리 아이들을 키우기 힘들다고 해도, 건강한 아이를 셋이나 낳고 키울 수 있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싶은 생각이 스쳤었다. 그들의 슬픔이 모두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위안이 되어 주었다.
그렇다면 나도 받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 고통과 실패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나도 내 것을 꺼내어 놓아야지. 누군가에게는 나의 경험이 '인생에 도움이 되는' 대리 경험일 수도 있으니까. 격려받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고. 누군가가 나의 고통과 슬픔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나는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라는 것만으로도 나는 또 내 삶의 가치를 인정받고 위로받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위로를 받으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가끔 학교를 옮기고 한동안 보지 못했던 예전 학교의 동료들이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샘, 나 얼마 전에 아이 낳고 복직했어요. 애 키우면서 직장 다니는 거 너무 힘들어요. 샘 생각 많이 났어요. 샘은 애들도 셋이고 주말부부인데 어떻게 살았어요?"
나 그때 참 힘들었어요. 내 삶을 보고, 위로받으세요.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