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던 시기, 나 혼자 외벌이로 살아갈 때에는 이상한 '며느리 문화'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었다.
가장 극명한 차이와 불만은 시누이의 남편인 '아주버님'과 나의 모습이 비교되며 나타났다. 아주버님과 나는 시댁에 모인 사람들 중 유일하게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방인'이라는 것과 각자의 가정에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라는 면이 같았다. 하지만 우리의 처우는 극과 극이었다.
나는 명절이면 전을 부쳐야 했고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해야 했다. 식사를 마치면 바로 쇼파로 올라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는 아주버님과는 완전히 달랐다. 자신의 딸과 손주들을 벌어다 먹여 살리는 '사위'는 "고생하네. 0서방"이지만, 외벌이로 독박 육아를 하고 신랑의 공무원 시험 공부를 뒷바라지하는 '며느리'는 그냥 "며느리"일 뿐이었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내가 시댁에서 일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신랑은 아주버님 옆에 앉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짐짓 무게를 잡고 그럴싸한 정치 비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랑을 포함하여 그 자리에 모인 모두에게 이상한 '며느리 문화'가 전혀 어색하거나 불만스럽지 않은 것이다. 이 상황에 분노하는 것은 '나'뿐이고, 나만 참으면 평화로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도 우리 가족의 외벌이 가장이고, 아주버님도 시누이네 가족의 외벌이 가장인데 왜 나는 설거지며 전을 부치는 일을 하고, 아주버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어도 되는 걸까. 왜 그게 당연한 걸까?
아마 내가 주부였다면 상황이 조금은 덜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외벌이였기에, 그 차이를 온몸으로 느끼며 심한 거부감을 가졌었다.
명절 전날이면 시어머니는 거의 대부분의 차례상이나 제사상을 혼자서 준비하셨고, 며느리가 할 일의 상징처럼 '전 부치기'만 남겨두셨다.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이니 바쁘다고 배려하여 대부분의 힘든 일을 혼자 하시고, 심지어 전을 부칠 재료까지도 다 손질 해두시고 나를 부르셨다. 그러니 사실 그리 부담스러운 일은 아니었고 기꺼이 시어머니를 도와 기분좋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연이은 임신과 출산과 육아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나는 결혼한 후 한 달만에 임신을 하여 며느리가 된 후로 맞이하는 첫 추석 때 임신 7개월이었고, 그 이듬해 설에는 출산한지 1개월이었다. 그 이후에도 늘 내 곁에는 돌 즈음이 된 아이가 있거나, 임신을 한 상태이거나 출산을 하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었다. 5년 동안 세 아이를 낳았으니 말이다. 그 5년 중 아주 출산에 가까웠던 두어 번과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명절이면 늘 전을 부쳤다. 임신을 했어도 쭈그리고 앉아 전을 부쳤고, 아기를 낳았어도 신랑에게 아기를 맡기고 전을 부쳤다. 그외의 특별한 상황은 이러했다. 한 번은 시어머니가 전을 부치게 올라오라고 했는데, 신랑이 전날 명절이라고 모인 동네 친구들과 술을 잔뜩 먹고 들어와 다음 날까지도 일어나지 못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 00아빠가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아직도 안 일어나고 있어요. 애들을 봐 줄 사람이 없어서 제가 못 가요."라고 해서 전을 부치지 않았었다. 또 한 번은 아기가 어려서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니 "자기야, 나 대신 전 좀 부쳐봐요."하고 신랑에게 전을 부치라고 올려 보낸 적이 있었다. 나중에 시어머니가 "며느리야, 전 다 부쳤으니 올라와서 따듯할 때 맛이나 봐라."하고 전화를 주셔서 가보니 신랑은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고, 시어머니는 "00이가 뭘 할 줄 안다고 보냈냐. 니가 와야지. 그냥 내가 혼자 부쳤다."해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났던 적도 있다. '시어머니가 쉬라고 했으면, 내려와서 애들이라도 봤어야지. 내가 갓난아이를 포함해서 애 셋을 보고 있을 동안에 낮잠을 자고 있었다고? 며느리는 전을 부쳐도 되고, 아들은 전을 못 부친다고? 이게 무슨 이상한 '며느리 문화'야?'
신랑과 '며느리 문화'에 대해 말하다보면, "명절에 전도 몇 번 안 부쳤었잖아. 우리 어머니가 혼자 다 하셨어."라는 말을 몇 번 했었다. "한 번만 더 그 소리 하면 진짜 이혼이다. 입 다물어."
몇 년 정도는 나도 어설프게 며느리 노릇을 했던 터라, 그저 명절이 불편하다는 정도였다가 점차 햇수가 지나갈수록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신랑에게 이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공감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자기야. 잘 생각해 봐. 시댁은 참 불공평 해. 내가 왜 설거지를 하고, 전을 부쳐야 하지? 시아주버님도 명절이면 늘 앉아만 있잖아."
"어떻게 매형이랑 비교를 하지? 자기는 여자잖아.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자기를 생각하고, 일도 별로 안 시키시는데. 명절에만 하는 일인데 그게 안 돼?"
순종적이지 않은 며느리이자 이해심도 양보도 없는 여자라는 식으로 내게 화살을 돌렸다.
"자기는 우리집에 가서 전 부쳐? 우리 엄마가 설거지 시켜? 하나도 안 하잖아. 근데 왜 나만 해야 하지?"
"말을 말자. 됐다."
신랑은 말로는 너를 못 이기지만, 더 이상 말을 섞기 싫으니 그냥 넘어가자는 분위기로 결국 나를 '이기적인 아내이자 며느리'로 몰아 갔다. 내가 신랑과 싸우는 건지, 시댁과 싸우는 건지, 우리 나라의 이상한 '며느리 문화'라는 관념과 싸우고 있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리고 누구와도 결국 이기지 못했다.
나만 이상하게 느끼는 이상한 '며느리 문화'. 신랑조차 '며느리 문화'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하는 나에게 이기적이고 이해심 없는 여자라고 하는 '며느리 문화'.
사실 치열하게 이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시댁에서는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가 함께 상을 준비하기 어려우니 모든 것은 시부모님이 준비하시고, 내가 하는 일이라곤 명절 전날 전을 부치는 것 뿐이니. 그리고 그런 일은 명절에만 있는 있는 일이니 말이다. 나는그저신랑이 "고마워. 사실공평하지는않지만, 자기가해줘서고맙지. 나도같이할게."라는말을원했던것같다. 그런 말을 바라고 꺼낸 말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공격적이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