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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Sep 09. 2022

어떤 결혼을 해야 잘하는 걸까?

어떤 선택을 했건, 그건 나의 선택이니 책임을 져야지.

 대학시절, 시골 집에 들렀다가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사촌언니네 부부의 차를 얻어 타고 간 적이 있었다. 결혼을 한 지 10년이 넘었던 언니네는 서로 번갈아가며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을 아낌없이 쏟아내어 주었다. 아마 그날 해준 말들이 나에게는 결혼생활에 대해 처음으로 듣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마음이 너무 불편해서 차에서 그만 내리고 싶을 정도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머리가 아플 정도로 단정적이고 사랑이 없는 결혼 이야기 투성이었으니까 말이다.



“처제. 남자 볼 때 뭘 제일 많이 봐? 경제력? 얼굴? 키? 성격? 뭐 그런 거 있잖아.”

“글쎄요. 성격이 제일 중요하죠. 외모도 나쁘지 않으면 괜찮고, 돈은…. 많으면 좋겠죠?”

“처제. 돈이 많은 사람은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많다. 돈이 많다는 건 남자가 자신감이나 여유가 많다는 뜻이야. 그런 남자가 웬만해서는 한 여자한테 만족할 수가 없지. 가정을 무척 아낀다고 해도, 밖에서는 몰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돌아다닌다니까. 그러니까 조심해.”

“몰래 하면 다행이게. 대놓고 바람피우는 사람도 많아. 00아, 근데 차라리 돈 많고 바람피우는 남자가 낫다. 돈도 없이 바람피우는 남자도 얼마나 많은데. 그럼 속 터지지. 차라리 돈이라도 많으면 위로가 되지. 그리고 바람피우는 사람들이 집에서 부인들한테는 또 그렇게 잘해. 그러니까 남편이 벌어오는 돈 쓰면서, 나도 덕을 보고 있으니까 바람피우는 걸 알아도 그냥 사는 거지.”

“차라리 밖에서 바람피우는 게 낫다고 할 수도 있어. 돈도 잘 벌고 바람도 안 피우는 사람들은 내가 가정적이고 경제적으로도 완벽하니까 부인한테 엄청 요구하는 게 많을 거란 말이야.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저렇게 해라, 밖에서 놀지도 않고 집에 들어와서 이리저리 간섭하고 들들 볶으면서 부인을 하인처럼 만드는 거지. 그럴 바에야 차라리 밖에 나가서 놀고, 바람을 피우라는 소리가 나오지.”

“돈 많이 벌면서 가정적이고 정상적인 사람들도 있을 수 있잖아요. 돈이 많다고 다들 바람피우고 그런 건 아니잖아요.”

 “처제. 글쎄…. 그런 사람이 엄청 적어. 거의 없다고 보면 되지.”

 “그래. 거의 없지.”

 아니 이들의 말은 왜 이리도 단정적이고 사랑이 없이 이해관계뿐인가.


 “00아, 성격도 변할 수 있어.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나한테 잘해주고, 어떻게든 결혼하려고 목을 매다가도 결혼하고 나면 본심을 드러내는 거야. 전에는 참으면서 비위 맞춰 주던 것에 이젠 참지 않고 화를 내고, 전에는 나한테 시간도 잘 내던 사람이 친구들 만나고 일하느라고 시간이 없어지고. 그런 게 결혼이다. 성격만 보고 결혼하잖아, 그거 변하면 어쩔 건데. 그냥 이혼하는 거지, 뭐. 차라리 돈이라도 많으면 돈을 보면서 살 수라도 있지.”


 아니 돈이 많은 사람은 바람을 피운다더니, 이번에는 돈을 보고 살라고?


“잘 생긴 사람은 인물값을 해요. 남자건 여자건 인물 좋은 사람들은 자기 외모가 잘 생긴 줄을 알아. 그 얼굴로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한테 칭찬을 듣고 살아왔겠어. 모르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지. 그러면 인물값을 한다니까. 가만히 있고 싶어도 주변에서 자꾸 건드니까. 게다가 남자들은 자기 외모를 또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아. 자신감이 어찌나 많은지, 다 자기가 잘생긴 줄 안다니까.”

“차라리 잘생기고 바람피우면 낫지. 못 생겨서 바람 안 피울 것 같아 결혼했더니 바람피워 봐. 어휴. 말도 못 하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대화의 흐름에서 이리저리 치이면서 남는 생각이라곤 ‘이들이 말하는 결혼에 순수하게 사랑하고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사는 결혼 생활은 없는 것인가?’하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결혼해서 잘 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럼 뭘 봐야 잘 사는 거예요?”

 “우선, 제일 중요한 건. 너랑 비슷한 사람이랑 결혼해야 잘 살아.”

 “뭐가 비슷해야 하는데요?”

 “그냥 모든 게 너무 차이가 나는 결혼은 안 돼. 예를 들어, 경제적인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처음에는 부인한테 ‘집에서 살림만 하고 애만 봐도 된다’고 하던 사람이 나중에는 자기가 벌어오는 돈 쓰면서 집에서 편하게 살면서 이런 것도 못 참냐고 큰 소리를 치게 되어 있어. 바람을 펴도 참고 때려도 참아야지. 또 반대로 너무 못 벌어오는 사람이랑 결혼해도 문제다. 너는 괜찮다고 해도, 남자가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자격지심이 생길 수밖에 없어. 남자 노릇을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면 그게 본인에게도 스트레스가 되니까 네가 뭔 말만 해도 ‘잘난 척하냐.’, ‘무시하지 마라.’, ‘남편 기 죽이려고 작정했냐.’ 그렇게 되는 거야.  뭐니 뭐니 해도 남자가 적어도 여자보다 10원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가정이 평화로운 거야. 어차피 결혼하면 여자가 애 낳고 고생을 더 하게 되어 있거든. 그냥 너도 적당히 벌고, 상대방도 적당히 벌면서 사는 게 좋아.”

 “외모도 너무 좋은 거보다 적당한 게 좋지. 처제,  정도면 어때?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웃기고 있네. 내가 외모는 하나도 안 보고 결혼했잖아. 좀 너무 했지. 내가 너네 형부 성격 보고 결혼했잖아. 처음에는 진짜 잘해줬는데, 결혼하고 한 10년 지나니까 다 변하더라고.”

 “성격은 처제가 알아서 판단하는 거야. 누가 좋다 아니다 말해 줄 수가 없어. 사람 보는 눈을 키워야 하는 거지. 처제. 여러 사람을 많이 만나봐. 깊이 만나지 말고, 이 사람 저 사람 얕게 만나봐. 너무 잘해주는 사람은 의도가 있으니까 조심하고. 알겠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준 사람들은 처음이었다. 그 후로도 이런 대화를 나눈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연애도 한 번 안 해본 나에게 그런 이야기는 너무 속물 같은 이야기였다. 돈, 외도, 결혼 이후에 변하게 되는 성격. 모든 것들이 너무도 자극적이고 단정적이며 부정적인 이야기였다. 내가 결혼에 대해 머릿 속에 그리던 세상이 빛이었다면, 그들이 이야기해 준 세상은 암흑 같았다.

 

 나는 그리도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으면서, 왜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일까?

 나의 결혼식에서 처음 만난 친척이라는 여자분이 이런 말을 했었다. “네가 셋째 딸이냐? 아이고, 교대도 가고 그랬으면 부자한테 시집을 가서 부모님 고생 그만하게 해 드려야지. 너네 부모님은 이제 딸 셋 다 가난한 집으로 시집보내고 남는 것도 없어서 어쩌냐. 너는 어쩜 이기적이게 돈도 안 보고 결혼을 했냐. 너만 좋으라고. 쯧쯧.” 하셨었다.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무척 좋지 않았었다. 나는 속으로 차라리 우리 집이 부자였다면, 나는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사람과 결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내 머릿속에는 비교적 동등한 결혼으로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결혼 생활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부유한 사람과의 결혼은 나를 속박할 것 같았고, 나의 의견이 무시되는 답답한 생활을 돈 때문에 견뎌야 하는 생활을 상상하는 것이 싫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나는 편견이 참 많았던 것 같다. 형부 말대로 연애를 얕게 많이 해봤어야 하거늘, 그러지 못하고 신랑과의 첫 연애로 결혼을 해서 그런가.


 결혼은 결국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선택했다고 해도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이고, 내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성인으로서 가장 큰 선택이었다.

29살의 여자였던 내가 편견이 많았건 어쨌건, 34살의 남자였던 그가 ‘여교사’라는 허울에 콩깍지가 씌어 완벽하지 않은 선택을 했건, 아니건 우리는 서로를 최선의 배우자로 선택했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인내하며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 한다.


 아직까지 나는 신랑의 부족한 점을 견딜만하고, 신랑 또한 나의 부족한 점을 견뎌주고 있다. 다만, 나는 신랑이 바람을 피우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농담처럼 자주 경고를 한다. 바람을 피울 기미가 전혀 없는데도 뜬금없이 가끔 한다.

 “자기야. 바람피우면, 국물도 없다. 우리 가족은 끝이다. 나는 한 번 봐주는 거? 그런 거 없다. 그냥 장난이었다, 지나가는 바람이다, 이런 변명 필요 없다. 나는 다른 건 참아도, 바람피우는 건 못 참는다.” 신랑은 기가 차서 그런 상상까지 하는 나를 우습게 보지만, 나는 진심을 담아 다시 경고를 한다.

 “나한테 안 걸릴 수가 없다. 그런 일만 없으면, 우리는 잘 살 수 있다.” 제법 진지해진 내 표정에 신랑은 웃으면서 “나는 걱정할 거 없어. 당신이나 피우지 마.” 한다.

 내가 젊을 때도 연애를 못했었는데, 애 엄마가 되어서 무슨 바람을 피우겠냐고 하면, 신랑도 자기도 첫 연애로 결혼을 했는데 아저씨가 되어서 무슨 수로 바람을 피우냐고 한다.

 “남자는 여자가 마음 먹고 꼬시면 안 넘어갈 수 가 없다던데.”라고 내가 다시 한 번 우려를 표하면, “일주일 내내 똑같은 셔츠 입고 출근하는 아저씨를 누가 좋다고 꼬셔.”한다.

 “그러니까 집으로 옷을 가져와. 세탁을 하게. 왜 그렇게 다니는 거야. 아이고.”


그렇게, 우리는 같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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