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만 재는 거 아니야. 남자도 다 재더라고.
임용고사에 합격하여 교사가 되고 난 후, 키가 조금 작은 편이지만 그 키에 맞게 얼굴이 귀염상이었던 나는 소개팅이 꽤 많이 들어왔었다. 발령이 났던 25살에는 일 년에 서너 번 정도 간간히 있다가 26살부터 28살 정도까지는 과분할 정도로 소개팅이 많이 들어와서 어떤 때는 하루에 점심과 저녁 연이어 소개팅을 하기도 했었다.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들이 주선해주는 소개팅도 많았고, 한 친구가 몇 번이나 소개팅을 주선하며 시집갈 때까지 해주겠다고 하기도 했고, 친척들도 소개를 해 주었다. 전에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이 옮겨 간 학교에 젊고 멋진 선생님이 있으니 한 번 만나보라고 연락이 오기도 하고, 같이 근무하고 있는 교장선생님이 주선을 해주기도 하셨었다. 몇 년 만에 연락이 온 친구와 안부를 묻다가 본론으로 들어가면 ‘너 소개팅해보지 않을래?’ 한 적도 더러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대학 때 연애를 해보지 못한 한을 풀듯이, 어디에서 나의 인연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니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겠다는 오픈 마인드로, 들어오는 소개팅을 마다하지 않고 나갔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연애로 이어지지 못했다.
‘나는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인가 보다.’, ‘아예 시작을 못 하겠는데.’, ‘연애로 이어지지도 못하는데 소개해 준 사람에게도 민폐이고, 소개팅에 나온 상대에게도 민폐다. 소개팅 이제 그만할까 보다.’ 그 시절 나의 고민은 그러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이제 소개팅 그만하려고. 그냥 자연스러운 만남을 기다려야겠어.”라고 말하며 소개팅을 거절했는데, 그러면 주선자가 “그래도 한 번만 만나봐. 진짜 괜찮은 사람이라니까. 그냥 밥 한 끼 먹으면서 얘기 나눈다고 생각하고 들어오면 되지.”하며 설득하는 바람에 또 나가게 되기도 했다.
소개팅이다 보니 직업과 나이를 적당히 고려하여 소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이는 연하보다 대개는 2~5살 정도 많은 사람들이었고, 나의 직업인 초등교사에 어울리게 같은 초등교사이거나 공기업, 공무원이 제일 많았고 간간히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수의사와 같은 전문직도 있었다. 컴퓨터 수리점 사장님이나 대학원생,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세무사, 중식집 요리사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가진, 많은 사람들과 소개팅을 해 보았는데 대부분 연애로 이어지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좋다고 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고, 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사람은 나를 좋다고 했다.
그 이유는 내가 상대의 조건을 따지며 직업과 나이와 외모와 유머러스한 말투, 배려심을 따지듯이 상대도 나를 두고 저울질을 했기 때문이었다. 신기한 것은 대개는 내가 상대를 나보다 낫다고 보면, 상대도 자기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고, 내가 상대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상대도 나보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겼던 점이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비슷한 기준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 생각에 나보다 직업이 좋고, 인물도 나쁘지 않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성격도 좋은 전문직을 가진 사람은 나에게 에프터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는 아마 나보다 더 날씬하고 더 여성스럽고 키가 크거나 돈이 많은 여자를 기대했을 것이다. 가끔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아쉬운 부분을 말하는 이도 있었다. “키가 조금만 더 컸으면 좋겠는데.”라던가 “여자는 사실 약간 마른 듯해야지.”라며 말이다. 그런 이들을 만나려면 내가 ‘을’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인내하고 '을'을 자처하여 비위를 맞출 내가 아니었다. 반면 키가 작고 외모가 좋지 못한 편이고, 성격적으로도 자기 비하가 많던 전문직의 남자는 나를 좋다고 했었다. 전문직임에도 왜 여자 친구가 없는지 알만한 사람이었다. 커피숍만 3개를 돌다 음료로 배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소개를 해준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나를 도대체 어떻게 보는 거냐.’고 화를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생각할 때 나와 직업이 비슷하게 안정적인 공기업이거나 교사인 경우에는 외모나 스타일이 좋은 경우 애프터를 신청하지 않거나 간혹은 애매한 뉘앙스를 풍기며 밀고 당기기를 했다. 적극적이지 않았다. 얼굴이 참 잘 생겼지만 키가 160 정도였던 소심한 공기업 직원과 역시나 키가 160 정도이고 나와 나이 차이가 9살이나 났던 초등학교 선생님은 적극적으로 애프터를 신청했었다. 직업적으로 안정적이고 성격도 무난한 분들이었지만, '이런 점만 빼면 사귈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극복할 수 있을까?' 싶은 점들이 하나씩 있어서 끝내 연애로 이어지지 못했다.
컴퓨터 수리점 사장님과 9급 공무원, 중소기업의 직원과 대학원생, 중식집 요리사였던 분은 나에게 매우 적극적으로 다가왔었다. 내가 더 안정적이거나 수입이 높은 경우였다. 나는 대화를 나누며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 사람을 만날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이들도 나의 조건에 후한 점수를 주었던 것이라는 걸 알면서 멀어지게 되었다. 적극적으로 다가와 한 달 정도 만났었던 컴퓨터 수리점 사장님은 몇 번의 만남 끝에 더 이상 관계를 이어가기 어렵겠다고 하자 “네가 얼마나 잘난 줄 아느냐, 여교사인 것 빼고 뭐가 잘났냐?”며 악담을 쏟기도 했었다. ‘내가 단지 교사라서 만나고 싶었던 것이구나’ 싶어 더 이상 만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여겼었다.
여자가 남자의 조건을 많이 잰다고 하지만, 결국 남자들도 다 재고 있었다. 여자가 안정적인 직장과 좋은 경제력, 평균이나 혹은 그 이상의 외모나 키, 그리고 따듯한 배려심이 있는 남성을 원하는 것처럼 남자도 맞벌이를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평균이나 혹은 그 이상의 외모나 키를 가지고, 엄마처럼 자기를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여성을 원하고 있었다. 간혹 맞벌이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본인이 돈을 잘 버는 남자의 경우 “나는 여자 조건은 안 봐. 직업이 없어도 돼. 여자는 어리고 예쁘고 착하면 돼.”라고 말하지만 결국 가정에서 아내로서, 여자로서의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예쁘고 나긋나긋하며 순종적이고 날씬한 여성’이라는 것 또한 굉장히 갖추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남자가 얼마를 벌든 상관없어. 자상한 사람이면 돼."라고 말하는 여자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성을 갖춘다는 것이야 말로 눈으로 보이는 '돈'이나 '외모'보다 더 갖기 어려운 조건이 아닌가. 그리고 훌륭한 인성을 가진 남자라면 자기 인생에서도 최선을 다 했을테니 평균 이상의 직장을 가질 가능성도 많다. 결국 남자건 여자건 이성을 만날 때 모두가 조건을 잰다.
수많은 소개팅을 하며, 나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결혼의 상대를 찾는 것은 극단적으로 비교하자면 인터넷 쇼핑몰 올라온 수많은 제품들을 살펴보며 상품 정보를 비교하고 가성비가 좋고, 내구성이 있으며, 디자인이 예쁜 브랜드의 제품을 구입하는 것처럼, 상대방의 직업과 나이, 성격, 외모, 재산 등을 꼼꼼하게 비교하며 사람을 고르는 과정이라고. 그래서 소개팅을 그만두었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해야겠다 싶었다.
여자가 가득한 직업 환경 속에서 소개팅을 끊고 나니 아예 또래의 젊은 남자를 만날 기회조차 없어졌다. 남자를 만나자고 없는 종교를 만들어 낼 수도 없고, 남자가 많은 서울로 이직을 할 수도 없고, 관심에도 없는 헬스를 다닐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러다 1년 2년, 5년 10년 훅훅 지나가겠구나' 싶었다. 나이가 들면 여자는 더 매력이 줄어든다는데, 나도 금방 혼기를 넘길 것 같았다.
그렇게 공허한 시간에 '상대방의 조건을 재는 소개팅'에 대한 죄책감과 순수하지 않은 사랑에 신물이 난 내 마음을 곱씹어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나의 조건보다 더 나은 사람을 고르고 싶고, 결혼 상대방으로 삼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갖는 마음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려는 마음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건을 따지는 것을 '속물'처럼 여겨 죄책감을 가졌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자연스러운 만남은 조건을 따지지 않을까? 자연스러운 만남이라고 외모도, 직업도, 키나 성격을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니 알아가는 속도만 다를 뿐이지 소개팅과 같이 결국은 '내가 생각하는 조건에 가장 맞는 사람을 찾고 조건과 협의하는 과정'이라는 것은 같다.
물론 지나치게 남자의 능력이나 재력만 보거나, 여자의 외모나 나이만 보는 것이 현명하지 않은 것은 틀림없다. 고루 보고 결혼을 하는 것보다 편협된 기준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지만, 그건 선택하는 자의 자유다.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 "남자들은 젊고 예쁜 여자만 원하지.", "여자는 돈 많은 남자만 원하지." 편협함을 비난하더라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선택받지 못한 자가 허공에 내뱉는 한낯 푸념일 뿐.
결국은 내가 가진 조건에 비슷한 사람으로 눈을 낮추거나, 자신의 조건을 높여 비슷한 사람을 찾으면 될 일이다. 끼리끼리 선택하여 만나게 되는 것이 결혼!
이성을 만날 때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은 서로의 조건(직업, 나이 차이, 외모, 성격, 경제력 등)이 어느 정도 합의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고, 조건이 합의되어도 만남을 가지다가도 '가치관'나 '취향'의 문제로 만남이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잘 맞으면 사귀다가 결혼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생각을 고쳐먹고, 나는 다시 소개팅에 나가기 시작했다. 전보다 조금 까다롭게 굴었고, 모든 소개팅을 받지는 않았다. "나는 장거리는 어려울 것 같아.", "키가 작으시네. 나도 작은데 상대도 작으면… 미안해. 생각하고 연락 줬는데.", "나이 차이가 좀 많네. 5살 정도까지는 괜찮을 것 같은데, 그 이상은 어려울 것 같아." 그리고 이어진 몇 번의 소개팅 끝에 신랑을 만났다.
이제껏 나의 결혼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매우 신중하게 조건을 쟀고 안정적인 직장과 준수한 외모, 주선인이 보증할 만한 인성으로 소개팅남이 나의 조건을 충족하여 만남이 성사되었고, 만남의 과정에서 무엇보다 신랑의 마음씨가 참 선하고, 말투가 다정하여 신랑감으로 최선이라 여겨 결혼까지 했다.
진심으로 나는 신랑을 재고 만났었다. 물론 '준수한 외모' 따위는 내 기준이다. '인성' 또한 내가 판단하는 기준이다. '안정적인 직장'은 조금 객관적인 기준일 수 있었으나 신랑이 한 말을 곧이 믿은 나의 잘못이 일부 있다. 그러고 보면 사실 '결혼 상대자로서의 조건'이라는 것은 내가 옳지 못한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을 때 착오를 일으키거나 상대가 감추거나 부풀린다면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으니, 결혼하기 전에 반드시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귀담아듣고 상대의 조건에 대해 명확한 확인을 거친 후에 결혼하기를 권한다.
신랑도 아마 나를 쟀을 것이다. 그의 친구들과 만남의 자리에서 친구들은 "야, 00아. 너는 결혼할 사람이 초등학교 선생님이면 연금은 빵빵한 거 아니냐? 맞벌이인 데다가 심지어 교사야. 예쁘기까지 해. 넌 뭔 복이냐. 부럽다, 야." 했을 때 쑥스럽게 웃던 신랑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렇게 재고 만나서 상대방을 내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조건에 근접하게 맞추어 결혼을 했음에도, 결혼 생활은 녹록지가 않았다. 내가 충분히 고려했다고 생각한 '상대방의 인성'이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었고, 운이 좋지 않아 '직업'이라는 조건이 통째로 날아가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면 나 또한 신랑이 보기에는 '인성'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었을 것이다.
'결혼 상대의 조건'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꼼꼼하고 정확하게 따져보되, 결혼하고 난 후에는 부족함이 있다 하더라도 상대를 비난하기보다 정확하게 따지지 못한 나의 안목을 탓 할 일이다. 결국 인생은 모두 나의 선택이니까.
그러니 누군가가 결혼 상대의 조건을 까다롭게 고른다고 비난하지 말 것. 또 내가 까다로운 편인 것 같다고 죄책감을 갖지도 말 것. 우리는 결혼 상대를 아주 깐깐하게 따져보고 결혼한 후, 결혼하고 나서는 단점을 눈감아주고 살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러하지 못했다. 그래서 구렁텅이에나 빠지고 그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