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말리는 결혼은 하지 말라는데...
또 한 번은 대기업에 다니는 김 씨(남자)와 영상 관련 일을 하는 조 씨(여자) 커플을 만나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둘은 사귄 지 5년이 넘었고, 나이도 둘 다 서른 중반에 가까워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조 씨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김 씨는 결혼을 앞두고 고민하고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김 씨는 대기업 정규직으로 근무하며 또래에 비해 연봉이 높은 편이었다. 차에 관심이 많아 자주 차를 바꾸느라 저축을 하지는 못했지만, 연봉이 높은 편이니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언제라도 돈을 모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결혼을 하면 돈 관리는 자기가 하고 싶은데, 조 씨가 자꾸 자기가 관리를 하겠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고, 조 씨는 겨우 한 달에 150만 원을 벌고 있는 데다 그것도 결혼을 하면 그만 둘 생각이라고 하는데 왜 자기가 힘들게 번 돈을 여자가 관리하려고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아는 조 씨는 사치가 심한 여자가 아니니, 마음속으로는 '조 씨가 관리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데... 김 씨는 차도 자주 바꾸고, 술자리도 좋아하고, 씀씀이가 큰 편이잖아.'라고 생각을 했으나, 외벌이로 돈을 버는 입장에서 번 돈을 전부 부인에게 맡기고 용돈을 받아 쓰는 것이 싫을 수도 있을 테니 생활비를 넉넉히 주면서 나머지 돈은 본인이 관리하는 것도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응. 그럼 생활비 넉넉히 주면서 나머지 돈은 네가 관리하면 되지."
"근데 결혼하면 무조건 자기가 관리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고! 얼마 버는지 말도 안 하다가 얼마 전에 150만 원 버는 거 듣고 깜짝 놀랐어. 일하는 시간이 짧지도 않은데 그만큼 번다기에 짠하기는 하더라고. 결혼하고 나면 애도 키워야 하고 그렇게 얼마 벌지도 못하는데 일하는 시간도 긴 직업은 그만두라고 하고 싶기는 한데, 그렇다고 돈도 못 버는데 무슨 돈 관리를 자기가 하냔 말이지."
돈을 버는 건 전적으로 김 씨의 역할이고, 생활비를 넉넉히 준다면 나머지 월급은 김 씨가 관리해도 될 것 같은데, 김 씨가 씀씀이가 커서 몇 년째 모아놓은 돈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조 씨 입장에서는 본인이 알뜰하게 관리하겠다는 것도 이해가 된단 말이다.
김 씨와 조 씨는 집안일과 육아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었다.
"우리는 결혼을 하면 내가 혼자 외벌이를 할 거잖아. 근데 글쎄 걔가 나더러 퇴근하고 나면 애도 보고 집안일도 도우라고 하는 거야. 얼마큼 도와줄 수 있냐고, 정하자고 하잖아. 미친 거 아니야? 나는 퇴근하고 오면 피곤해 죽는데, 무슨 애를 보고 집안일을 해. 어디서 맞벌이에서 요구하는 걸 외벌이에다 대고 요구를 하는 거야. 자기가 무슨 공주야? 너무 철이 없는 거 아냐?"
김 씨는 교대 근무를 해야 해서 늘 몸이 많이 피곤하고 상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지. '나한테 집안일이고 육아고 도와달라고 할 거면, 내가 차라리 직장 그만두고 집에서 살림이랑 육아를 전부 다 혼자서 할 테니까 대신 나가서 나만큼 벌어 와. 네가 나만큼 벌어올 수 있으면 내가 집안에 신경 쓸 것 하나도 없이 다 할게. 나는 돈 벌어오느라 애쓰는 너를 공주처럼 떠받들고 살 거야.'라고 했더니, 어이없어 하는 거 있지."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할지, 머리가 아파온다.
분명 김 씨가 외벌이로 돈을 버느라 애쓰는 것은 맞고, 그에 상응하게 부인은 집안일을 깔끔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맞지만, 육아는 공동이 하는 것이 아닌가?
김 씨가 외벌이로 벌어 온 돈 중 생활비로 일부를 준다고 하면, 부인도 낮 동안의 집안일과 육아를 담당하면서 일부의 생활비를 부담하는 것과 동일하니 밤(혹은 퇴근 시간 이후) 동안의 집안일과 육아는 공동이 같이 해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기가 어릴 때에는 부인이 너무 힘드니 아무리 외벌이라 해도 반드시 집안일과 육아를 도와야 하고,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고 난 후에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니 부인이 혼자서 집안일과 육아를 전부 해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머리가 복잡해진다. 누가 얼마만큼의 일과 벌이를 하는지에 대한 계산과 얼마큼의 육아와 살림을 분담해야 하는지에 대한 계산은 칼로 정확히 자르듯이 나눌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러 애매한 문제는 서로의 배려로 합리적으로 조정되지 않으면 결혼 생활에 큰 갈등 요인이 된다.
자리를 비운 조 씨가 돌아와 합석을 하면서, 우리는 이 이야기의 합의점을 찾기 위해 조금 더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좀처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로 자기의 의견이 옳다고, 상대를 상식에 맞지 않는 답답한 사람으로 몰았다.
"말이 안 통하는구먼. 답답하다. 진짜."
"나야말로."
나는 이 골치 아픈 얘기를 들으면서, '이 결혼 어렵겠는데...' 싶었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결혼 생활인데도 말리고 싶었다.
어떤 결혼도 쉬운 결혼이 없다.
내가 결혼 생활을 해보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결혼 생활을 여러 번 주워듣다 보니, 결혼을 앞둔 이들의 일부 에피소드만 들어도 결혼 후에 어떤 일로 자주 싸우겠다는 상상이 된다.
"아직 집을 살 돈이 부족해서, 시댁에서 같이 살 거야." - 힘들겠는데? 괜찮을까? 그냥 원룸이라도 나와서 사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자주 싸우고 헤어지고 했었잖아. 이번에 애 생겨서 결혼한다고 하더라고." - 책임감이 중요하긴 한데...
"술값으로 어떤 달에는 200만 원이나 쓰더라고." - 괜찮겠어? 이 결혼? 술을 그렇게 좋아해?
"직장이 서로 멀어. 주말 부부를 하게 될 것 같아. 주말 부부 힘들지?" - 굳이 시작부터 주말부부를 하는 건 권하지 않지.
"신혼집 구할 돈으로 코인을 해서 손해를 봤대." - 얼마나? 큰돈을 잃었어? 숨겼던 거야?
"코로나로 영업이 힘들어서 오빠가 하던 가게를 그만뒀어. 나도 얼마 전에 직장 그만뒀거든." - 그런데도 지금 결혼을 한다고? 괜찮겠어? 벌어둔 것도 얼마 없다면서.
진심으로 서로를 위한다면 사랑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난관들.
그런데 이제 나는 그런 난관이 있는 결혼을 말리게 된다.
'그 사람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데'라는 말은 잘 들리지가 않는다. 나도 세상의 때가 묻은 어른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