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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ty Nov 02. 2021

무거운 말들을 실어

가장 가벼운 것에 담아

 벌써 삼일째다. 책상에 앉아 꼬박 삼일 동안 종이 앞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첫 번째 편지지는 물방울이 하나 떨어져 구겨 버렸고, 두 번째 편지지는 잉크가 번져 버려 버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편지지 위에서 만큼은 완벽주의자가 되어 그 위로 열을 맞춰 글자들을 나열한다.


 나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애써 편지지를 고르고 그 위로 군기가 바짝 든 훈련병들처럼 글자를 정렬하고 곱게 접어 편지 봉투에 넣는다. 그리고 노란색 풀로 편지 봉투를 닫고 다시 풀을 들어 편지지 위로 우표를 붙인다.


 나는 이런 수많은 귀찮음을 무릎 쓰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땐 다시 책상 위에 앉게 된다. 핸드폰 자판을 두들기지 않고 전송이라는 버튼에 의지하지 않고 늘 0.28 굵기의 볼펜을 들고 마음을 전하게 된다.


언젠가 한 번은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왜 맨날 편지를 보내? 우편함 확인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다고”


나는 이 질문에 그냥이라는 수많은 이유를 답했다. 사실 내가 편지를 많이 쓰는 이유는 스물이라는 깨끗하면서도 혼란스럽던 시기에 있다. 당시 일본에서 살던 나에게 한국에 있는 친구가 아무 말 없이 우편을 보낸 것이다. 적잖이 놀란 나는 갈색 편지 봉투, 서류 봉투라고 하는 게 좋을까? 하여튼 그 위로 봉투를 잡고 떫떠름하게 서 있었다. 이내 봉투를 열었는데 큰 봉투에는 고작 손바닥만 한 크기의 산타 모양 크리스마스 카드가 있었다.


“고마워,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지 못해 아쉽네! 잘 지내렴!”


이 문장을 읽고 나서도 나는 익지 않은 열매가 꼳꼳하게 가지에 매달려 있듯 떫은 마음을 떨쳐내지 못했다.


친구가 이 카드를 고르고, 글자를 쓰고 편지 봉투를 골라 우체국까지 가는 그 모든 순간들을 떠올렸다. 카드는 어디서 샀을지, 얼마 없는 칸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겠지.


이내 마음이 무르익어 툭하고 떨어졌다.


편지라는 . 가볍지만 무거운 .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풀칠이 듬성듬성 되어 있는 곳을 찾아 손가락을 비집어 넣고 뜯으면  뜯기지 않아, 편지 봉투를 잡고 입구를 찢는 것도. 곱게 접혀있는 편지지를 들어 보면 손에 힘을 주어 꾹꾹 눌러쓴 글자들이 나를 반겨준다. 나는  일련의  과정을 사랑한다.


‘굳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다정한 모든 순간들을


마음속에서 울렁울렁 목 끝까지 치솟았던 말들, 그 말들을 다시 집어삼키고 비리고 속 쓰렸던 모든 것들을 이 과정에서 받아들이게 해 준다. 사랑한다는 말도, 그립다는 말도.


“21세기에 웬 편지야?”


나는 당신의 물음에 또 답하겠지.

“그냥”


그냥이라는 수 없이 많은 이유들로 편지지를 들어 우표를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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