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회고
이 글은 글로벌 브랜드 스튜디오 FECTA의 사내 게시판에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Contact: hanna@fecta.io
11월 1일입니다. 야근을 피하지 못한채로 또 한 번 새로운 달을 맞이했습니다. 9월에 멜번에 다녀온 후로 줄곧 야근이 있었습니다. 휴가 때문에 생긴 야근치고는 생활패턴이 장기화되고 있네요. 매일매일 체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집에 가고 싶다는 욕구보다는 뭔가 정리하고 싶다는 욕구가 더 강합니다. 비어있는 노션 페이지를 열어 지나간 시간 동안, 내가 무얼 느꼈고 또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선명해질 때까지 되짚어 보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빈 페이지를 어디까지 채울 수 있는 사람일까요. 오늘은 내가 나를 어디까지 채워왔는가, 우리는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오래 전 일기장에 써둔 말중에 ‘위대한 태도’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나는 위대한 일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위대한 방식이 있을 뿐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자주 위대한 일 자체를 찾아 헤매느라 인생의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만 그런 방식은 대체로 실패합니다. 타자가 규정하고 평가하는 위대한 일들은 대부분 일시적이기 때문입니다. (디스이즈컴피티션) 그런 일들은 언제나 상대평가이고, 상대가 바뀌면 리셋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1등을 하지 않는 이상 타자가 인정해주는 위대한 업적에는 언젠가 끝이 있습니다. 끝이 있기에 언제나 위대한 ‘일’은 끝끝내 공허합니다. 그런 일들만으로는 우리의 삶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자주, 위대한 일 대신 위대한 ‘태도’에 대해 생각합니다. 나의 삶을 근본적으로 체질개선 시켜줄 태도에 대하여. 박수쳐 줄 모두가 떠난 뒤에도, 나에게 남는 위대함이란 무엇일까요. 나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자주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대상과 목적이 달라져도, 내가 불리해져도 유지하는 어떤 근본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는가
성실했는가
정직했는가
해를 끼치지 않았는가
과정에 책임졌는가
섬세했는가
의심했는가
의심하는 순간에도 어리석은 길을 끝까지 걸어봤는가
타자의 인정으로부터 독립했는가
기뻤는가
부끄럽지 않았는가
자유로웠는가
나는 아주 사소한 사건에서부터 위대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묻습니다. 친구와의 대화. 동료들과의 협업. 가족을 대하는 일. 애인과 보내는 시간. 물건을 구매하러 가기. 길을 걷기 처럼. 아주 작은 일 속에서부터 존재의 위대함이 드러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것은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것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나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사소한 일에도 위대한 태도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소한 것에 대한 위대한 태도는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가 남들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인생이 부끄러움 없었음을 오로지 본인에게만 증명하기를 바랍니다. 그런 방식으로 진정한 자기회복에 다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많은 회사가 남의 평가 앞에서 움츠러들게 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경험했습니다. 작은 일은 대충 지나가고, 큰 실수에는 극대노하며,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보통 회사의 문법들. 쉽게 (동료라고 믿는) 남을 욕하고, 남을 평가하고, 책임을 전가시키는 시스템. 그런 회사에서는 위대한 삶을 꿈꾸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쉬운 일에 타협하지 않으며 사소한 일을 비웃지 않는 회사에 다니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합류했고, 이곳에서 그런 문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나는, 우리가 작은 일을 가장 위대한 방식으로 해내는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작은 일을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나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시나 통제 없이 자기 자신안에 있는 원동력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힘은 내 안에 있습니다.
내 옆에 앉은, 내 뒤에 앉은 나의 동료들이 위대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를 바랍니다. 요즘 세상 평생직장이란 개념 더이상 없으니, 언젠가 그만두더라도, 그래도. 그 회사에서 나는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 곳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환경이나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자신을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내던지며, 스스로는 스스로가 관리하고, 진정한 자유를 회복할 수 있기를. 나는 이것이 이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우리만의 영향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급격하게 발달한 ai 플랫폼이 서서히 우리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기술이 편리하면 할수록 웃음기가 사라집니다. 어떻게 하면 기술을 활용해 더 편리하게 일할까 대신 오히려 나의 대체 불가능성에 대하여 숨쉬듯 고민합니다. 결국 모든 방면에서 기술이 우리를 따라잡는다면, 우리는 어떤 힘으로 우리를 증명할 수 있을까요. 나는 내가 말하는 위대한 태도가 여기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일'을 해줄 사람 또는 기계는 많지만, '그 일을 그런 태도로’ 해 줄 사람을 찾기는 매우 어려우니까요. 당장 채용과정이나 과거의 동료들만 떠올려봐도, ‘태도의 위대함’을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 사람은 정말이지 드물었을 겁니다.
평소에 자기 스스로 방법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해설지를 달달외워 공부했을 때 성적이 오를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그렇게 얻은 점수가 그 사람의 능력 그 자체로 치환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쉬운 일을 쉽게 넘겨버리는 사람이, 큰 일을 크게 잘 해낼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끊임 없이 오답을 견디는 훈련과 대충하고 싶은 욕구를 이겨내야 합니다. 컨닝을 하고 싶을 때 누구보다 바보같은 방법으로, 성실하게, 정직하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의심을 멈추지 않고, 의심하는 순간에도 어리석은 길을 걸어보며, 타자의 인정과 상관 없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자유로워 지세요. 오로지 그것만이 우리를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만들 것입니다.
여기에 합류한지 1년 2개월. 나는 내가 더 큰 브랜드를 할 때보다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위대한 태도로 일하기 위해 늘 스스로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곳에 합류해 보낸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거의 대부분, 나는 타인이 아닌 나의 사소함과 대충하고 싶은 마음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여러분의 지난 달은, 또 지난 시간은 어떤 것을 극복하는 시간이었을까요. 사소하게 흘려보내던 것들을 빈 종이에 끄집어 내어 다시 정리하면서, 매순간 다정하지 못해 미안했던 마음이 자꾸만 올라옵니다. 내가 놓치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돌아보지 못한, 여러분의 사소한 노력들이 있었을 걸 알기에 자꾸만 마음이 쓰여요.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기꺼이 동료에게 기댈 어깨를 내어주는, 자기가 먹는 영양제의 반 알을 나눠주는 여러분에게. 늘 따뜻하지 못하여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저의 생각은 우리 회사 모두의 생각 중 약 1/13에 불과하지만, 제가 꿈꾸고 바라보는 회사의 방향이 여러분에게도 작은 동기나 응원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생하셨고요. 또 고생합시다!
펙타 한나
Contact: hanna@fecta.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