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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esta Jan 02. 2021

인간적인 동물들이 사는 도시

영화《주토피아》Review



#영화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다소 존재할 수 있습니다!





    황홀한 배경과 귀여운 캐릭터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 장르는 매력적인 영화가 많습니다. 심신이 지쳐 깊은 생각 없이 그저 화면과 스토리가 주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을 때, 애니메이션은 마음의 안식처로 훌륭한 역할을 해 주곤 하죠. 어린이들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에 영화의 메세지는 부담이 없고, 대체로 등장인물들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우며 배경에는 밝은 분위기의 음악이 깔립니다. 어릴 때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곤 해서 그런지, 제가 즐겨 보는 지브리나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어린 시절이 환기되며 추억이 되살아나곤 합니다.


주토피아 시의 전경, 다양한 환경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공간


    이번에 다룰 영화 역시 픽사의 애니메이션입니다. 귀여운 토끼와 양, 더 귀여운 레밍 떼가 등장하고 배경에 밝은 음악이 깔리는 걸 보면, 픽사가 만든 여느 애니메이션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분위기만 보면 어린 동생들하고 같이 옹기종기 모여 보기 딱 좋은 가족 영화고, 제가 어릴 때 봤더라도 재미있게 봤을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곱씹어 볼수록, 여기 등장하는 귀여운 동물들이 전하는 메세지는 우리가 감히 아이들에게 권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회인조차 벗어나기 힘든, 복잡하고 예리한 문제를 비판하며 우리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격을 경시하고,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작정 비난을 퍼부으며, 선호하는 정치적 지향의 차이가 상대에 대한 경멸로 이어지는 일들은 우리에게 먼 세계의 일들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늘의 영화 《주토피아》는 차별과 분열,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이지만 미래 세대에게 차별과 편견이 나쁜 것이라고, 화합을 가르치기엔 현세대가 구성하는 사회 역시 서로 간에 너무 날이 서 있습니다. 이 영화의 메세지는 어른들을 위한 것입니다.



나뉘고, 분열되어, 공격하는 사회


    육식 동물이 초식동물을 먹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주토피아 세계관에서는 이걸 고대에나 있었던 야만적인 문화라고 합니다. 지금 육식 동물이 초식 동물을 공격한다는 것은 주변 사람이 노예를 부리겠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야만적인 발상인 것 같습니다. 현재 주토피아에서는 모든 동물이 신변의 걱정 없이 조화롭게 섞여 살고 있습니다.


포식자가 피식자를 사냥하는 일은 원시적인 일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반전되는 것은 주디가 첫 번째 사건을 해결하고 연설을 할 때를 기점으로 합니다. 도시에서 육식 동물들만 골라 실종되는 사건을 추적하던 주디는 병원에 잠입하여 사라진 육식 동물들을 찾아내고, 말단 경관에서 스타로 데뷔하게 됩니다. 기자회견을 열고 쏟아지는 질문에 답변하던 주디는, 사라진 육식 동물들을 감독하던 의사가 말한 '생물학적 요인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에 영향을 받아, 육식동물의 DNA에 내재된 본능을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육식 동물들에게 원시 시대의 이미지가 다시 씌워진 것이죠.


    이는 비전문적인 개인의 의견일 뿐입니다. 주디는 사건을 해결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인정받을 가치가 있지만, 사건의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봐야죠. 그녀는 생물학을 알지 못하고, 의사에게 직접 조언을 구한 것도 아니지만 원인을 스스로 만들어냈죠. 사건 해결의 당사자라는 권위를 빌어 이 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갑니다. 그녀의 말을 믿은 시민들은 육식 동물 규탄 시위를 벌이고, 일상 속에서 육식 동물들을 차별하기 시작합니다. 화합의 도시 주토피아는 이렇게 분열됩니다.


    실제로 왜곡된 이미지는 거짓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파편화된 진실이, 제멋대로 해석되어, 숙고 없이 퍼져나가기 때문에 특정 집단의 이미지가 형성되고, 굳혀지고, 차별받는 경우가 훨씬 많죠. 악의적으로 헐뜯는 비난보다는, 생각해야 할 말을 생각하지 않고 뱉는 가벼움이 편견을 낳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또한 진실일지라도 소수의 행동이 집단 전체에 대한 편견으로 전염되는 구조, 건전한 신념과 선한 의도로 행동하는 주인공 주디가 사회 분열을 야기했다는 역설까지, 주토피아는 사회를 섬세하게 옮겨 와 다양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입니다.


육식 동물에 대한 편견으로 분열된 사회


    주디는 사회의 갈등을 빚은 것에 책임을 느껴 경찰직을 내려놓고 본인이 태어난 농장으로 돌아갑니다. 몇 달간 농사를 짓던 주디는 사건의 단서가 되는 식물을 농장에서 찾고, 새로운 방향으로 사건을 풀어나가죠. 최종 사건의 흑막으로 밝혀진 동물은 작은 양, 지금껏 주디를 도왔던 멜웨더 부시장이었습니다. 그녀는 맹수들을 몰아내고 초식 동물들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떤 동물이든 흉폭하게 만드는 약을 일부로 맹수들에게만 썼던 것입니다.


    맹수들에 대한 편견 자체가 멜웨더 부시장에게는 무기로 이용되었던 셈이죠. 애니메이션에 여론전이 나온다는 사실도 놀랍고, 기본적으로 약자라고 생각되었던 초식 동물이 우세한 여론의 힘을 이용하여 역으로 맹수를 차별하는 구조도 신선합니다. 이 영화는 구성부터 편견을 꾸준히 비트는데, 속도광 나무늘보 같은 오락 요소부터 최종 흑막이 작고 순한 양이라는 스토리 구성, 초반과 대비되는 초식 동물의 맹수 차별이라는 흐름까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성적인 측면을 한번 더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의 개별 사건들은 복선들을 통해 서로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처음에 맹수가 초식 동물을 사냥하는 연극과 닉이 주디를 사냥하는 듯 연기하는 후반 장면의 수미상관이 인상 깊죠. 처음의 연극에서는 포식 동물이 먹잇감을 사냥하는 것이 원시적인 일이라고 표현하고, 마지막 장면은 박물관의 석기시대 세트장에서 일어나죠. 연극에서 말한 원시 시대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실제 우리의 역사 역시 성별, 계급, 인종에 따른 차별의 역사입니다. 그 시절 당연했던 여성에 대한 배척, 흑인에 대한 차별 등은 현대 우리의 시각에서 미개했던, 문명의 오점으로 비칩니다. 원시 시대 맹수의 초식 동물 사냥이 그들의 수치스러웠던 역사라고 한다면, 연기는 역사의 재현이고, 멜웨더 시장이 포식자와 먹잇감을 분열시킨 것은 수치스러운 역사로의 회귀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할수록, 우리는 서로를 더 많이 포용하게 될 거예요"


    영화에서 그리는 것과 같이, 사회의 차별과 편견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은밀하지만 광범위하게 퍼져, 대부분 가해자와 피해자도 특정 짓지 못한 채 은밀히 서로를 갈라놓고는 하죠. 하지만 편견에 매몰되어 편을 가르고 서로를 헐뜯는 것은, 인류가 수많은 성장통을 겪으며 극복해 온 과거의 오점을 답습하는 행위밖에 될 수 없습니다.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으로 누구나 친숙하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만큼, 영화의 끝에서 주디 홉스가 던진 메세지, "누구나 실수를 하고, 누구나 단점이 있으니,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가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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