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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킷랩 Mar 06. 2019

너 또는 그것

나와 너, 마르틴 부버


1.
안녕하세요, 버킷랩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마르틴 부버’ 의 ‘나와 너’’ 입니다.

2.
리뷰를 위한 도서를 고를 때, 어떤 책은 대략적인 내용을 알고 고르기도 하지만 어떤 책은 단순히 제목이 마음에 든다거나, 어디선가 짧게 인용된 문구가 인상적이라는 이유로 고르기도 하는데요. 이번 책, ‘나와 너’ 같은 경우에는 어느 신문기사에 인용된 책의 한 구절이 마음에 들어 읽게 되었습니다.

다정해보이는 제목에 속아서 내용도 쉬울거라고 생각했지만 큰 착각이었는데요! 함께 읽어보신 다른 분들도 어렵게 느끼진 않으셨을까 궁금해지네요. 

3.
저자인 마르틴 부버는 유대계 종교철학자로, 실제 독일에서 나치의 박해를 피해 여러나라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철학, 미학, 종교학등을 연구하였습니다. 이후에는 이스라엘에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그의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은 부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핵심키워드로 자리잡았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그의 저서들 역시 기독교인 들을 위한 신앙서적으로서만 단순하게 홍보되거나 인상지어지는 일을 통해서 비기독교인들의 접근이 다소 어려워지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면 이 책이 단순히 기독교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그가 저자가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는 단계로 오르기 까지 인간과 인간의 실존적인 관계에 대해서 고민한 결과물들이 우리에게 철학적으로 생각해 볼 거리들을 던져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4.
저자는 앞서 말한 ‘생각할 거리’들을 꺼내기 위해 이러한 말로 책을 열고 있습니다.

p.5
세계는 사람이 취하는 이중적인 태도에 따라서 사람에게 이중적이다.
사람의 태도는 그가 말할 수 있는 근원어의 이중성에 따라서 이중적이다.
근원어의 낱개의 말이 아니고 짝말이다.
근원어의 하나는 ‘나-너(Ich-Du)’라는 짝말이다.
또 하나의 근원어는 ‘나-그것(Ich-Es)’라는 짝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세계는 ‘나’가 세계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세계가 ‘나’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집니다. 만약 내가 세계를 ‘나-너’의 근원어로 대한다면 세계 역시 그러할 것이고, 내가 세계를 ‘나-그것’의 근원어로 대한다면 세계 역시 나에게 그러할 것이라는 건데요.

5.
이 두 가지 근원어 ‘나-너’와 ‘나-그것’의 차이는 ‘관계’의 유무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관계맺음’에 대한 비유를 위해서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어린왕자와 장미꽃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이 세상에는 수많은 장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수많은 장미에 대한 이해를 수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장미’라고 했을 때 우리의 머릿속에는 동일한 ‘장미’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줄기에 박힌 가시라던지, 붉고,푸른, 때때로 노란 잎을 가진 장미를 떠올리며 말입니다. 이렇게 장미를 ‘이해’하는 것은 장미와 내가 상호작용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단지 장미를 논할 때 타인들과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개념만을 안다고 한다면 내가 특정한 장미와 상호작용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때의 나와 장미의 관계는 ‘나-그것’으로 대응됩니다. 나는 장미를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경험할 수 있고, 장미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타인과 공유함을 통해서 편리함을 가지고 있고, 내가 장미를 통해 어떤 사건을 겪을 때 장미는 내게 ‘수단’이 됩니다. 물론 내가 장미와 만든 ‘나-그것’의 작용은 장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미에게도 나는 수 많은 인간 중 하나일 뿐이겠죠.

6.
그러나 어린왕자가 자신의 한 송이 장미와 맺고 있는 ‘관계’는 이와 다릅니다. 아무것도 없던 자신의 행성에 뜬금없이 날아와 뿌리를 내린 한 송이의 장미, 자신이 유리덮개도 씌워주고 애지중지 키운 그 장미를, 어린왕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어린왕자처럼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장미는 어린왕자와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다른 어떤 이와도 이해관계를 공유할 수 없는 관계 속에 있는 장미이기 때문입니다.

이때의 어린왕자와 장미의 관계는 ‘나-너’로 대응됩니다. 어린왕자는 수많은 장미들이 뿌리를 내리고 시들어 죽는 일을 반복해서 경험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행성에 있는 단 하나의 장미와의 관계는 반복할 수 없습니다. 이는 역시 단 하나의 장미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이렇듯 어린왕자와 장미는 서로를 ‘너’라고 부르는, 서로가 서로를 능동적으로 선택한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수동적으로 선택당한 상호작용의 관계를 가진 것입니다. 

이때의 단 하나의 장미는 ‘나-그것’의 수많은 장미와 달리 어린왕자에게 수단이 아니며 단 하나의 장미, 그 자체로 실존하는 존재가 됩니다.

7.
저자인 마르틴 부버는 우리가 ‘나-그것’의 세계가 아니라 ‘나-너’의 세계를 지향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위해서는, 또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수 많은 장미 속에서 단 하나, 나만의 장미를 찾는 일, 또 그 특별함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 수 있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세계와 내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를 주는 책,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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