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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메 Sep 29. 2024

슬픔은 어디서 오는 걸까

2년 전, 15년을 내 껌딱지로 산 강아지를 떠나 보낸 뒤에 좀 새로운 경험을 했다. 일상을 살아가다 갑자기 벼락처럼 마주치는 슬픔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는 경험.


나는 평소에도 드라마나 영화, 책을 읽다 슬퍼지면 쉽게 우는 편이다. 대화를 하다가도 가끔 울컥하고 어떨 땐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보고도 코끝이 찡해지는 인간. 그렇게 자주 울고 쉽게 울며 자랐지만 그건 밀물처럼 덮쳐 오는 슬픔과는 전혀 다른 울음들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하다가, 친구랑 술을 마시며 얘기를 하다가, 혼자 길을 걷다가 갑자기 예고없이 슬픔이 들이닥치면 하던 걸 모두 멈춰야 했다. 길바닥에 앉아서 울기도 하고 미친 사람처럼 방안을 빙글빙글 돌면서 울기도 했다. 혼자 떠난 여행지에서 노래를 듣다가 그동안 몰랐던 가사의 의미를 눈치 채고는 갑자기 슬퍼지는 바람에, 남해의 웬 등산로 초입 벤치에 앉아 1시간을 울기도 했다.


그렇게 참아지지 않는 울음을 쏟아내고 나면 가만히, 방금 왔다 간 슬픔은 어디에서 온 건지 생각했다. 불시에 마주한 자연재해마냥 밀려들고 차오른 뒤, 물러나는 것들. 온화한 사람을 한 순간에 미치게 만드는 어떤 발작 버튼처럼, 스위치 온! 하고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 스위치 오프! 하는 농담 같은 일들이 어떻게 벌어지는 건지 나는 정말 궁금했다.

© 2024. CASA DE FOTO All rights reserved.

빈도는 좀 낮아졌지만, 여전히 그런 날들이 있다. 준비되지 않은 때에 슬픔이 밀려오면 이제는 당황하며 허둥대지 않고 호흡을 크게 하면서 울음을 뱉어낸다. 그건 참아지지도 삼켜지지도 않는 거라는 걸 이제 아니까. 그리고 통곡 속에서 가만히 그 슬픔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다 보면 조금씩 다른 감정의 얼굴들이 비칠 때가 있다. 그리움이라든지, 미안함이라든지, 후회라든지.


아마 그런 감정들이 내 안에서 작은 슬픔의 총알들을 하나씩 빚어내다가, 비슷한 결의 슬픔을 목도하는 순간 사방에 부딪쳐 튀어오르며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크게 울 때마다 목구멍으로 총알을 하나씩 뱉어내는 건지도 모른다. 자기들을 알아채 주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 2024. CASA DE FOTO All rights reserved.

어떤 슬픔을 잠재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보다 더 큰 슬픔을 갖는 일이란 걸 나는 경험을 통해 안다. 슬픔이란 지극히 사적이고 비공식적인 것이라 설명할 길도 증명할 길도 없지만, 우습게도 슬픔에도 우선순위가 있다. 그래서 미처 들여다봐지지 않는 슬픔들도 있다.


내가 평소 문학을 사랑하는 이유는, 문학이 슬픔과 고통에 누구보다 민감한 자들이 써내려간 슬픔 보고서 같아서다. 경이롭고, 언제나 나를 숙연하게 하고, 나를 인간답게 만드는 힘을 가진 시와 소설들. 타인의 슬픔을 공부하고, 타인의 슬픔을 모른 척하거나 혹은 알아채지 못하지 않도록 나를 단련하게 하는 문장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 안의 슬픔을 공부하는 법은 너무 오랫동안 모르고 살았다. 들여다봐지지 않은 슬픔들이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자라나 어떻게 소멸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이것들을 가만 가만 길어올려 대면하는 일이, 어쩌면 벼락 같던 슬픔이 내게 주고 간 숙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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