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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Feb 10. 2019

견딜 수 없게 지겨운 날엔

[고독한 개짱이] 똠양꿍


올해는 꼭 독립을 하자.


아직도 내가 새해마다 새 노트에 신년 목표를 적어 내려갔다면, 가장 첫 번째 항목으로 이렇게 적었을 거다. 모아 놓은 돈도 얼마 없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 부모님 곁에 붙어있는 게 최고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당한 시기에 분리하는 것은 어차피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립을 어떻게 하지? 사실 생각보다 간단해 보인다. 예산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맞는 매물을 찾아 계약하면 끝이다. 문제는 일단계부터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지만. 네이버 부동산, 직방, 다방, 피터팬... 온갖 종류의 부동산 어플을 다 깔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어가 보기 시작했다. 기왕이면 회사 근처가 좋을 것 같아 그 정도로 범위를 정해서 보고 있는데 세상에 이렇게 내가 가진 돈이 초라해 보인 적이 없다.


한 달 정도가 지나도록 나는 인터넷으로 눈팅만 할 뿐 한 번도 매물을 직접 보기는커녕, 부동산에 전화도 못해봤다. 사진만 봐도 영 아니다 싶은 곳이 너무 많았고, 혹은 찜해두고 하루 이틀 고민해보는 사이 어느새 사라진 매물이 됐다. 친구는 일단 원하는 지역 범위를 좁혔다면 인근 부동산 목록을 뽑아 전화부터 먼저 돌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대체 전화해서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도 모르겠는 데다 낯선 사람과 전화라면 더욱 긴장이 돼서 더듬거리게 되는, 몹쓸 전화 울렁증이라는 병에 시달리고 있으니 어쩌란 말인가.



비슷하게 집 걱정에 시달리고 있는 친구와 동네의 태국 음식점을 찾았다. 태국 요리는 잠깐이라도 모든 걱정을 잊고 싶을 때,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떠날 수 없을 때 잠시라도 현실 감각을 잊게 해주는 특효약이다. 특히 날씨까지 이렇게 추운 날 빼놓지 않고 시키는 것이라면 똠양꿍. 시큼하면서도 매콤하고 단 맛까지 숨어있는 이 국물을 한 숟갈 떠먹으면 이미 나는 저어기 어디 따뜻한 동남아에 도착해 있다. 입안을 향긋하게 감싸는 고수까지 듬뿍 올려져 있으면 진짜 이 현실의 고민이 다 날아가 버리는 것만 같다.


요즘 그런 것들을 많이 한다고 한다. 태국에서 한 달 살기, 베트남에서 한 달 살기 뭐 이런 것들. 상대적으로 물가가 싼 동남아시아로 떠나 살아보는 경험. 어디선가 백만 원이면 3달까지 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 아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다녀와서가 걱정이 된다. 떠나는 거에야 익숙하지만, 언젠가 돌아왔을 때에 대한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으니까.


일단은 좀 더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어 봐야지. 떠나서가 아니고 일단 이곳에서 내 두 발로 지탱하는 법을 난 좀 더 배워얄것 같다. 그래도 다행이다. 한 달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시간이라도 떠날 수 있게 그런 기분을 들게 해 주는 음식이 곁에 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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