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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Jun 02. 2019

가끔 인생은 정말 멋진 걸 주기도 해요

영화 <파리의 딜릴리>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딜릴리는 아프리카에서 몰래 배를 타고 파리로 건너온 카나키족의 혼혈아, 아프리카인들이 보기엔 하얗지만 프랑스인들이 보기엔 까만 피부를 가진 소녀다. 파리 도심 한복판에 있는 동물원에서 아프리카 원시 부족의 생활을 연기하는 일을 하지만, 일을 마친뒤엔 누구보다 예쁜 옷을 입고 누구보다 정확한 프랑스어로 당차게 자기 의견을 말할 줄 아는 아이다.

배달부 일을 하는 소년 오렐과 친구가 된 딜릴리는 함께 아름다운 파리의 곳곳을 누빈다. 몽마르트 언덕, 개선문, 에펠탑...  화려하고 여유로운 파리는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에 빠지기 충분하다. 영화는 여기에 더해 풍요로운 예술의 전성기를 만든 벨 에포크 시대의 피카소, 로뎅, 모네, 드뷔시, 르누아르, 물랑루즈의 로트렉 등을 만나게 하며 한껏 그 시절의 매력을 드러낸다.



일전에도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많았다. 가장 먼저 <비포 선셋>, <미드나잇 인 파리>가 떠오른다. 무척 좋아해서 몇 번씩 보았던 영화다. 파리를 여행하는 기분이 들뿐더러, 낭만적인 파리의 모습은 그곳을 거니는 주인공들의 상황과 마음에 이입을 하기 충분했다. 사실 <파리의 딜릴리>에서 기대했던 것 역시 그런 것들이었는데, 이 영화는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파리의 풍경으로까지 관객들을 끌고 간다. 황폐하고 어둠이 드리워진 파리, 소녀를 납치하는 지하조직 마스터맨. 파리를 누비는 딜릴리와 오렐의 여정은 사실 이들의 정체를 밝히고 소탕하는 모험에 가깝다.

마스터맨 조직에 딜릴리가 납치되고 마는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이 현명한 소녀는 그곳에 잡혀있던 어떤 소녀들도 도전하지 못했던 용기를 내어 그곳을 탈출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또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대배우 사라 베르나르, 딜릴리의 선생님이기도 한 루이즈 미셸, 마리 퀴리. 사실 벨 에포크 시대의 인물이라기에 우리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아름다운 파리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은 바로 이들이다.



아름다운 파리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까맣지도 하얗지도 않은 주인공, 마스터맨 조직의 비뚤어진 생각과 어두운 이야기를 굳이 등장시켜야 했을까 싶었지만, 사실 이것이 바로 <파리의 딜릴리>가 아름다운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예술로 가득 찬 도시지만 영화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바로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이.

그렇게 깊게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생각해보면 엄마아빠가 어린아이에게 들려주던 모든 종류의 모험 이야기가 다 그렇다. 아름다운 세상에 그것을 파괴하려는 무리가 있고, 그 무리를 물리치는 용감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의 용기로 인해 세상은 아름다움을 되찾는다. 용감한 아이는 지금 엄마아빠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있는 바로 그 아이일거다. 영화의 마지막 '이 이야기는 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는 크레딧을 보고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다.

'다른' 것들이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용기, 이것이 바로 부모가 자기의 어린 자식에게, 그리고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던 모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멋진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 이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의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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