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철과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공연 이야기
김수철의 공연 ‘김수철과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를 관람하기 위해 지난 11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찾았다. 3000석이 넘는 좌석은 일찌감치 매진되었다. 여전히 김수철을 기억하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 것이다. 사실 김수철 하면 ‘나도야 간다’라든가 ‘젊은 그대’는 기억나지만 그가 국악에 심취한 이후로는 무엇을 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가 국악의 길로 들어서던 1980년대에 우리는 질풍노도의 시대에 갇혔으니 어디 음악을 제대로 곱씹으며 살 수나 있었던가. 이제야 나이 들어서 김수철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었다. 작은 거인은 그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궁금했다.
이날 공연은 김수철의 음악활동 45년을 결산하는 무대였으니 그런 바람은 현실이 될 수 있었다. 김수철이 만들었던 대표 곡들을 가요와 국악을 망라하여 들을 수 있었다. 이날은 김수철이 지휘자이고 작곡가이고 편곡가이고 가수였다. 연미복 차림의 김수철은 지휘대에 올라 국악기와 서양 악기, 그리고 대중가요 밴드가 뒤섞인 100인조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그 특유의 폴짝 폴짝 뛰는 동작으로.
김수철의 선후배 동료들이 함께 출연해서 김수철의 곡을 불렀다. 성시경은 '내일', 화사는 '정녕 그대를', 이적은 '나도야 간다', 백지영은 ‘왜 모르시나’, 그리고 김수철이 ‘누나’라고 부른 양희은은 ‘정신 차려’를 불렀다. 이만한 가수들을 한데 모아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던 김수철은 공연 후반부에 가서 지휘대에서 내려와 직접 연주도 하고 자신의 대표곡들을 노래했다.
국악인 김덕수가 장구를 메고 나오자 김수철은 장구 리듬에 맞춰가면서 ‘기타산조’를 연주했다. ‘기타산조’는 서양악기인 전자기타로 우리 가락을 연주하는, 김수철이 만들어낸 새로운 장르다. “서양 악기로 우리 장단, 가락을 연주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얘기이다.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의 주제곡 ‘치키치키 차카차카’를 부르자 대극장은 순식간에 축제의 장이 되었다. 여전히 폴짝 폴짝 뛰어다니면서 노래하는 김수철에 맞춰 관객들도 발을 구르며 박수 장단을 쳤다. ‘못다 핀 꽃 한송이’에 이어 마지막 곡인 ‘젊은 그대’를 부를 때는 곳곳에서 관객들도 함께 일어나 율동을 하면서 ‘떼창’을 했다. 돌아오면서 검색을 해보니 김수철의 나이가 어느덧 60대 중후반. ‘치키치키 차카차카’를 부르면서 천진난만한 얼굴로 폴짝 폴짝 뛰어다니는 그를 보면서 나이의 숫자를 짐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 음악은 사람을 늙지 않게 하는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빠진 사람은 늙지도 않는구나.
김수철이 이제까지 낸 음반은 모두 40개고 그 가운데서 국악 음반은 모두 25개다. 그 많은 음반 가운데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앨범은 100만장 넘게 팔린 ‘서편제’ 음반이 유일하다고 한다. 그 많은 국가행사들의 음악감독을 맡았고 작곡료도 제법 받았을 그였지만, 번 돈의 대부분을 국악을 위해 장비들을 구입하고 공부하고 앨범을 만드는데 썼다고 한다. 그래서 큰 부자는 아니지만 김수철에게는 우리 문화인 국악을 하는데 대한 큰 자부심이 있다.
"돈 안 되는 국악을 왜 하느냐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좋아서 하는 거고 자존심이에요. 그래서 가진 빌딩이나 재산은 없지만 제 손으로 세운 '음악 빌딩'은 정말 많습니다."
김수철이 이렇게 자신의 공연을 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혀 놀랐다. 15년 전부터 이런 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도움을 받기 어려워서 이제서야 10억원의 자비를 들여서 성사시켰다고 한다. 김수철은 저녁의 유료 공연에 앞서 낮 시간에는 무료 초대 공연을 했다. “소방관, 경찰, 환경미화원, 우편배달원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시는 분들에게 응원과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는 것이 무대 위에서 밝힌 그의 생각이었다. 앞으로 공연장에서 작은 거인을 자주 만나고 싶다.
“음악 말고 할 게 없는데 무슨 목표가 있겠나. 그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음악작업을 열심히 할 것이다. 내 시대에 모든 국악의 현대화를 완성할 수도 없고, 국악이 계승·발전하도록 다리가 돼주는 역할까지가 내 몫이다. 그 다음엔 의식 있는 젊은 후배들이 나타나 나의 못다 핀 꽃 한송이를 피우지 않을까.” (<세계일보> 10월 10일자 인터뷰)
그가 만들고 부른 노래 ‘내일’의 가사처럼 김수철은 알아주는 사람도 적은 국악 현대화의 길을 외롭게 걸어가고 있었다. “흘러 흘러 세월 가면 무엇이 될까/ 멀고도 먼 방랑 길을 나 홀로 가야 하나/ 한 송이 꽃이 될까/ 내일 또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