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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Apr 24. 2024

30년 정치평론 유창선이 '임영웅 콘서트'에 간 이유

1세대 정치평론가,『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발간

5년 전 뇌종양 수술 후 8개월 병상 생활

쇼팽, 바흐에 이어 임영웅의 트로트까지

“배신감과 허망함을 안겨주던 정치와 달리

예술은 더 좋은 인간이 되도록 손잡아주는 동반자”


 “우연히 임영웅 노래를 유튜브에서 듣고 정신 차려보니 임영웅 대구콘서트를 보러 가는 기차 안이었다.”

1세대 정치평론가이자 30년 이상 정치를 논한 언론인인 유창선 작가는 말했다. “나를 위로해 준 것은 정치도 철학도 아닌, 처음 만난 예술이었다”고. 


지난 15일 여성신문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유 작가는 정치 평론만 하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그 시절엔 “세상의 모든 것을 이념의 잣대로 보려고 했다. 예술의 대한 관심이나 기쁨이 자리할 곳이 없었다. 그렇게 평생을 살았다”고 했다.


『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 저자 유창선 박사는 "배신감과 허망함을 안겨주던 정치와 달리 예술은 더 좋은 인간이 되도록 손잡아주는 동반자"라고 말했다. ⓒ신다인 기자


5년 전 그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갑작스럽게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수술 후에도 8개월 넘게 병상 생활을 해야 했다. 온몸이 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 문병을 왔던 사람들도 유 작가를 보고 다시는 못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오후 9시가 되면 병원은 소등한다. 깜깜한 병상에서 유 작가가 할 수 있는 건 음악을 듣는 것뿐이었다. 그때 들었던 쇼팽, 바흐의 음악은 그의 세계관을 바꿨다.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예술이 주는 치유의 힘을 실감하게 됐다.” 


유 작가는 “배신감과 허망함을 안겨주던 정치와 달리 예술은 사람을 더 좋은 인간이 되도록 손잡아주는 동반자”임을 깨닫고 무거웠던 삶을 내려놓고, 예술을 가까이 하게 됐다.


퇴원 후 그는 공연장을 하나씩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오케스트라, 오페라, 관현악 등 각종 연주회부터 시작해서, 전시회, 연극 등 가리지 않았다.


ⓒ새빛


유 작가는 문화예술 작품들 보고 글을 썼다. 그 글들을 모은 책이 나왔다. 『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이다. 이 책은 근래에 저자가 보고 들었던 문화예술 작품들에 대한 글을 실렸다. 책은 공연이나 전시의 단순한 후기가 아니라 작품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가를 던진다. 


- 경력이 독특하다. 정치평론가의 경험이 예술을 해석하는 데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다.


정치 평론을 하면서 형성된 세계관이 있었다. 정치에는 영원한 선도 영원한 악도 없이 돌고 돌더라. 그래서 정치는 유한하지만 예술은 시대와 이념을 넘어 영원할 수 있다. 그래서 정치보다 위대한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괴물’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영화는 교사의 폭력을 소재로 전개된다. 관객들은 보면서 계속 괴물을 찾는다. 하지만 결국에는 아무도 괴물이 아니었고, 괴물을 기어코 만들려는 우리의 모습이 괴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 시대의 모습과 상당히 비슷하다.


- 책에 임영웅 콘서트가 나와서 놀랐다. 오페라나 교향악단의 공연 등과는 매우 결이 다른 공연이다. 어떻게 가게 됐나.


우연히 유튜브에서 임영웅 노래를 들었는데, 너무 잘 부르더라. 트로트는 낯설지만 꼭 가서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어렵게 표를 구해서 기차타고 대구에 가서 봤다. 


클래식 연주회가 줬던 감흥과는 또 다른 감흥을 얻었다. 장년 세대 여성들이 주 관객이었는데, 그들이 임영웅 노래에 눈물까지 흘리며 위로받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난날의 회한과 상처를 임영웅의 노래로 위로받고 있는 것이었다. 문화예술의 장르에 높고 낮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의 상처받았던 마음을 위로해주고, 외로움을 채워주면 그것이 최고의 예술이 아니겠는가. 초대형 공연을 멋있게 해내는 우리 엔터산업의 능력도 대단하고, 임영웅은 트로트의 역사를 새로 쓰는 대단한 가수다.



- 임영웅 콘서트는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한다. 임영웅 외에도 인기 있는 공연은 티케팅이 어렵다. 어떻게 티케팅을 하나.


이건 비밀인데, 티켓 오픈에 맞춰 경쟁하는 것 보다는 취케팅(취소된 표)을 노리는 것이 그래도 쉽다. 취소 수수료가 붙는 기간을 앞두면서부터는 취소표가 나오기 시작한다. 대개는 취소표 가운데 현금결제분은 새벽 2시께 풀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임영웅 콘서트의 경우 집요하게 열흘 넘게 새벽 2시가 되면 인터파크에 들어가다가 빛의 속도로 간신히 한 자리 건졌다. 조성진, 임윤찬, 해외 명문 오케스트라의 공연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해야 직접 관람을 할 수 있다. 


- 예술이라면 막연히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는 이가 많다. 이 책을 통해 문화예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가지고, 예술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할 때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까. 


예술이랑 친해지면 삶이 풍요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 예술은 돈 많고 고급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나 향유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슬픔조차도 너무도 아름다운 선율과 형상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예술이다. 내면의 슬픔이 있고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야말로 예술과 친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위에 예술을 많이 권한다. 예술이 아직 낯선 분들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공연, 전시를 보면서 입문하면 좋을 것 같다. 단 관람 전에 예습을 하면 좋다. 아는 만큼 들리고 보인다. 예습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이 아니라, 최소한 어떤 곡들을 연주하는지, 그 곡이 어떤 주제를 갖고 만들어졌는지 알고 가면 훨씬 가까워질 수 있다. 미리 음원으로 듣고 가면 더 쉽게 친해진다. 


예술가의 삶에 대한 책을 읽으며 우회적으로 친해지는 방법도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투혼을 발휘해서 작품을 창작했다. 베토벤이, 쇼팽이, 김환기가 그랬다. 박대성 화백은 왼 팔을 잃었는데도 대형 수묵화를 한 손으로 그려왔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삶과 예술을 어떻게 대했는지, 그 자체가 주는 감동이 크다.

- 최근 좋았던 전시, 공연, 영화를 하나씩 꼽는다면. 


전시는 호암미술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전을 추천한다. 한·중·일 3국의 불교미술을 여성주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대형 전시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도슨트의 도움을 받거나 찬찬히 관람하면 의미있는 작품들을 많이 접할 것이다.


연주회는 매월 있는 서울시향의 공연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요새 해외 명문 오케스트라의 공연들은 비싼 좌석은 40~50만원까지 한다. 그런데 서울시향은 얍 판 츠베덴 감독이 취임한 후 해외 명문 오케스트라에 손색없는 연주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가격이 착하다. 제일 싼 좌석은 1만원부터 시작한다. 물론 부지런해야 피케팅(피나는 티케팅)에 성공하지만 서울시향 공연을 권하고 싶다. 


최근 영화로는 <패스트 라이브즈>가 좋았다. 이루지 못한 사랑을 잔잔하게 전달한다. 영화는 마지막에 가서야 관객들의 감정선을 건드린다. 옛 남친 해성을 배웅하고 들어오는데 집 앞 계단에 남편 아서가 담배를 피우며 앉아 노라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아서는 노라가 오자 일어나서 껴안고 노라는 아서의 품에 안겨서 목놓아 운다. 아, 저렇게 슬펐구나. 노라의 감정이 느껴져 좋았다.

* <여성신문> 4월 19일에 실린 저자 인터뷰입니다. 인터뷰와 정리는 신다인 기자가 했습니다.

원문 링크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7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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