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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 Jun 19. 2019

#3. 잘 지내지 못한다고

2019년 5월 상반기

봄바람 부는 5월, 세 번째 클럽 저널입니다!

날이 너무 좋아 중앙놀이터에 나가서 책을 팔고 싶어집니다.

햇볕 잘 드는 창가에서 따뜻한 차와 함께 책 한 권 어떠세요?

이번 달에 추천 책 목록이 클럽 저널 아래에 있습니다.

밑줄 표시는 인용 링크로 연결 되니 한번 클릭해보세요! �


Club Journal #3 May 9th

<잘 지내고 있지 않다고>

#pascalcampion #illustrator #newyork


벌써 클럽 저널 슬럼프(?)가 와서 두 편을 날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세 번째 도전합니다! 글쓰기는 익숙해지려 하다가도 막막한 것 같아요. 뭘 쓸까 고민하다가 지난 주에 읽은 글에 관한 단상을 나눕니다.


외국인 친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어로 대화했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마구마구 할 수는 없었지만 그와의 대화는 어딘가 특별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하루에도 몇 번씩 묻는 쉬운 안부인사, “How are you doing?” 때문이었습니다. 직역하면 “너 어떻게 하고 있어?”라는 이상한 말인데, 끊겼던 대화를 다시 시작할 때 자주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면 저는 “Pretty good(꽤 좋음)” 부터 “Not tooooo bad(아주 나쁘지는 않음)” 까지의 넓은 스펙트럼으로 저의 상태를 솔직하고 간편하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어로 안부 인사를 물으면 누구나 잘 지낸다고 답하곤 합니다. 거기서 갑자기 요즘 잘 못지내고 있어, 라고 속마음을 드러낼 수 있다면 상대와 무척 친한 사이라는 증거겠죠. 하지만 영어권 문화 특히 미국에서는 처음 보는 식당 종업원도 요즘 어떠냐고 묻고, 손님은 아무렇지 않게 별로야, 라고 대답할 수 있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문화를 스몰 톡(Small Talk)이라고 해요. 지난 주에 이 문화에 대한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대학원 개강을 일주일 앞두고 뉴욕에 도착한 유학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개 한마리와 엄청나게 많은 짐을 들고 JFK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다 들지 못해 몇 번이나 가다가 서고, 가다가 서고. 공항 택시 기사는 질색하는 얼굴로 짐을 트렁크에 싣습니다. 3일 묵을 숙소만 구해놓고 엄동설한의 뉴욕에 난민처럼 도착한 그녀는 비상사태를 감지하고 커피 한 잔도 사먹지 않게 됩니다. 커피 한 잔을 사먹는 것 뿐인데, 그 돈이 없으면 집을 못 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낯선 사람과는 자연스러운 대화 한 번도 나누지 않고, 자신만큼 의지할 곳 없는 개를 데리고 뉴욕 여기저기를 다닙니다.


그 와중에 외국인 학생을 한 번 더 인터뷰 한다는 대학원의 요청에 학교도 갑니다. 시험관은 중년의 백인 여성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How are you?”라고 묻자 그녀는 며칠 전에 뉴욕에 왔다고, 이렇게 추울 줄 몰랐다고 답합니다. 시험관은 개강이 며칠 뒤인데 아무 계획도 없이 뉴욕에 온 한국인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죠. 어디에서 머무르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영어는 물론 한국어로도 해본 적 없는 횡설수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구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강아지를 데려왔는데 아픈 것 같다, 왜 강아지를 데려왔을까, 뉴욕이 생각보다 너무 춥다… 시험관은 간단한 안부인사에서 그런 사연을 듣게 되길 기대하지 않았을텐데, 그래도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습니다.


조금 후 면접관 몇 명이 모여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시험관이 그녀에게 다가와 우리 중의 한 명이 집에 빈 방을 하나 가지고 있다고, 거기서 집을 구할 때까지 머무르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다른 무엇보다, 낯설고 추운 뉴욕 땅에 자신과 개 한 마리가 찾아가면 문을 열어주는 방 한 칸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고 합니다. 어느 도시든, 무례를 무릅쓰고 들어갈 방 한 칸이 있다면 무척 안심이 되겠죠. 어쨌거나 그 모든 것은 “How are you?”라는 작은 안부인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집을 구하는 와중에 동네 식당의 가면, 점원이 “요즘 어떻게 되어 가니(How’s it going)?”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그녀는 집을 구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너무 비싸거나 너무 위험하다고 대답했답니다. 그러면 점원이 소스 종이에 케찹으로 나비를 그려주었다고 합니다. 케찹 나비가 집을 구해주는 건 아니지만, 그녀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런 사소한 안부와 서로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주고 받으며, 그녀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책방에서 하는 초등학생을 위한 영어원서클럽도 보통 스몰톡으로 시작합니다. “How are you?” 물었을 때 수줍게 “Fine”이라고만 대답하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Bad...”부터 “Happy!”까지 점점 대답이 다양해지죠. 이유를 묻고 대화를 나누면서 아이들이 왜 즐거워하고 무엇 때문에 속상한지 배웁니다. 그렇게 작은 대화가 쌓여서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도 유대감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한국어로는 잘 하지 않는 이야기도, 아이들이 영어로 더듬더듬 하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언어라는 것은 확실히 그 나라의 문화를 많이 담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한국어에도 원어민은 잘 느끼지 못하는 커다란 세계관이 담겨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지만, 영어만 배우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았습니다. 책방에서 하는 독서교육도 그저 공부로서의 국어가 아닌, 언어가 가진 따뜻한 힘을 더 많이 알려줄 수 있기를 바라며, 여러분께도 안부인사를 보냅니다. 날씨가 참 좋죠,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오! 나의 책방은 어린이들에게 책의 재미를 가르칩니다.
책을 좋아하는 어른, 책방을 좋아하는 어른을 기다립니다.


<Coming Up 5월>  

    북클럽 책을 선정하는 기준들  

    영어원서로 영어를 배우려면?

    봉태규 신간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 북콘서트 후기  

    책방 주인이 읽고 있는 책들  


<관련 기사 링크 및 읽어볼 만 한 글들>

아이를 바이링궐(이중언어사용자)로 키우려면? 조지은 옥스포드대 언어학 교수 책 소개 기사

스몰톡의 힘, 뉴욕커 에세이 번역


<이번 달 추천 책 목록_어린이북클럽 리딩로그>

재미있는 신간이 꽤 많이 나왔습니다!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 신작, <여행의 이유>

(멋진 소설가) 권여선 작가의 장편소설, <레몬>

(응용언어학자) 김성우 작가의 <단단한 영어공부, 내 삶을 위한 외국어 학습의 기본>

어린이북클럽 5월 책 1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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