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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 Jul 06. 2019

사람, 장소, 환대

89화

이번 주에는 <사람, 장소, 환대> 라는 책을 읽었다.


고백하건데 나는 책을 탐독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문장마다 곱씹어가며 음미하지 않는다. 현재까지 내가 그렇게 읽은 책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유일한데 그것 마저 다 읽지는 않았다. 내가 읽는 목적은 그 책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는 책이 내 삶에 한 부분으로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독서는 내가 시간을 보내는 유익한 방법 중에 하나이다. 지금까지의  훈클럽(내가 속한 독서모임) 책도 나는 내가 내 삶에 허락하는 만큼에 한해서 즐겨 읽었다. 어쩐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책의 저자는 사람과 사회를 면밀히 관찰한 듯 하다. 이렇게까지 인간군상(?)에 대해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니, 저자의 삶이 궁금했다. 단순히 흥미였던 걸까. 어쨌든 이렇게 누군가 사람과 사회에 대해 고민해 놓은 결과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다. 어떤 책은 비쌀 수가 없다.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눈을 감고 떠올려보았다. 그는 아마도 사람이 사람으로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 일에 대해 깊은 염원을 담아 이 책을 쓴 것 같다. 그 일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아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일 것이다. 단순히 '인권'이나 '보장' 뭐 이런 낱말에 내포될 수 없는 문제다. 우리 엄만 어릴 때 나에게 아주 자주 엄마를 무시하느냐고 말했다. 나는 내가 엄마를 무시하고 있는 걸까, 항상 고민이 되었다.  어린 나는 내가 무언가 잘못했다는 것을 느꼈다. 엄마가 화를 내고 있긴 하지만 상처를 받은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 나는 내가 상처를 주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어른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이석원이 최근작에서 그런 문장을 썼다. 상처를 주는 사람은 상처를 주면서 곧장 상처를 받는다. 상처를 받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이 상처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이석원을 좋아하지만 그는 적잖이 어리광쟁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 책에 나오는 문장들 사이사이로 내 삶 속에 어떤 기억들이 모래알처럼 흘러내렸다. 나는 공간에 대한 집착이 있다. 다른 사람의 공간에 침투하려는 욕심이 커서, 선물을 할 때는 언제나 향기로운 것이나 그 사람의 공간에 자리를 크게 차지할 만 한 것을 선물하는 편이다. 그건 내가 중학생 때 보고 좋아하게 된 일본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에게 따뜻한 빛의 스탠드 조명을 선물하며 '하루의 방은 어쩐지 차가운 느낌이 들어서'라고 말했던 대사가 와닿았기 때문이다. 공간을 장악하는 것에는 힘이 있다. 조명. 향초. 음악. 커튼. 이런 것들은 공간의 분위기를 짓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그런 것을 선물해서 그 공간에 대한 내 지분을 늘리려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고 보니 보잘 것 없는 욕망이다. 내가 그렇게 침투해서는 안되었던 공간도 많다.


우정에 대한 글이 좋았다. 외국 영화를 보면 가끔 나이 차이를 뛰어넘은 우정을 그린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가 그놈의 동갑 타령 때문에 손해보는 게 많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놈의 사랑과 우정 사이... 우정은 사랑과 헷갈릴 만 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밝혔듯이 우정은 존중와 인정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보답의 문제에 있어 너그러워야 한다. 가끔 선물에 대해 생각하는데 나는 진정한 의미의 선물을 얼마나 하면서 살았나, 회의가 든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환대의 의미로 누군가에게 선물을 많이 할 수 있었을까. 그럴 마음의 여유가 있었을까.


스무살이 되던 무렵. 나는 사람들이 나를 불편해한다는 걸 알았다. 그 때의 나는 너무 자의식이 강하고 태도가 명확해서,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걸 누군가 불편해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너무 슬펐다. 그 때부터 나는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왔다. 있어도, 없어도 모를 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만큼 그 꿈을 이뤘는지 모르겠다.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있으면 나는 더없이 편안한 기분을 느낀다. 혹은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우리가 서로를 모른다면 세상은 더 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기에 우리는 투명한 눈으로 알아봐야만 할 것이다. 그게 편안해질 수 있는 두번째 방법이니까.외면하지 않고.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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