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아무도 잠재울 수 없는 소란과 혼란의 도가니. 누군가 천장에 대고 총 한 발을 시원하게 쏜다. 그 때 찾아올 잠깐의 적막. 그게 간절한 요즘이다.
속이 너무 시끄러운 날들이었다. 내가 세운 계획, 내가 꾸는 꿈, 내 일상, 모든 것을 비웃는 내 습관, 내가 잊고 있던 내 과거, 내가 저당잡힌 것들, 내가 받는 기대, 믿음, 사랑, 나의 방해꾼들, 내 친구들. 나의 모든 게 내 속에서 서로를 비웃고, 더 잘 비웃기 위해 심지어는 공부를 하고, 비웃음을 당하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높이고, 비웃음을 당해 슬퍼서 소리내 울고, 그걸 달래느라 또 다른 소리를 필요로 하고. 음, 대충 이런 시끄러움이었다.
분명 서울은 무척 시끄러운 도시 중에 하나일 것이다. 거리엔 한 가게씩 건너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이 곳은 첨단 도시라고 죄다 주장하는 듯한 소음을 내니까. 여기 내 방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조용한 세상을 만끽하려고 해도, 단지 내 귀로 감지할 수 없을 뿐인, 먼 곳의 차소리와 크락션 소리. 누군가 싸우거나 사랑하는 소리. 그 얕은 조용함 때문에 더 짜증이 날 때가 있다. 그래서 그냥 음악을 켜고, 무엇으로 이 소음을 덮어볼까 고민해버리는 것이다.
깊은, 깊은 고요를 언제쯤 느껴볼까. 내 마음이 조용할 때.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동안 소리를 잃어버렸으면.
난 요즘 많은 걸 읽고 보고 듣고 있는데, 내가 진짜 궁금한 건 하나도 없었다. 내가 궁금한 건 내가 알던, 좋아하던 사람들의 안부. 다정하고 위로가 될 만한 대화인데, 그런 건 어디서도 들을 수 없겠지. 하지만 그쪽으로 귀를 기울여야한다는 건 알겠다. 쓸데없는 소리를 다 듣고 해석하는 것보단.
그래서 그냥 나에게 귀를 기울여본다.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