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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 May 30. 2019

못된

87화

개인적으로 나 자신을, '착함'이라는 도덕적 기준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도 감히 아니라고 말 못하게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할 정도로 착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게, 착한 건 똑똑한 거나 예쁜 것보다 훨씬 힘이 약해서 매번 나 자신이 다치거나 위험해지는 결말에 부딪힌다.


진짜 웃긴 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 자신 뿐이다.


최근에도, 그 전에도, 우리 엄마는 날더러 '넌 못됐다'는 말을 종종 한다. 나는 그 말의 의미와 무게와 내포된 기대까지 가만히 느껴본다. 그렇게 느끼고 있을 때엔 자주 슬프고, 때론 뿌듯하다. 나도 엄마한텐 못된 딸이구나, 그게 내심 안심이 된다. 나도 누군가에겐 못된 사람이라는 게. 게다가 펜언니도 종종 말한다. '네가 착한 건 아니지'. 그 말도 어쩐지 그녀가 조심스럽고도 강하게 내뱉는 말이라서 자꾸 되새겨본다. 그러면서 느낀다. 내가 착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가만히 가만히.


최근에 서점에서 아이들과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읽었다. 삐삐는 말괄량이가 아니라 괴짜다. 삐삐는 선생님의 질문에 '선생님도 모르는 걸 제가 어떻게 아나요?'라고 되묻고, 지나가는 아이에겐 엉터리같은 거짓말을 들려주며 골린다. 삐삐는 못된 아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나에겐 그렇지 않다. 삐삐는 단지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답을 알면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을 뿐이고, 지나가는 아이도 자기 자신도 심심하다고 생각했던 것 뿐이다. 그 모든 장난과 거짓말 속에 삐삐에게는 나쁜 뜻이 없었다는 것이, 나에겐 소중한 것 같다.


하지만 나쁜 뜻이 없이도, 사람은 사람을 괴롭힌다. 심지어는 좋은 뜻으로도 그렇게 한다. 그건 누구의 잘못일까. 아마 명확히 판단할 순 없겠지. 그러나 적어도 나는 삐삐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을 자신은 있다. 삐삐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그렇다면 삐삐 말고 현실에서는 누가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을까. 나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사람. 그 사람이 내가 선택할 사람이다.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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