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며칠 째 글을 한 편도 완성하지 못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오늘은 반드시 한 편을 올린다. 보통 이렇게 결심을 해야만 글을 완성할 수 있는데, 이걸 매번 까먹는다.
책방 문을 일주일 넘게 열지 못했다. 일을 안한 건 아니고, 열심히 바꾸는 중이다. 최근 몇 년 간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았는데, 앞으로는 수업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속이 시원하면서도 아쉽고 어떤 면에서는 원망도 남는다. 고이 키운 딸을 시집보내면 꼭 이런 기분일까. 아니다, 그건 지금보다 나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처음엔 너무 이상했는데, 며칠 지나 생각해보니 지난 글의 말미에 내 손으로 이상한 말을 써 놓은 게 아닌가. 이 행복을 누군가 죄 앗아간다해도 억울할 것 같지 않다는.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누군가 내 행복을 죄 앗아갔다.
그래도 일상은 남아있는 법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도, 건강하던 몸이 아파도, 시간은 고맙게 흐른다. 시간이 흐른다는 게 슬프고 아쉬운 날만 있으면 그것도 문제겠다. 걱정을 하다가도 차분히 눈을 감고 잠을 청했고, 아침에 깨면 어느 사이 수영장에 가 있는 날들. 일단 책방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거의 폐허가 된 책방에서 무릎을 굽혀 하나씩 치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씩, 이제 일주일이 넘었다. 이 시기에 아무런 글도 쓰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의 나를 똑바로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똑바로 하자.
요즘 <한국에 삽니다>를 읽고 있다. 콜롬비아 작가가 한국에 살면서 쓴 일기모음집 같은 건데, 웃지 않을 수 없는 서글픈 문장이 많았다. 어제 읽은 문장은 이것이다. "지하철 안에서 엄청나게 큰 토사물 흔적을 보았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본 가장 끔찍한 모습이다." 나는 아직 본 적 없는 모습이다. 다행이다. 콜롬비아는 한국보다 더 끔찍한 곳일까? 나는 한국에서만 살아봐서 잘 모른다. 그래서인지, 어디라도 한국보다는 나을 것만 같다. 이 책의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 한때 내가 일하고 싶었던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여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한때? 지금도인 것 같다.
요즘 보는 드라마 때문에 서울 도심 풍경이 여느 때보다 더 멋있어 보인다. 이 나라에서 누리는 게 꽤 많은데, 나는 고마운 줄 모른다. 나 뿐만은 아닌 것 같다. 뭐, 공짜로 누리면서 하는 욕이야말로 제맛이다. 가끔 내 안에 이렇게 삐뚤어진 면을 발견하면 반갑고 기쁘다. 너무 많이 발견하는 날은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지지만 그것도 영 나쁘지만은 않다. 내가 내 마음에 들 정도로 완벽하게 착할 수는 없다.
방금 까맣고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깜찍한 남자가 책방 앞을 지나가며 기웃거리기에 나도 고개를 갸웃거렸더니, 이사가시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곧 다시 연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 이사가는 줄 알고 깜짝 놀랐네, 라고 말했다. 책방에 온 적도 없으면서 무슨 소린지? (책방에 온 적이 있다면 기억할 만 한 깜찍함이었다) 그리고 내가 여길 떠난다면 그건 이사가 아니라 망하는 거겠지! 그걸 이사라고 이름 붙일 수는 있겠구나. 영영 어디론가 멀리 멀리 이사갑니다.
일상. 더없이 소중해졌다. 내 마음에 꼭 드는 탁상시계를 하나 사서 머리맡에 두고 매일 본다. 저번 날엔 오랜 친구도 초대해서 같이 와인을 마셨다. 그 설거지를 며칠 전에 해치웠다. 아침엔 수영을 한다. 수영 브라도 샀다. 수영장 친구랑 친해졌다. 출근하면 혼자 책방을 진짜 조금씩, 그러나 부지런히 예쁘게 꾸민다. 음, 이만하면 됐나?
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