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야 이바시키나,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책읽는곰, 2022
수영을 다니고 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이런저런 운동을 해왔다. 역류성식도염, 관절염, 목디스크, 골다공증, 메니에르, 돌발성난청, 과거 한 때는 공황장애까지. 몸이 자주 아팠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병들은 아직도 내 곁에 남아 한 번씩 내 몸을 불편하게 하지만, 가장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던 공황장애는 이제 거의 발병하지 않는다. 숨이 넘어갈 것 같고 이대로 죽을 것 같은 기분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심장내과, 정신건강의학과를 전전했었다.
가장 유의미했던 치료는 병원에서 <내 몸에는 이상이 없다>고 말해준 것이며, 그러니 이제 <마음을 한 번 돌아보아야 할 것>이라는 권유였다. 이비인후과에서도 그랬고 가정의학과와 심장내과에서도 그리 말했다.
다 비슷한 이야기였다.
"심전도 검사도 정상이고....일단 약을 드리긴 할 건데 계속 불편하시면 다른 과를 한 번 가보세요. 요즘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으셨나요?"
가정의학과 의사가 조심스럽게 물었었다. 스트레스야 많이 받죠,라고 무심히 대답했더니 의사는 재차 물었다. 무슨 일인지 말해줄 수 있느냐고.
"시어머니랑 남편이랑 싸웠어요. 엄청 심하게요. 가운데서 그게 좀 힘들어요."
가정의학과 의사는 내게 화병이 난 것 같다며 관련 약을 줄 테니 먹어보고 차도가 없거나 더 심해지면 꼭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권고했다. 다른 병원... 나는 그 병원이 어디인지 알 것 같았다.
이비인후과에서 어지럼증 검사를 했을 때, 이비인후과 의사도 검사 결과가 떠있는 모니터를 보며 똑같이 말했다.
"귀는 일단 괜찮아요. 다 정상범주에 있고... 숨이 가쁘고 어지럽다고요? 어지러울 때 막 쓰러질 것 같고 죽을 것 같고 그런가요 혹시?"
그렇다는 내 말에 의사는 몇 가지의 문진을 더 하더니 이내 가정의학과 의사와 비슷한 말을 내게 건넸다.
"빠른 시일 내에 심장내과 가서 부정맥 검사도 해보세요. 여기서 좀 확인해 보고도 정상이라고 하면 다음은 정신적인 문제일 수 있거든요."
심장내과에서 부정맥을 잡아보려 24시간 심박수를 체크하는 홀터 검사를 받을 때였다. 부정맥이 오는 것 같을 때마다 기계에 달린 버튼을 누르는 방식의 검사인데, 나는 그 버튼을 수시로 눌러댔다. 후룸라이드나 롤러코스터를 탈 때처럼 심장이 자꾸만 아래로 떨어졌다가 올라오는 기분을 느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쿵, 쿵, 쿵, 큰북을 치는 듯한 심장소리가 너무 들려 잠을 자지 못했다. 어쩌다가 잠이라도 들었을 때에는 심장이 과도하게 펌프질을 해서 과호흡이 오기도 했다. 심장이 불편할 때마다 버튼을 수시로 눌러댔다. 결과는 정상이었다.
"이다 님이 부정맥이라고 여기고 버튼을 눌렀을 때도 심장은 정상이었어요. 심장은 문제가 없습니다."
나는 내 마음에 이름을 붙여주어야만 했다. 나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다음 수순은 불 보듯 뻔한 거였다. 그래도 몸이 아픈 줄 알았는데 몸이 아픈 것보다 나은 것도 같았다. 심장에 병이라도 있는 거였으면 정말 어쩔 뻔했냐며 자위하는 마음이, 제법 편하기도 했고 이상하기도 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공황장애 약을 먹고부터는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병을 고칠 수 있었다. 약만 받아오는 것이 아니라 갈 때마다 짧게라도 상담을 받았는데 그게 도움이 된 것 같다. 의사가 해주는 말들은 특별한 게 없었다. 다만 의사는 먼지 덮인 내 속마음을 꺼내어 이야기를 할 동안 기다려주었고 공감해 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었다. 내 편이 되어주었다. 정처 없이 부유하는 내 깊은 감정의 소리들을 이렇게 귀담아주는 의사가, 참으로 고마웠다. 약은 잠시 먹었다. 상담도 잠깐 했다. 오래 다니기에는 심리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이 높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려서 아이를 유아차에 끌고 데리고 다녔는데, 그 자체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아픈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정신과에 간다. 여기 다니는 동안 아이가 무의식에라도 무엇을 보고 느낄지 겁이 난다.'
아마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아이에게 좋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어 치료는 스스로 중단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로부터 수년 후, 나는 다른 정신건강의학과에 가게 되었다. 다른 병명으로. 이 이야기는 훗날 용기가 나면 해볼 생각이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약물과 상담으로 공황장애 증상의 상당 부분은 제거했다. 그 후에 상담심리사를 만나 약 없이 상담을 몇 회 더 해보았다. 비슷한 내용들을 재방송하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또 그만두었다.
나는 직업적 이유로 혹은 여러 직간접 경험으로 심리상담사분들을 더러 보아왔는데 그분들한테 상처를 받거나 인간적인 실망을 할 때도 왕왕 있었다. 직업적 윤리에 어긋나는 언행을 보아올 때, 특히 그러했다. 그래서 차라리 약을 먹는 게 낫지 함부로 상담을 받는 건 더 위험부담이 크다 생각해 왔다. 그래도 그 상담사님은 충분히 좋은 사람이었고 능력 있는 분이었다. 그분의 인자한 미소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그러나 거부감을 아예 지울 수는 없었다. 결국 열 번을 계획하고 시작한 상담일정이었지만 한두 번을 남기고 상담은 종료했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뭔 소리를 하는 건가... 이런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열 번을 다 채우고 나면, 나는 변해있을지 변하지 못할지, 나는 조금 더 행복해질지 아니면 여전히 미궁 속에서 살게 될지 더럭 겁이 났던 것도 같다. 그래도 상담을 통해 내 마음의 상태를 마주하니 내가 힘들었던 이유,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내가 어떤 부분에 예민한지를 알 수 있었다. 연막탄을 가려져있던 적의 정체를 알고 나니, 겁이 줄어든 기분이랄까.
나는 쉬고 싶었다. 아내, 엄마, 딸, 며느리, 직장인, 프리랜서, 친구, 학부모, 조카, 이웃, 동생, 언니, 누나, 후배, 선배, 제자, 동료... 모든 것이 젖은 솜처럼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기분이었다. 내게 무엇도 원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너무 잘 살고 싶은 나니까. 잘해보고 싶은 나니까. 잘해보려 숨이 자꾸 턱끝까지 차니까, 이제 나를 그만 좀 찾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타인에게서 상처를 받을 때조차 나는 내 편이 아니었다. 무조건적으로 나를 응원하고, 좋아해 주는 온리원이 나여야만 했는데 나는 나의 안티였다. 원래 팬이 '까'가 되면 제일 무서운 법이다. 나는 나의 취약한 점을 제일 잘 알아서 그 부분만 노리면서 내 마음에 적시타를 쳤다.
나는 내가 수영을 좋아하는 이유를 안다. 수영을 하면 몸이 개운하고 시원한 건 부수적인 이유다. 무엇보다 마음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때리는 시간을 물리적으로 줄일 수 있어서다.
부드러운 물살에 내 몸을 맡기고 둥둥 떠있는 채로 발차기를 하고 팔을 돌린다. 호흡을 하면서 앞으로 전진한다. 이런 것들만 생각하면서 한 바퀴, 두 바퀴 돌다 보면 머릿속에 가득 찼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녹는 기분이 든다. 내 부정적 감정들은 수용성이었을까. 물속에서 나는 이미 죽어 하나의 자유로운 영혼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느끼고, 반대로 살아 숨 쉬는 환희를 느끼기도 한다.
이로써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 찾았다. 나는 수영을 통해 평안과 생각의 자유를 만끽한다. 외로울 때 물이 날 안아준다. 사는 게 숨이 가쁠 때, 폐가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수영을 한다. 마음이 불안해서 과호흡이 왔다면 이제는 열심히 발장구를 치고 팔 꺾기를 해서, 숨이 차다. 물속에서 바라보는 타인들은 둥글둥글하기만 하다. 둥근 배를 띄우고 배영을 하고 하얀 다리는 마치 인어의 꼬리처럼 부드럽게 펄럭이며 접영을 한다. 저마다 외부의 날을 걷은 채, 부드럽게 유영하는 모습들이 보기 좋다. 레인 끝에 도달해 손 끝으로 타일바닥을 탁, 칠 도 짜릿하다. 잠영을 할 때마다 꼬르륵 거리는 물방울 소리도 좋다. 외부의 모든 목소리를 차단하는 '물들'이 좋다. 수영장은 나의 스물 트론스텔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