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가족 연대기 12

설 특집

by 김병호


13. 쌍둥이어서 가능한, 아니 불가능한 일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절대, 절대로! 내 동생 쌍둥이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이야기를 전해 들은 또 다른 쌍둥이가 있음에 그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모든 과거가 그렇듯,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어쩌면 허구에 가까운 창작일 수도 있다. 어느 쌍둥이가 전화를 걸어와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압박을 가한 일 또한 절대 없었으며 그에 굴복해 거짓을 만드는 일 또한 없었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상상해서 변명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만 말해둔다.


지금부터 어느 쌍둥이 중 형을 1번, 동생은 2번이라 부르겠다. 쌍둥이는 늦게 나온 아이가 형이라는 가설이 있어 둘이 앉아 투덕투덕 싸우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 봤자 10분 차이로 태어났고 심지어 거의 똑같이 생긴 존재 둘을 놓고 형 동생을 따지는 일은 아무 의미 없다. 지금은 불룩 나온 50대 아저씨의 배 부피 차이로 아무 어려움 없이 둘을 구별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위아래를 가리는 기준은 아니다.


청소년기의 인생을 이렇게 나눠보자. 공부와 사고(accident). 물론 말도 안 되는 분류이고 해서는 안 될 억지이며 나라 망칠만한 편견이지만, 이런 억지스러운 분류를 꺼내는 이유는 그 쌍둥이의 청소년기를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둘은 공부와 거리가 먼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럼 당연히 나머지 무언가를 많이 쳤을 것이다.


뒤죽박죽인 이 글을 쓰다 보니 새삼 가족의 과거를 돌이켜보게 된다. 그 결과 참 일도 많고 탈도 많은 집안이었다는 깨달음이 아프게 때린다. 조용하게 생활하면서 차곡차곡 안정적으로 삶을 쌓아가는 집안들도 얼마나 많은가? 아니면 그들 또한 집안에 속 시끄러운 일이 많음에도 조용하게 드러날 뿐인가? 그저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일일까?


그 쌍둥이는 국민학교를 다니면서부터 태권도 도장에 다녔다. 운동신경은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사춘기 생활을 시작한다. 그들의 중학교 시절이 어땠는지 많은 기억은 없다. 모두 나가 놀았기 때문이다. 집에 있을 때에는 손에 빗 하나씩만 들려주면 거울 앞에 앉아 하염없이 잘도 놀았다는 기억이 어렴풋하다.


쌍둥이 중 1번은 태권도 선수생활을 하기 위해 공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2번은 인문계열 고등학교에서 좀 놀았다. 아니 나는 그들이 어떤 종류의 사고를 치며 어떤 비밀스러운 생활을 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역시 나가 놀았기 때문이다.

2번이 다닌 인문계 고등학교는 옛날 분류로 공부를 하는 학생이 많음에도 사고깨나 치는 학생들도 많았던 학교였다. 이 학교에서도 2번은 성적으로 아래에 둔 학생이 10명 안쪽이었다. 그가 직접 말을 했다면 속된 말로 이렇게 했을 것이다. “전교에서 내 밑으로 아홉이나 깔았어. 나 이런 사람이야.” 사실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 학교도 지금은 바뀌었다. 집안의 큰 조카도 훗날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 입학했고 지금 점잖은 휴학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시간을 점프해서, 1번과 2번은 고등학교 졸업이 다가오자 모여 잔머리를 합쳤다. 이 정황은 나의 추측이다. 그러나 대학을 눈에 담기에는 둘 모두 무리가 있어 보이는 상황은 객관적 사실에 가깝다.

이들의 잔머리는 놀라운 상상력에 이른다. 자신들이 일란성쌍둥이라는 사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태권도 선수생활을 했던 1번의 겨루기 실력은 자신의 말로 “국가대표급”이라고 했으니 국가대표 2~3군 정도라고 짐작하면 될 것이다. 2번의 장점은 아무리 9명을 깔았으되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이라는 점이었다. 이들은 각자의 장점을 살려 분업을 기획했다.


1번과 2번은 각각 다른 대학의 태권도 학과에 지원하고 다른 날짜의 실기와 필기 스케줄을 잡는다. 그래서 두 번의 겨루기 실기는 1번이 모두 책임지고 두 번의 필기시험은 2번이 책임지기로 한 것이다. 당황스럽고 놀랄만한 기획이지만 비밀스레 일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조용히 끝났다. 물론 당시에 나는 몰랐다.

시험 전 인터뷰 자리에서 주민번호를 묻는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형제의 주민번호는 거의 같고 한두 자리만 다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주민번호를 잘못 댔다. 면접관은 사진을 다시 살피고는 자신의 주민번호도 못 외우냐고 질타하고 또박또박 일러주었다고 한다. 그들은 그 시절 똑같았다.


이 놀랄만한 계획은 그러나 비극으로 끝났다. 둘 모두 떨어진 것이다. 1번의 말로 자신은 두 번의 겨루기에서 상대를 완벽하게 압도했다고 했다. 이 주장에 2번은 크게 대응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드러난 원인은 기대보다 한참 저조한 2번의 필기 성적 때문이었다. 추측컨대 4지선다 문제 중 한 번호만 찍었을 경우의 기댓값에도 못 미친 성적이었을 것이다. 그런 증언도 없지 않았다. 이들은 당시 크게 싸웠다. 물론 항상 싸우기 때문에 별로 새로운 일도 아니었지만. 그리고 이들은 중년이 되어서 만난 설날에도 싸웠다.


이 사건은 30년 전의 일이고, 흐린 기억에 사실이 아닐 수도 있으며, 다른 쌍둥이들의 일임을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이 소문을 근거로 썼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설날


둘은 일란성쌍둥이였고 함께 대학입시에 실패했다

둘은 어릴 적부터 태권도를 했고 이것으로 팔자에 없던 대학을 눈에 담았다

형은 공고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동생은 인문계에서 놀았다

둘은 각자의 잔머리를 모았다 각각 다른 대학을 지원한 둘은

형이 두 번의 실기를 책임졌고 동생은 두 번에 걸쳐 필기시험을 보았다

형이 실수로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대자 면접관이 동생의 것으로 바로 잡아줄 정도로 둘은 똑같았다

둘 모두 대학에 떨어진 이유는 인문계를 다니던 동생이 10등급 내신으로 유감없이 발휘한 찍기 실력 때문이었다

30여 년 전, 둘은 피 튀게 싸웠다 다시는 안 볼 다짐을 한 싸움이었다

설 차례상 앞에 선 철없는 두 중년

흉터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며

불콰하다 또 싸운다


-시집 『밍글맹글』에서 발췌



*도터맨의 밀린 잠 때문에 이번에는 일러스트가 없이 발행합니다. 누구도 도터맨을 탓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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