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6년간 살았던 집을 떠났습니다. 집 바로 아래에는 사는 동안 질리지도 않고 이틀에 한 번꼴로 꼭 들렀던 밥집이 있었습니다. 사실 맛이 특출난 집은 아닙니다. 대충 손으로 빗다 포기한 머리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가도 딱히 불편할 일 없는 거리, 부담 없는 가격 같은 것들이 나를 오랫동안 그 집으로 이끌었죠. 그리고 또 하나, 사장님이 꼭 엄마를 닮았습니다. 이제는 꽤나 주름이 패여서 어디 가서 자칫하면 할머니 소리 듣고 기분 나빠할 수도 있을 우리 엄마를요. 어제 아침에도 그 밥집을 들렀습니다. 하루가 무척 바쁘게 돌아갈 게 뻔했기 때문에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싶었던 거죠. 사실 사장님께 다른 동네로 옮겨가게 됐다고 '이밍아웃'을 하고도 싶었습니다.
- 참치김치찌개 하나 먹고 갈게요.
이른 시간이어서였는지 밥집엔 사장님과 나, 둘뿐이었습니다. 덕분에 타이밍을 재지 않고 바로 말씀드릴 수가 있었어요.
- 저 오늘 이사가요.
사장님은 내게 몇 년이나 여기서 살았던 건지, 어디로 가는 건지, 가는 곳은 어떤 곳인지 여러 가지를 물어오면서 동시에 사장님이 요즘 가족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혼자 살면서 얼마나 행복한지도 말씀해주셨어요. 오피스텔은 모든 게 다 갖춰져 있어서 좋더라면서. 넓은 집은 청소하기에 벅차기만 하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딱 혼자 살기 제격이라면서. 어디에 있든 내가 만족하고 행복하면 그게 최고라면서. 사장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내게 하는 말인지 경계가 모호하면서도 듣고 있기 좋았습니다.
처음에 몇몇 단골들이 이사를 간다고 털어놓았을 때는 울기도 하셨다고 했어요. 의외였어요. 사장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편이니 그쯤 나이가 되셨으면 이런 이별에 충분히 무뎌지셨을 거라는 착각을 했었나 봐요. 그러면서 이제 우는 일은 없지만 저 역시 다른 곳으로 간다니까 서운하다고 하셨어요. 자주 찾아오겠다고 대답했지만 사장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죠.
- 그렇게 말 해도 못 와. 몸이 멀어지면 그래. 처음에 몇 번 오다가도 영영 안 와.
빈말은 결코 아니었는데 그렇게 부정하시니 머쓱할 만도 했지만 그렇지는 않고 그냥 그렇겠다, 그렇겠지, 싶었어요. 참치김치찌개를 기다리면서 한 시절인연이 또 다시 저물어가는 순간을 응시하지도 회피하지도 않은 채로 덩그러니 앉아 있었죠. 곧 밥이 나왔고 난 따끈한 밥과 반찬과 찌개로 위장을 덥히기 시작했어요.
- 이제 간다고 하니까 후라이 하나 튀겨줘야겠다.
사장님은 곧 계란후라이를 하나 내오셨고, 6년 동안 이따금씩 얻어먹었던 후라이 중에서 어제 먹은 후라이가 제일 짰습니다. 그때 생각났어요. 죽음은 무슨 맛일까. 관계와 인연에도 숨결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어제 아침에 한 인연의 생명이 페이드아웃 되는 장면을 목도해야만 했어요. 사람이 암만 슬퍼서 그 슬픔을 울음으로 퍼내어도, 내 앞을 막아선 답답함을 앞질러본답시고 뜀박질로 땀을 흘려도, 육체의 항상성은 결국 늘 혈액의 염분농도를 0.9%로 유지한다는 거 아세요? 사람은 늘 짠내를 일정량 머금고 살아야 해요. 마지막 날숨에는 그래서 평생 가지고 있던 그 짭짤함도 같이 내뱉지 않을까요? 죽음은 그래서 딱 농도 0.9% 소금물만큼의 짠맛을 함유한 무언가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 밥집에서의 마지막 계란후라이를 베어 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