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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Sep 06. 2024

이것이야말로 하이퍼리얼리즘이다

제16회 대단한 단편영화제 상영작 5편 추천 및 리뷰


KT&G 상상마당 홍대 개관과 함께 시작된 대단한 단편영화제가 올해로 벌써 16회째를 맞이했다. 9월 5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6일부터 9일까지 상영 및 GV를 가지고, 10일에는 시상식을 가지며 막을 내린다.


나는 운 좋게도 키노라이츠상 심사위원으로 선정되어 남들보다 먼저 본선진출작 25편을 관람할 수 있었다. 재기 발랄하고 재능 넘치는 감독들의 개성이 묻어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좋은 시간이 됐다. 쟁쟁한 본선 25편 중에서 추천하고픈 단편영화 5편을 꼽아봤다.



껌벅



오다은 감독의 연출작 '껌벅'은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등 SNS를 발판으로 어린 친구들이 유명 크리에이터 혹은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사회현상에서 출발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 또한 조회수 대박에 목숨을 걸고 있으며,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고자 하는 욕망에 눈멀어 폐수련원에 거주하는 노숙자를 찾아 나선다.


폐수련원 건물을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경태(임현묵), 지한(이승노), 선민(윤경호) 세 사람을 옥죄어오는 스릴러적 긴장감이 극대화되고 이들의 욕망을 끊임없이 시험한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끝지점에는 소름 끼치는 현실이 깜짝 등판해 입틀막하게 만든다.


영화 후반부에는 오늘날 SNS의 필수 요소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챌린지'와 SNS를 바라보는 젊은 세대들의 시각도 반영하고 있어 시의성 또한 갖췄다.



스위밍



'스위밍'은 이번 본선 경쟁작 중 오랫동안 여운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11분 9초라는 상당히 짧은 러닝타임에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와 통통 튀는 세계관을 함축적으로 잘 담아내서다.


이 작품은 SNS를 통해 벌어지는 부정적 이슈에서 영감을 얻어 무의식을 SNS로 공개할 수 있는 실시간 무의식 접속 앱 '스위밍'을 메인 소재로 삼았다. 이를 통해 헤어진 연인 마디의 무의식을 조작하려다 자기 자신이 파괴되는 나빌의 이야기를 그린다.


무의식으로 접속하기 위해 헤엄쳐 가는 캐릭터들의 모습, 그들의 각양각색 무의식을 기발하게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보는 이들마저 스크린 속으로 다이빙하게끔 몰입도를 높인다. 다소 어두운 스토리라인임에도 무겁지 않게 풀어나가는 점도 특징. 특히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 및 내레이션이 한국어가 아닌 아랍어로 진행하고 있어 신비로움을 유발한다.



오디션



전국 순회공연 중인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소소하게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국내 대표 원로배우인 신구, 박근형이 여든이 넘은 고령에도 젊은 배우들보다 더욱 뜨거운 연기 열정을 무대 위에서 펼쳐 보이며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있어서다. 이들과 함께 연극계에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이순재도 있다.


단편영화 '오디션'의 주인공 영수를 보고 있노라면 신구와 박근형, 이순재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TV 드라마의 배역을 따내기 위해 끊임없이 대사를 암기하며 연기 열정을 불태우는 그의 모습은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현재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노년들을 북돋아주는 듯한 상징이었다. 그러면서 오디션 영상을 제대로 전송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과정이 안쓰럽게 다가오기도.


영수 역을 맡은 배우 임형태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영화의 흡입력을 높인다. 영수의 딸로 분한 송아경 또한 실감 나는 생활 연기와 감정선을 그리며 영화의 후반부를 채워 넣는다.



천왕봉



이보다 더 하이퍼리얼리즘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현실 부자관계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들은 그동안 많았지만, '천왕봉'처럼 진짜 가족이 등판해 날 것을 보여주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부산에 사는 아버지와 서울 유학생활을 하는 아들이 함께 천왕봉 일출을 보러 가는 이야기를 담은 '천왕봉'은 연출을 맡은 김재우 감독 본인과 그의 아버지가 동반 출연했다. 그래서인지 첫 장면부터 영화라기보다 두 부자의 일상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두 사람은 적대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매우 친한 것도 아니다. 불편하면서도 적당히 가까운 부자가 티격태격하다가 서로를 이해하는 등 자연스러운 전개가 탁월하다. 또 현실에서 볼법한 상황과 관계성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건, 아버지와 아들이 대피소에서 라면을 같이 먹는 장면이다. 대피소에 도착하기까지 소소한 에피소드와 갈등을 빚은 두 인물이 라면을 먹는 동안 알게 모르게 서로를 챙기는 게 미소 짓게 만든다.



혼자



이경호 감독이 연출한 단편영화 '혼자'는 시각장애를 가진 선미(선지이)가 가족과 싸우고 집을 나온 뒤, 친하게 지내던 선배 영선(강진아)과 함께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겪는 일상을 그린다.


19분 50초 동안 영화는 가족으로부터 독립해 '나 혼자 사는' 선미에게 초점을 맞춘다. 혼자 사는 장애인들이 겪는 불편함과 이를 개선해야 할 제도적 측면을 다루지 않고, 누구나 혼자 살게 되면 맞이하는 일상을 그림일기처럼 표현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 피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기보단 일단 부딪치는 선미의 모습은 홀로서기하는 이들에게 공감대를 불러 모은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포인트는 보이지 않는 선미가 사물, 주변 등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대신 영선을 포함한 주변인들의 다양하고 디테일한 설명을 들은 채 상상하는 선미의 미소를 보고 있자면, 같이 웃음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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