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놈: 라스트 댄스' 외 3편 리뷰
10월이 되니 영화, OTT에서 다양한 작품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하나하나 따로 조명하기엔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기에 한 패키지로 모아서 간단 리뷰를 하려고 한다. 대상은 '베놈: 라스트 댄스', '대도시의 사랑법',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그리고 '파친코 2'다.
'베놈: 라스트 댄스'
1편과 2편이 일찌감치 망작으로 인증받은 가운데, 3편인 '라스트 댄스'의 완성도가 높을 거라고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심각했다. 수습도 못하고 캐릭터 정체성마저 완전히 포기해버렸다.
이미 1, 2편에서 스파이더맨의 숙적이자 안티히어로로서 위상과 정체성은 무너진 상태에서 3편에선 '괴짜 히어로'로 노선을 변경한 것 같다. 그러나 영화가 끝날 때까지 베놈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찾지 못하고 헤맨다. 그저 에디 브룩(톰 하디)과 '금쪽이' 베놈 듀오의 티격태격과 인간에게 급 다정한 면모, 널(앤디 서키스)이 보낸 제노페이지를 끌어안고 자폭하는 등 종잡을 수 없다.
하이라이트인 베놈과 심비오트 군단이 태그팀을 이뤄 제노페이지에 맞서는 액션 신도 어이가 없다. 저마다 다른 능력을 지닌 심비오트들이 인간을 숙주 삼아 다양한 액션을 펼치긴 하나, 심비오트의 존재가 무엇인지 의문점만 가득할 정도다. 또 에디 브룩을 제외한 나머지 등장인물 모두 일회용품처럼 소모됐다. 여기에 전편처럼 영화 말미 등장하는 쿠키영상을 통해 제작 준비 중인 '스파이더맨 4'에 대한 호기심만 자극한다. 결국 '라스트 댄스'가 아닌 '자폭쇼'가 되어버렸다.
★
'대도시의 사랑법'
비슷한 시기에 같은 원작을 삼은 영화와 드라마가 연달아 공개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런데 '대도시의 사랑법'은 영화와 OTT 플랫폼을 통해 두 가지 버전의 매체물을 대중에 선보였다. 흥행과 별개로 영화와 드라마 모두 수작이다.
영화는 '재희' 챕터만 집중하여 각색했다면, 티빙을 통해 스트리밍 중인 8부작 드라마는 원작 소설 네 편의 챕터를 모두 담았다. 고영(남윤수)의 1인칭 시점으로 20대 초반부터 30대까지 흐르는 시간을 따라가며 그의 사랑과 성장에 포커싱한다. 때로는 티아라의 'Sexy Love'처럼 발랄하다가도 어떤 때에는 쓰디쓴 소주 한 잔이 생각나는 블루스처럼 애잔하다. 판타지가 가득한 BL(Boys Love) 장르가 아닌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퀴어 장르를 네 명의 감독(손태영, 허진호, 홍지영, 김세인 감독)이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각 챕터를 연출했다.
주인공 고영의 맡은 남윤수의 존재감도 돋보인다. '고영을 집어삼켰다'는 표현이 적합할 만큼, 눈부신 존재감을 뽐내며 극 전체를 이끌어 나간다. 영화판 '대도시의 사랑법'을 하드캐리한 김고은-노상현 케미와 비교할 수 있는 또 다른 재미포인트다.
★★★☆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는 영화 제목에서 한 치의 오차도 벗어나지 않고 정직하게 내용과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면서 명령어적인 타이틀에서 짐작할 수 있듯 범죄 누아르 장르 특유의 무게를 잡고 심각한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무게 잡는 것에 비해 뻔한 캐릭터와 익숙한 서사 등 영화의 허술함들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아픈 딸을 둔 명득(정우)과 도박빚을 진 동혁(김대명) 두 캐릭터는 다양한 작품에서 봐왔기에 기시감이 강했고, 그렇기에 이들이 공포에 떨거나 고뇌에 가득 찬 표정을 짓는 등 다른 면을 보여줘도 신선한 맛은 없다.
영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 결말로 가는 과정은 답정너처럼 정해진 길로만 간다. 영화를 이끄는 두 주인공을 비롯해 주변 인물들의 서사는 새롭거나 밀도 높지 못하다. 그렇다고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았다거나 감동이 있다던지, 이런 맛도 없이 뜬금 피날레로 장식해 자신들의 매력이나 관전 포인트를 제 살 깎아 먹듯 반감시킨다. 크게 벌리려고만 하고 아무것도 수습하지 못하는 모양새가 됐다.
★★
'파친코 2'
2년 만에 시즌 2로 돌아온 '파친코'는 시즌 1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선자(김민하)가 살았던 1940년대, 선자(윤여정)의 손자 솔로몬(진하)의 1980년대를 병렬 구조로 전개한다.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갈래 이야기가 계속 교차되는 건, 같은 뿌리를 두고 있어서다.
시즌 1에서처럼 이민자의 삶을 조명하지만, 시즌 2에 접어들어선 조금 더 좁혀 '자이니치(재일교포)'로 살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선자와 솔로몬의 두 중심인물 사이에 노아(김강훈/강태주), 모자수(소지 아라이/권은성/만사쿠 다카다)의 이야기를 더하면서 서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또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가 하면, 역사와 인간은 그림자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답도 안겨준다. 이를 포괄적으로 함축한 로제의 'Viva La Vida'가 엔딩신에 삽입됐을 때는 왠지 모를 뭉클함과 울컥함이 터져 나온다.
'파친코 2' 또한 시즌 1에 못지않은 오프닝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소설 첫 문장에 적힌 문구를 영상화한 듯, 더 그로스 그루트의 'Wait A Million Years'를 배경음 삼아 흥에 취해 제멋대로 춤추는 배우들의 환한 미소는 진한 여운을 안겨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