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Hyun Oct 27. 2024

당신이 그립습니다, 마왕

신해철, 이제야 당신의 진가를 알게 됐습니다


2024년 10월 27일, '마왕'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 지 10주년이다.


이를 기리기 위해 이달 초 MBC에선 특집 다큐멘터리 '우리 형-신해철' 2부작을 방영하며 신해철과 인연이 있는 인물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그를 반추했다. MBC를 비롯해 다른 방송사에서도 신해철을 조명하며 추모행렬에 동참했고, 어제(26일)와 오늘 양일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선 신해철 트리뷰트 콘서트 '마왕 10th: 고스트 스테이지'가 열린다.


1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리워하면서 계속 소환하는 건 그가 매우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고, 대중음악문화계와 청년층에게 꾸준히 부각되고 있는 독보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신해철은 어떻게 남았을까 생각해봤다. 패기 넘쳤던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나의 주변에서 맴돌았으나, 그가 떠나간 자리를 뒤늦게 깨달은 케이스였다. 넥스트를 결성한 시점부터 한국 록의 한 획을 그은 건 문자로 일찌감치 접했고, '해에게서 소년에게'나 'Lazenca, Save Us' 등 일부 곡도 알고 있었다. 아 맞다, '100분 토론' 등 방송에서 출연해 언변이 뛰어난 '비정치인 논객'인 것도 안다. 


그러나 신해철이라는 사람에 대해선 깊숙하게는 잘 몰랐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그랬던 것 같다.





2007년 5월, 갓 입학한 대학교 새내기가 이제 교내 분위기에 적응한 뒤 찾아온 축제 주간.


동아리와 유명 가수 등을 섭외하는 축제와 함께 교내 학생회에선 대동제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학교 학생회는 대동제 메인이벤트로 과별로 응원전을 배틀 붙이는 것으로 기획했다. 그래서 중간고사가 끝날 시점부터 과별, 섹별로 인원을 모아서 머리를 맞대고 곡 선정부터 퍼포먼스 구성, 안무 연습까지 집단 지성의 힘을 발휘하는 데 열을 올렸다. 노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인싸 기질이 충만했던 나에겐 이런 이벤트는 땡큐지.


30여 팀이 참가한 응원전. 그중 1/5 이상이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를 선곡해 치어리딩 안무를 선보였다. 그때 처음 알았다. 무한궤도의 메인 보컬이 신해철이고, 그가 동문이었다는 걸.


학교 선배님이지만, 그의 데뷔곡이자 대표곡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도나도 사용한 것 같아 괜스레 반발심이 생겼다. 계속 '그대에게'가 흘러나오니 지겨워졌다. 그 여파로 금지곡처럼 한동안 멀리했다.



그리고 과에서 친하게 지냈던 동기 중에 신해철 헤비 덕후 한 명이 있었다. 다소 외골수 기질이 강한 그 친구는 종종 음악 이야기가 나오면 신해철이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스테이션'을 통해 들었던 에피소드를 꺼냈다.


'고스트스테이션'을 들어본 적이 없는 내 입장에선 먼나라 딴나라 이야기. 그래서 '아~ 그런가 보다'라며 넘겨 들었다. 한 번 찾아서 들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본방은 새벽시간대라 패스. 직접 찾아 다시듣기를 할 만큼, 열정적이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나의 mp3 플레이어엔 마왕이 비집고 들어오기엔 너무나도 많은 뮤지션들이 플레이리스트에서 점유율 싸움을 펼치고 있어서 점점 밀려났다. 죄송해요, 당신의 자리가 없어요.




'마왕' 신해철을 본격 디깅하기 시작했던 건, 그가 세상을 떠난 뒤인 2014년 11월쯤부터였다. 생전 연예계에서 활동했던 이력을 재조명하며 고인을 기리는 언론계의 방식대로 신해철 또한 과거 업적들이 매체를 통해 소개됐다.


그러면서 신해철이 솔로로서 밴드로서 활동하면서 공개했던 곡들을 하나둘씩 찾아듣기 시작했다. 한동안 봉인했던 '그대에게'도 다시 들어봤다. 발매된 지 약 30년이 다 되었음에도 촌스럽기는커녕 트렌디한 인트로 전자음, 몽글몽글한 감성을 자극하는 가사와 구성.. 요즘 나오는 노래들과 견줘도 높은 퀄리티를 자랑했다. 귀가 트이고 음악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니 '그대에게'의 완성도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이걸 이제야 알다니..


그리고 수많은 곡들을 통해 한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과 실험정신을 보였다. 록을 기반으로 하면서 테크노, 재즈, 국악, 클래식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가 하면, 노래 중간에 랩도 추가해 직접 소화하기도 했고 '날아라 병아리' 같은 자전적인 곡 등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이적의 노래 제목처럼 그때 미처 알지 못했지. 이제야 마왕의 능력을 알았지 뭐야.



시간이 흘러, 2016년. 마왕을 다시 한번 디깅하는 원동력을 제공한 주범(?)이 있었으니 MBC '복면가왕'의 레전드 우리동네 음악대장. 


고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특유의 보이스 덕에 단번에 국카스텐 프런트맨인 하현우인 건 알았으나, 그가 '민물장어의 꿈'과 'Lazenca, Save Us', '일상으로의 초대'를 경연곡으로 사용해 또 다른 느낌으로 재해석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신해철이 만든 노래가 이렇게 좋았던 것인가. 


'복면가왕'과 음악대장 덕분에 신해철 플레이리스트를 알차게 무한재생했다. 그해 여름 6주간 남아메리카 대륙 여행을 할 때도, 신해철은 나와 함께 했다.




10월 27일, 올해도 다가왔다. 이 날만 되면 마왕 형님이 생각나서 그의 명곡, 숨듣곡 싹 다 긁어서 들었는데 오늘도 스마트폰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해 둔 '마왕' 리스트를 재생시킨다. 그를 기리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내돈내산하는 게 마음이 편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