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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Sep 05. 2024

내돈내산하는 게 마음이 편해

연예부 기자들의 무료 콘서트 관람을 부러워하는 이들에게 고합니다

연예부 기자 직함을 달고 사회활동을 했던 시절, 지인 포함해 내 직업을 듣고 난 뒤 빠지지 않고 나오는 고정 질문들이 있다.


그러면 영화 공짜로 먼저 보겠네요?
유명 콘서트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거야?
XXX 콘서트도 돈 안 내고 볼 수 있겠네??


이들의 질문에 답하자면, "50% YES"다. 엄연히 일을 하러 가는 것이긴 하나, 내 돈 내고 참석하는 것은 아니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나한테는 이것이 업인데도 질문자들은 '일하러 간다'보다 '공짜', '무료입장'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래서 내가 영화 시사회나 콘서트를 취재하러 가는 행위를 공짜로 즐긴다고 생각하고 이를 부러워한다.


주변에 부러워하는 시선을 향해 나의 선배들을 포함한 연예부 기자들은 이런 식으로 대응한다.



아니야. 내돈내산하는 게 내 마음이 훨씬 편해!


이렇게 답변하면, 주변인들은 공감하지 못한다. 일도 하고 구경도 하고 일석이조 아니냐고 반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부러워하는 이들에게 부러워하지 말라는 뜻에서 과거 에피소드를 몇 개 풀어보고자 한다.




2018년 5월 어느 일요일 오후, 종합운동장역 부근.


스포츠 경기와 콘서트가 같은 날 잡히다 보니 종합운동장역 지하철 출구부터 인파로 가득 찼다. 물론 나는 야구장이 아닌 실내체육관으로 가야만 했다. 트와이스의 두 번째 콘서트 현장을 취재하러 가야 하기 때문.



보통 가수들 콘서트는 금~일 3일 간격으로 진행하는 게 국룰인데, 이 중에서 기자들을 초대해 콘서트 취재를 요청하는 날짜는 일요일이 많다. 트와이스 또한 일요일 오후에 취재가 가능했고, 당시 부서 막내였던 내가 당첨됐다.


실내체육관까지 이어지는 대기줄이 과장 안 보태고 1km 이상은 족히 넘었다. 게다가 일반 관객, 프레스 전용 라인으로 따로 구분하지 않았기에,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는 수밖에.


3, 40분 기다려서 프레스용 티켓을 보여줬고, 배정된 좌석을 찾으러 실내체육관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무릎 위에 노트북을 펼쳐 들고, 소속사 측에서 미리 알려준 웹하드에 접속해 관련 사진 및 자료를 다운받았다. 앞으로 펼쳐질 2시간 반 가량 되는 콘서트 정보를 파악하면서 어떻게 기사를 구성할 것인지 고민했다.


거의 6시가 다 되었을 때쯤이었을까. 트와이스의 콘서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커플, 친구, 가족, 솔로 등등 9명의 멤버들이 준비한 콘서트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왜냐면 나는 이 2시간 반 가량 되는 콘서트 현장을 기사로 써야 하기 때문에 어느 포인트를 부각할지, 어느 구간에서 팬들 반응이 좋은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콘서트를 지켜봐야만 했다. 프레스석이 따로 구분되어있다면 모르겠다만, 일반 객석 사이에 섞여있다보니 나 혼자 즐기지 못하는 고문당하는 기분이었다. 2시간 반이 이렇게 길었던가.


밤 9시 언저리. 앵콜까지 가득 채워 거의 3시간가량 되는 콘서트가 끝나고, 관객들의 발걸음은 가볍지만 나 혼자만 무거웠다. 아니, 누구보다도 빨리 실내체육관을 탈출해야만 했다. 지금부터 기사 마감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 이 주변을 자주 온 사람들은 알 터, 노트북을 펼쳐놓고 마감할 수 있는 공간이 과연 어디에 있냔 말이지!


딱 한 곳 있다. 야구장 부근에 있는 분식집. 마침 저녁도 못 먹었고 하니, 끼니를 때울 겸 마감하러 들어갔다. 사실상 마지막 손님이었던 나는 영업 종료시간까지 꽉꽉 채워서 겨우겨우 기사 마감에 성공했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했다..



한 달 뒤, 어느 일요일 고척돔과 가까운 구일역.


다시 돌아온 콘서트 취재. 이번에는 워너원 월드투어 콘서트다.



구일역에 내리려는 순간, 지난달 트와이스 콘서트 취재가 양반이었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워너원 멤버들을 보러 전국, 아니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팬 군단에 치이면서 강제 하차했다. 카운팅이 무의미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이들에게 사방으로 전방압박 당한 채 좁디좁은 지하철역 출구를 떠밀려서 빠져나왔다. 나도 모르게 "사람살려"를 외칠 뻔.


콘서트 시작은 아직 서너시간 남았음에도 구일역 출구부터 수많은 사람들로 빽빽했다. 그와중에 일부 팬들은 자신들이 핸드메이드한 굿즈를 유료나눔 하려고 돗자리를 펼쳤다. 이걸 서로 돈 주고 팔다니, 수요가 있으니 다들 쟁여나왔겠지? 예전의 팬덤 문화와는 많이 바뀌었구나. 나중에 아이돌 굿즈 장사를 하면 제법 쏠쏠한 수입을 얻을 수 있겠다며 부업 계획도 러프하게 세워봤다.


오후 3시, 월드투어 시작을 앞두고 워너원 멤버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라면 기자회견장이 엄청 클 것 같았지만, 고척돔 내 기자회견장으로 준비한 공간은 생각보다 크진 않았다. 워너원 멤버 11명이 앉는 간이 무대가 1/3 이상 차지하고 이들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은 철제 의자에 앉아 저마다 가져온 노트북은 무릎 위에 펼쳐주고 타이핑해야만 했다. 장소마다 다르긴 하지만, 이 당시 고척돔은 생각보단 협소하고 열악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기자 한 명당 던지는 질문은 2, 3개, 그 중에 공통질문이 아니면 거의 대답하지 않는 멤버들도 있다. 그렇게 3~40분간 기자회견을 마치고 재빨리 현장 기사로 마감처리한 뒤, 소속사 측에서 나눠준 간식 도시락을 허겁지겁 먹었다. 콘서트 현장 분위기를 취재하러 지정좌석으로 올라가야했기 때문이다.


워너원 콘서트는 비교적 취재하기엔 편했다. 소속사 측에서 스카이석 두어 곳을 프레스석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팬들과 거리두기하면서 워너원 콘서트를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라고 말하지만 사실 나를 포함한 취재진들은 눈으로는 콘서트 관람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노룩상태로 노트북 키보드 치고 있었다.


콘서트 취재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이면, 어느 타이밍에 빠져나와도 괜찮을 지도 대충 감이 온다. 고척돔 주변이 교통편이 극악인 점을 감안해, 앵콜 타임에 접어들기 전에 주섬주섬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프레스석 2/3가 비었다. 눈치게임으로 먼저 빠져나간 동지들이 많았구나. 이런, 내가 늦었구나.


고척돔을 빠져나오면서 두 가지 고민을 했다. 근처 식당에서 밥 먹으면서 마감을 끝낼 것인가, 아니면 교통지옥에서 벗어나 집에서 편하게 마감할 것인가. 기자회견 때 나눠줬던 도시락 양이 너무 적었는지, 배고픔이 커져왔다. 전자를 택하며, 고척돔에서 5분 도보 거리에 있는 치킨집에서 반반을 시킨 채 콘서트 취재 기사를 마감했다. 언제나 그랬듯, 다음날에도 출근했다. 휴...




8월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금요일 늦은 오후, 잠실 보조경기장


낮 기온 37.8도.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 폭염 속에서 야외 콘서트 취재를 다녀오라는 데스크의 명을 받고, 잠실 보조경기장으로 향했다. 이 미친 날씨에 야외 콘서트를 여는 용자가 누구냐면,



여름마다 찾아오시는 '워터밤 원조(?)' 싸이의 흠뻑쇼다.


기자가 되기 훨씬 전부터 싸이 콘서트의 악명(?)은 익히 알고 있었다. '돈 낸 만큼 본전 이상을 뽑아준다'는 후기가 즐비할 정도로 콘서트 시간이 매우 길며, 대학교 축제에서도 1시간 이상 꽉꽉 채우고 가는 그 분이다. 이걸 취재로 갈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다. 어쨌든 흠뻑쇼 렛츠고.


퇴근 시간과 휴가 기간이 맞물려서인지, 강남에 있는 회사에서 잠실 보조경기장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 짧은 거리에도 유난히 차가 많이 막혔다. 나는 이 시간을 즐겼다. 왜냐하면 지금 아니고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쐴 일이 앞으로 몇 시간동안 없을 것 같아서였다.


다행히 제 시간 안에 콘서트장에 도착 완료. 저녁 다 되어서 시작하다 보니, 콘서트 주최 측에선 취재진에게 간단한 저녁 도시락을 제공했다. 식사를 완료한 뒤, 전달받은 파란색 우의를 입고 콘서트 좌석으로 올라갔다. 여기 프레스석은 제~~~일 뒷자리인 보조경기장 야외좌석 제일 꼭대기 구석탱이. 스테이지에서는 거리가 엄청 멀지만, 전체 다 보이기 때문에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첫 곡 'RIGHT NOW'와 함께 흠뻑쇼 스타트. 흠뻑쇼 아니랄까봐 첫 곡부터 아낌없이 물대포를 발사했고, 파워가 워낙 좋아서인지 안 닿을 줄 알았던 젤 뒷자리까지 뿌렸다. 그것도 아~~주 흠뻑 말이다. 우의 뿐만 아니라 노트북 보호용 비닐까지 챙겨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하마터면 노트북님 강력한 물벼락 맞고 운명하실 뻔 했다. 과장 아니고 이날 2곡당 1번 꼴로 거침없는 물세례가 이어졌다.


왕년에 무한체력을 뽐내던 싸이도 나이 앞에 장사 없던지라, 예전에 비해 체력저하(?)를 호소하는 모습을 드러냈고 중간중간 게스트 공연으로 채우며 숨고르기했다. 그에 반해 흠뻑쇼를 보러 온 10대부터 70대 관객들은 지치기는커녕, "물 좀 줘!"라고 외치며 열광했다. 열정이 너무 컸던 나머지, 일부 관객들이 실수로 배관을 밟으며 물공급이 끊기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공연자와 관객들은 즐겁지만, 취재하는 입장에선 고역이었다. 해가 졌어도 습도는 여전히 매우 높았고, 여기저기서 물줄기를 뿌려대니 자나깨나 노트북 사수에 신경써야만 했다. 비닐 속으로 침투할 수도 있으니 철저하게 디펜스하면서 기사 작성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여기에 세트리스트와 준비된 앵콜까지 무려 30곡 이상이 넘었는데도 도통 끝날 기미가 안보인다. 빨리 자리를 뜨고 마감해야하는데, 흠뻑쇼가 어딜 가냐고 나를 붙잡고 있다. 살려주세요, 싸이님. 집에 가고 싶어요.


앵콜의 앵콜의 앵콜을 할 무렵, 이때 아니면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아 잽싸게 자리를 떴다. 취재진 대기공간에서 마감하려고 했으나, 이미 폐쇄된 상태. 설상가상으로 제공 사진이 아직 웹하드를 통해 업로드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때 뭐다? 일단 퇴근!


1시간 반 넘게 걸려 집에 도착할 때 쯤 되자, 사진이 하나둘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무작정 보조경기장 부근에서 대기했다가 집에 가지도 못하고 큰일날 뻔 했구나. 결국 기사 마감은 새벽 2,3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고, 다음날 오전자로 바로 발행됐다. 위 사례에서 알겠지만, 월요일 오전 반차? 그런 거 없다. 월요일 정상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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