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나믹 듀오만큼 맛깔나진 않은 나의 이직SAGA를 씁니다
2년 전 '유퀴즈'에 출연한 김은주 자기님 방영분은 나에게 인상 깊었다. 삼성전자에서 구글 수석디자이너로 이직하기까지 드라마틱한 과정, '행복한 개구리' 이야기도 좋았지만 그 사람의 습관이 크게 와닿았다.
매년 12월이 되면 지난 한 해를 정리하고 이력서를 업데이트한다. 이직과는 상관없이 하는 일이다. 1년 동안 일을 되돌아보면서 내 심장이 뛰던 순간이 있었는가를 곱씹게 된다. 1년 내내 신날 필요는 없다. 다만 1년을 되돌아봤을 때 한두 번 정도는 재밌다고 느끼는 순간이 필요하다.
-김은주 자기님-
그 방송분을 본 뒤, 나는 각종 구직사이트에 묵혀뒀던 이력서를 꺼내보면서 업데이트되지 않았던 부분을 하나씩 채워나갔다. 이후 나의 새로운 습관이 되었다.
최근에 이력서를 열어봤다. 30대 중반인 현재, 나의 직장생활은 대학시절 알바와 군대 3년 포함하면 10년 이상. 보기에 따라 길어 보이거나 혹은 짧아 보이는 시간인데, 재밌는 게 10여 년 안에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는 점. 직장러가 된 지 얼마나 됐다고 경력기술서에 다양한 회사 이름으로 꽉 채울 수 있었을까. 그중 최장 근속연수는 2년 8개월.
장기근속을 중요시하는 기성세대들은 "이렇게 끈기가 없어서야.." 하고 혀를 쯧쯧 찰 지도. 가까운 예로, 우리 부모님만 하더라도 불과 몇 년 전까지 회사를 옮기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셨다. 하지만 나의 파란만장한 직장생활기를 들어보면 이직하게 된 이유가 '충분히 납득'될 수준이기 때문이다(아니라고 우기면 어쩔 수 없고). 그래서 한 번 털어놓는 나의 파란만장 이직썰이다.
첫 번째 직장은 201X년 사회에서 알게 된 지인 Y를 통해서 들어간 중소규모 매체. 당시에는 정규직이 아닌 객원 기자 혹은 칼럼니스트 그 사이에 놓여있는 위치였다. 당시에는 기자를 하겠다는 확신보다는 다른 직업을 찾아보면서 매주 건 바이 건 식으로 기고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기고하는 빈도수가 늘어났고, 자연스레 정기자에 준하는 수준으로 가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로 나를 불렀다. 정기자에 가까운 위치가 됐으니 모니터링하고 기사를 쓰는 법을 가르치겠다고 편집장이 소환한 것. 하지만 그는 나에게 기본을 가르쳐 주기는커녕 베껴쓰기, 어그로 끌기, 말 그대로 홈페이지 트래픽을 올리는 지저분한 방법만 전수한 것.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양반도 날림으로 배워서 지금 위치까지 왔단다. 다음 회사에 가서 다시 기초부터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이게 문제인지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 편집장처럼 '물경력 기자'가 됐을 지도.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근로계약서를 썼다. 그때 실수라면 그 회사가 건네준 엉터리 근로계약서와 처우 등에 처음부터 이의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 내 글, 내 기사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넘쳤던 나머지 그들이 나를 후려쳐서 매긴 내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두어 달이 지나고서야 바로잡기에 나섰지만, 100% 제대로 잡진 못했다. 그렇게 노동착취(?)급의 실태가 하나둘 드러나고, 가끔 잡힌 회식에서 일어난 불쾌한 상황도 봤고 결정타로 급여가 두 달 밀리면서 회사를 떠날 결심을 했다.
따지고 보면, 일하지 않고 책상만 차지하는 몇몇의 높은 연봉을 감당 못하고 수익도 제대로 나지 않고 회사 오너라는 사람의 황당무계한 플랜이 빚어낸 결과물인데, 피해는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다. 여기에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얼렁뚱땅 근로계약서로 맺은 3달과 객원으로 일했던 기간을 제외해서 줄 수 없다는 것. 결국 노동청에 신고했으나,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도 못했다. 당시 나는 너무 순진했고, 노동청 직원들이 생각 이상으로 매너리즘으로 대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큰 이슈가 일어나는 사이에 두 번째 회사로 이직했다. 내가 '기자'라는 업무를 제대로 배우고 경험치를 열심히 쌓았던 게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언론 매체임에도 확실한 평일 주 5일제로 운영돼 워라밸은 있는 대신, 평일 5일이 꽤나 빡셌다. 카드 뉴스, 포털사이트 전용 포스트, 유튜브 콘텐츠 영상 기획까지 여러 업무를 동시수행해야만 했다. 초반 5-6개월 정도 버티고 나니, 일이 손에 익고 나의 능력도 쑥쑥 올라갔다.
1년 뒤 회사에 큰 변화가 생겼다. 수익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는다는 모기업에 계신 오너분의 판단에 자매 매체와 통합이 됐다. 이 때문에 회사 동료들이 부쩍 늘어났고, 내가 해야 할 업무도 늘어났다. 비록 평일 5일제 근무는 빠이빠이가 됐어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점에서 행복했다.
물론 행복이 오래가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19 창궐이라는 엄청난 태풍이 미디어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 여파로 일부 언론사는 문을 닫거나 인원을 대거 감축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정보 보고로 들으면서 남의 일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우리 회사에도 영향을 끼쳤다. 수많은 나의 직장 선후배들 상당수가 하루아침에 무직자 신세가 됐고, 나는 차가운 칼날을 피해 살아남았다. 그들이 직장을 떠난 것이 내 책임이 아닌데도, 괜히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여름이 지나고 보니 나 혼자 살아남아 상처투성이 서바이벌 최종 승자가 됐다. 추석 연휴가 올 때 즈음 새로운 편집장이 왔는데, 이미 마음은 회사를 떠난 상태. 여기에 새 편집장과 방향성이 맞지 않았고, 결국 가을에 다른 곳으로 떠났다.
세 번째 직장은 첫 단추를 끼우는 것부터 꼬였다. 커리어 발전을 위해 이직을 했거늘, 내가 지원했던 부서와는 전혀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게 된 것. 물론 회사 사정에 따라 부서 이동이 이뤄질 수 있으니 이해는 한다. 그런데 현장 취재 등이 동반하지 않고 '묻지마 기획 3개 뽑기'라니. 말이 좋아 기획이지, 트래픽 수를 올리기 위해 기사를 기계처럼 양산하라는 소리였다. 기사 쓰는 법도 모르고 다짜고짜 기사 쓰는 기계가 된 저연차, 신입들은 까이고 터지고 깨지면서 갈려나갔고 결국 정규 전환 없이 떠났다.
수습 기간이 끝나고 잠깐 가진 휴가를 즐기고 회사에 돌아왔다. 그런데 나의 권한이 몽땅 회수되어 있었다. 돌아와선 안될 사람이 돌아온 건가, 분명히 휴가 끝나고 출근하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이때부터 기분이 매우 불쾌했다. 그날 오후 편집국장의 호출을 받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러 갔다. 계약서에 적힌 연봉 숫자가 이전 직장보다 훨씬 적게 적혀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반응을 보이는 나를 보던 편집국장은 이사와 이야기된 게 아니냐면서 그를 호출했다.
잠시 후 등장한 이사의 말은 가관이었다. 나와 이야기한 적도 없는데 "다 끝난 이야기인데 뭔 소리냐", "넌 이 정도다"라고 후려치기 했다. 이사의 말도 안 되는 페이스 말리지 않고, 계약서에 서명할 수 없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연봉도 연봉이지만 무엇보다도 대놓고 푸대접하는 태도에 환멸과 모욕을 느꼈다. 그래서 다음날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이별을 고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으로 인해 퇴사하게 된 나는 당분간 휴식을 취하면서 그동안 일 때문에 바빠 미뤘던 자기 계발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새 직장을 찾아봤다. 휴식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새로운 직장으로 터전을 옮겼다.
네 번째 직장은 이전 직장들에 비해 전체적인 규모는 적었고, 사무실 거리도 집에서 가장 멀었다. 대신 전보다 여유가 있었다. 소화해야 할 업무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질구레한 보도자료까지 일일이 다 처리해야 하는 게 귀찮긴 하지만 다년간 짬바로선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바뀐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회사의 문제점을 짧은 시간에 봐버렸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닥치고 보도자료 다 챙겨' 모드라고 하는 게 맞다. '이걸 왜?'라고 의문점이 드는 것까지 모조리 써서 트래픽을 올리는 가내수공업 매크로 전법이 이 회사의 주특기. 연예 매체면서 정치 경제 사회 스포츠 등 조회수만 된다면 가리지 않고 써재껴야 하는 것. 어째 첫 직장에서 봤던 스타일과 빼닮았다.
단순 노동(?)이 메인인 이 좁디좁은 회사에서 컨트롤 타워를 하고 싶어 편집장(겸 대표)과 이사가 허구한 날 단톡방에서 보이지 않는(사실 다 보인다) 기싸움을 펼쳤다. 기자들에게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지시하는데, 두 인물이 충돌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특히 언론 쪽 지식이 1도 없는 이사는 써야 될 것, 쓰지 말아야 할 것 분간 못하는 티를 내는데 창피함이 없어 보인다. 별 시답지 않은 것까지 온갖 참견을 하고, 다들 일하느라 바쁜데 혼자서 오전 헬스하고 왔다고 자랑한다. 좋좋소의 안 좋은 점을 다 압축한 것 같다.
편집장도 만만치 않았다. 면접 볼 때는 정말 온화한 기운을 풍기며 사람 좋은 인상을 보여줬으나, 그 얼굴 뒤에는 쪼잔함과 지질함이 있었다. 하루종일 뭘 하느라 바쁜지 연락도 잘 안 받아, 단톡방으로 전달해도 될 자질구레한 보도자료를 꼭 갠톡으로 보내놓는다. 아무 말도 없이.
이 회사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건 새로 내놓은 근로계약서다. 입사하면서 작성했는데, 전 직원 대상으로 다시 쓴다고 설명해 줬다. 그래서 계약서를 읽어보니 군데군데 오탈자가 보였다. 또 애매하게 적힌 문장을 질문하면 자기는 잘 모른다며 회사 전담 노무사랑 이야기하란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이런 애티튜드를 가진 사람이 대표 겸 편집장이라니. 내가 취업사기를 당했다.
그래서 3달 조금 넘긴 시점에 새로운 직장으로 옮겼다. 과거 기자-관계자로 만난 인연이 있었던 대표가 이끌고 있는 홍보대행사에 가게 됐다.
단순히 인연 때문에 이직한 건 아니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현타와 회의감을 느꼈던 것이 가장 컸다. 그동안 기자로 일하면서 내가 직접 쓴 기사량은 10,000건이 족히 넘었다. 취재, 기획, 리뷰, 보도자료를 기계처럼 써 내려갔지만 돌아오는 보수, 대가 등이 열과 성을 들인 노력에 훨씬 못 미쳤다. 또 '이래도 괜찮나?' 의구심이 느껴지는 자극적인 워딩들이 거리낌 없이 등장했고, 공들인 기획보다 연예인 sns를 긁어 쓴 인스턴트 기사가 훨씬 더 주목받는 세태가 잘못됐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내가 직접 무에서 유를 창조해 메이킹하는 홍보로 옮겨 새로운 원동력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왔고, 나에게 온 기회를 망설이지 않고 덥석 잡았다.
내가 이직한 홍보대행사는 10명 남짓되는 작은 규모지만, 큰 도약을 위해 본격 확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보도자료 이외 영상 콘텐츠, 인플루언서를 만들어내려는 '인플루언서 메이커', 그리고 레스토랑 브랜드 마케팅까지 다각도로 기획하고 있었던 것.
그런데 출근 첫날부터 이 회사의 안 좋은 모습을 보고 말았다. 홍보 대행을 맡고 있는 연예기획사 소속 연예인들의 새해 인사 영상을 따야만 했고, 내 업무가 아니지만 기꺼이 지원사격을 자청하며 영상팀 실장과 소속사 대표+연예인들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갔다. 당시 행사에 참석 중인 연예인을 에스코트를 맡고 있던 직원이 우리의 연락에 "지금 안된다", "나중에요"라고 미루면서 무한대기를 하게 만든 것. 해당 연예인 촬영이 "No Problem"이라는 소속사 대표피셜을 전달받았음에도 혼자서 오버 에스코트하며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저 사람은 대체 어디 소속인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작 5분도 안 걸리는데 막을 이유가 무엇인지.
첫날 이슈는 당연히 대표에게 들어갔다. 대표는 분노하면서 "그 사람은 원래 그렇다"라고 평하고 넘어갔다. 이걸 그냥 넘어갈 일이라고? 원래 그런 스타일이라고 놔둘 일인가? 참고로 오버 에스코트하는 그 사람은 두어 달 뒤 퇴사하기 전까지 계속 근무태만에 비협조적이었다. 프로답지 않은 태도도 문제지만 그걸 그대로 방치하는 대표의 행동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대표의 행동에 이해 안 되는 지점은 계속 드러났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직원들에게 어느 누구는 회복할 때까지 쉬라고 하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 말도 없었다. 회사 재량이라고 하더라도 종잡을 수 없는 기준에 직원들은 혼란스러워했다. 회사 근처서 자취하던 한 직원은 대표 허락 없이 늦은 밤 회사 라운지에서 숙식했다. 항상 가장 먼저 출근하는 나는 회사 라운지에서 커피를 내리려다가 이 광경을 직관하기도 했다. 문제가 커지자 결국 해고 가깝게 퇴사했으나, 시간이 한참 지나 우리 회사를 돕는 프리랜서로 컴백했다. 이건 무슨..
그 외에도 별별 사건들이 터졌다. 회사에서 심혈을 기울였던 인플루언서의 행사폭망 및 직원에 대한 무례한 태도, 일부 직원들과 대표 간 불화, 현장 팔로우했다가 발생한 사고 등등. 이렇게 소규모 회사에서 다이내믹한 일들이 계속 발생할 수 있을까.
여기에 결정적인 게 터졌다. 가장 민감한 문제인 금전 문제가 터진 것. 사업장에서 내야 할 국민연금 보험이 체납됐다는 통지서가 한 번도 아니고 4번씩이나 날아왔다. 심지어 작년 10월부터 계속 미납되고 있다고 국민연금공단에서 알려줬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똑같았다. 이에 대표는 "죄송하다. 빨리 해결하겠다"라는 말만 되풀이했지, 1도 수습하지 못했다. 심지어 퇴사한 직원들 퇴직금도 수개월째 못 받고 밀린 상태였다. 회사가 망하는 징조인가 보다. 이러다 내 퇴직금도 못 받을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회사폐업을 걱정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결단을 내렸다. 이 회사에서 떠나기로 결정했다. 안정화되기는커녕 계속 잡음이 일어나는 회사 내외 이슈, 기약이 없는 미납된 연금 완납, 정신 차리지 못하는 대표를 기다릴 순 없어서 사표를 던지고 탈출했다. 이렇게 다시 한번 회사 밖으로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다이나믹 듀오의 '다시 쓰는 이력서'만큼 맛깔나진 않지만, 현재 나는 N번째 이직을 위해 다시 이력서를 쓰고 있다.
이전에 이직 준비할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면접관 혹은 회사 측 기준에서 내 이력이 약간 애매해졌다는 것? 기자로서, PR매니저로서 한쪽씩 발만 담근 수준처럼 보인달까. 하지만 난 굴하지 않는다. 나는 이번에도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