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가족을 지켜보다가 나도 모르게 과몰입했다..
2022년 어느 여름날 퇴근길이었다. 딱딱한 직사각형 모양을 띠고 있는 현대식 건물들이 양 옆으로 줄 서 있는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갑자기 시커먼 물체가 순식간에 내 눈앞을 지나갔다. 정체가 무엇일까 호기심이 샘솟기 시작했다.
검은 물체는 나를 사로잡은 뒤, 낮게 비행하다가 90도 직각으로 꺾어 건물 1층에 위치한 주차장 쪽으로 날아들어갔다. 검은 물체를 따라가다가 문득 극장에서 봤던 영화 ‘탑건: 매버릭’이 떠올랐다. 영화 속에서 매버릭이 F-14로 수직 비행하며 놀라움을 안겨줬듯, 그것 또한 수직 비행했다. 시선을 사로잡는 비행을 보여줬던 그 물체는 바로 윗부분 처마 부근에서 멈췄다.
그가 멈춘 곳을 자세히 살펴봤다. 페인트칠을 한 지 조금 지난 하얀 기둥과 처마 틈새에 진흙으로 만들어진 아담한 둥지가 보였다. 시커먼 녀석의 정체는 제비였다. 둥지에서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의 먹이를 공수해 귀가하는 길이었던 모양이었다. 퇴근하다가 진귀한 광경을 마주한 것이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여름 철새 제비 가족을 만날 줄이야!
퇴근길에 제비를 만난 것이 반갑게 느껴졌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종이 살아가기 매우 어려운 회색 빌딩 숲에서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소중한 존재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서울이 삭막한 공간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만들었다.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환경 속에서 다른 생물들 또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예로부터 제비가 지은 집에는 복이 들어온다고 해서 길조로 불렸다고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가난한 연흥부도 제비 가족과 한지붕살이를 한 덕분에 금은보화가 한가득 품은 박씨를 얻어 부자가 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많고 많은 후보군 중에서 새들이 살기 힘든 척박한 콘크리트 숲에서 조그마한 가족들이 터를 잡다니.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 짠함과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이보게 제비 양반, 더 좋은 곳으로 얼른 이사 가시게. 거긴 가족들과 함께 살기에 좋지 않다네"
새끼 제비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부모들의 날개는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서울에서 자식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먹이가 있었을까. 일찍 집에 나간 엄마 아빠가 빨리 돌아오기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 아이들은 또 어떤 심정으로 둥지에 남아있었을까. 다른 종임에도 저 조그마한 가족들의 상황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된다.
내가 집안의 가장이 된다면, 저 부모 제비들처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토끼처럼 귀엽고 예쁜 자식들을 먹여 살리고자 몸 바쳐 일하겠지. 현재의 나를 키우기까지 불철주야 쉬지 않고 생계를 책임지느라 매일 밤늦게 집으로 퇴근하던 나의 아버지의 피곤한 얼굴이 자연스레 오버랩이 됐다.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아버지는 종종 술냄새를 풍기는 시뻘건 얼굴로 귀가하시곤 했다. 그때는 지독한 알코올 냄새 때문에 선뜻 다가가기 싫었는데, 직장인이 되고 비슷한 나이대가 되어보니 그 술냄새가 직장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려는 흔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봤다. 30년 넘게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한 몸 다 바쳤던 아버지는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세고 등이 굽은 노인이 되어버렸다. 제비 아비, 어미야 참으로 고생이 많구나.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저 제비 가족은 진흙으로 만든 둥지를 떠나 따뜻한 남쪽 나라로 다시 떠나겠지. 그때까지는 아무 사고 없이 잘 지내다가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쪽으로 떠난 뒤에도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슴 한 켠에 품고 그 자리를 떠났다.
※ 해당 에세이는 '월간에세이' 2022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