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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거대해 보이는 그의 공백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리뷰

by J Hyun

어벤져스를 진두지휘했던 초대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가 타노스를 물리치고 은퇴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한 팔에 장착하고 다녔던 장비이자 캡틴 아메리카의 상징인 비브라늄 방패의 무게가 이렇게나 무거웠을 줄이야. 방패를 이어받아 새롭게 캡틴 아메리카가 된 '구 팔콘' 샘 윌슨(앤서니 매키)의 고군분투는 인정하지만, 그의 역량만으로 채우기엔 어딘가 부족했다.


이번에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이하 '캡틴 아메리카 4')는 캡틴 아메리카의 네 번째 실사영화로, 2021년 디즈니+를 통해 공개된 MCU 드라마 '팔콘과 윈터 솔져'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드라마에선 스티브 로저스의 뒤를 이어 존 워커(와이엇 러셀)가 2대 캡틴 아메리카로 등극했으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불명예 전역을 하게 됐고, '팔콘'으로 활동했던 샘 윌슨이 비브라늄 방패를 건네받으며 3대 캡틴 아메리카로 활동하게 된다는 걸 암시했다. 영화는 샘 윌슨의 캡틴 아메리카 활동기를 본격적으로 그린다.


동시에 이전에 선보였던 MCU 작품들과도 연결됐다. '팔콘과 윈터 솔져' 이외에도 지난 2008년 개봉했던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모습을 비췄던 새디우스 로스(해리슨 포드), 베티 로스(리브 타일러), 새뮤얼 스턴스(팀 브레이크 넬슨)가 재등장하고, '이터널스', '블랙 위도우'와도 연관성을 보여준다. 이전 작품들과의 긴밀한 연관성 때문에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 신규 유입이 어려운 것으로 악명(?) 높은 MCU인데, 줄리어스 오나 감독은 MCU 세계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어도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최대한 진입 장벽을 낮췄다.


이를 바탕으로 '캡틴 아메리카 4'는 투 트랙으로 서사를 전개한다. 혈청을 맞지 않아 '슈퍼솔저'가 아닌 캡틴 아메리카가 정부와 손을 잡고 일하기 시작하는 스토리를 메인으로 풀면서 '헐크 사냥꾼' 새디우스 로스가 대통령이 되어 해체된 어벤져스 재건 및 지구상 가장 강력하고 단단한 물질인 아다만티움을 세계와 공유하는 조약을 체결하려는 이야기를 서브로 두었다.


두 서사를 하나로 엮기 위한 과정에서 과거 정부에게 고문당했던 슈퍼 솔저이자 현재는 샘의 친구인 이사야(칼 럼블리)가 이야기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그를 포함해 백악관 행사에 참석한 다수의 인물들이 대통령인 로스를 일제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시야는 암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돼 함정에 빠진다. 이에 샘은 숨겨진 음모와 진짜 범인을 찾기 위해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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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접근하기 쉽게 진입장벽을 낮추면서 캡틴 아메리카 고유의 정체성 유지, '캡틴 아메리카 4'만의 차별점을 부각하려고 한 점은 알겠으나 MCU의 전성기 시절에 걸맞은 재미와 퀄리티인지는 의문이 든다.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의 매력이 와닿지 않아서다.


'캡틴 아메리카 4'의 경우, 히어로 영화에 첩보물 요소를 적절하게 섞어내며 재미와 완성도 모두 사로잡았던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와 비슷한 색채를 띠고 있다. 조직 내 음모와 배신 속에서 진실을 파헤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세뇌당해 악당으로 변한 친구, 다양한 인물들이 벌이는 갈등과 협력, 정치적 암투와 권력 다툼까지 매우 빼닮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캡틴 아메리카 4'는 '윈터 솔져'의 모양새와 구도만 닮았을 뿐, 전작이 가진 매력을 구현하거나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건 실패했다. 전형적인 '영웅 VS 빌런' 구조를 답습하고 '캡틴 아메리카 4' 만의 개성과 변주를 찾아보기 어렵다.


'보통 인간' 캡틴 아메리카 샘을 그려내는 방식은 '인피니티 사가'의 핵심 축을 담당했던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도 자연스레 비교된다. '아이언맨' 시리즈, 그리고 '어벤져스' 시리즈 등에서 그는 영웅으로서 갖는 부담감과 책임감, 고뇌 등 캐릭터의 내면을 디테일하게 드러내 관객들을 몰입시킨 데 반해, 샘 윌슨은 이 점이 부족했다. 아직까지 스티브 로저스의 그림자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진다.


MCU 팬들이 기대하는 액션 또한 한 끗 부족하다. 스티브 로저스의 캡틴 아메리카보다는 아크로바틱하고 화려한 액션 연출이나 새로운 팔콘(대니 라미레즈)과 함께 선보이는 해상 공중전 등 하며 전임자와의 차이점을 보여주려고 부단히 노력했으나, 대인 액션 등에서 한 템포 늦어지다 보니 박력이 약한 인상도 받는다. '윈터 솔져'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봐왔던 MCU 팬들을 만족시키기 역부족이다. 내부 시사에서 만족하지 못해 재촬영한 흔적들도 고스란히 보인다.


결국 '캡틴 아메리카 4'는 이전의 실수들을 만회하려는 노력은 인정하나, MCU가 다시 반등했다고 평하기엔 아직 부족하다. 4월에 개봉하는 '썬더볼츠*'가 좋은 퀄리티를 보여준다면 다행이겠으나, 내년 여름에 다가올 '어벤져스: 둠스데이'까지 가는 빅픽처를 어떻게 완성해 나갈지 여전히 걱정이 앞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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