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키 17' 리뷰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공개된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에 대한 감상평을 묻는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봉준호들이 모여서 만든 '봉준호 영화'"
'미키 17'은 그동안 봉준호 감독이 연출했던 작품들의 특징들이 이번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단순히 자가복제한 건 아니며, 이전 작품들에서 볼 수 없었던 '미키 17'만의 차별점이 두드러진다. 그동안 본 적 없었던 '봉준호식 멜로'에 빠져들면서 '봉준호는 역시 봉준호!'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든다.
'미키 17'은 에드워드 애쉬턴 작가가 2022년 발간한 장편소설 '미키 7'을 각색했는데, 소설이 정식 출간되기 전인 2021년 9월 봉준호 감독이 시나리오 탈고를 했다고 알려져 이목을 끈 바 있다. 영화는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익스펜더블(소모품)'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미키 17'에서 봉준호 감독은 우주 식민지를 안전하게 개척하기 위해 소모품처럼 활용하는 미키의 잔인한 설정들을 특유의 유머로 풀어내며 풍자와 냉소로 가득한 블랙 코미디로 승화시킨다. 그의 죽음을 외주화하여 니플하임으로 가는 우주선 내 계급 문제를 드러내는가 하면, 정치의 종교화 혹은 종교화된 정치로 빚어낸 독재를 통해 민주주의가 최악의 형태를 갖춘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담아낸다. 여기에 혐오와 배척으로 뒤범벅된 대사들, 파도파도 추악함만 나오는 자본주의의 민낯 등 인간성을 상실한 인물들에 투영한다. 현실 세계의 못된 점들을 두루두루 관찰해 우스꽝스럽게 캐치한다.
그렇다 보니 현재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낯익은 느낌도 가져다준다. 원작에서 역사학자였던 미키가 영화에선 친구 따라 강남 갔다가 실패해 사채업자에 쫓기는 어리숙한 설정으로 바뀐 건 2019년 '기생충'(대만 카스테라 사업을 했다가 폭삭 망한 우택의 가족)을 떠올리게 만들고, 니플하임의 원주민 크래피들은 2017년 작 '옥자'와 오버랩된다. 그 외에도 '플란더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에서도 접했던 요소, 키 메시지들을 만날 수 있다. 안전한 우주 개척을 위해 활용된 17명의 미키 반스처럼, 여러 명의 봉준호들이 모여 '미키 17'을 빚어냈다고 할까.
그러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강력한 정치 풍자를 선사한다. 대표적으로 케네스 마셜-일파 마셜(토니 콜렛) 부부의 언행들이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2021년에 시나리오를 완성해 2022년에 촬영 종료를 한 작품인데, 오늘날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의 어떤 정치인을 연상케 만든다. 반복되는 역사를 통해 미래에 어떤 세계가 다가올지 읽어내어 나쁜 정치(인)의 모든 것을 표현한 봉준호 감독의 신묘한 통찰력에 감탄사가 나온다.
이와 더불어 봉준호 감독 커리어상 최초 로맨스(!)도 만날 수 있다. 주인공 미키와 미키 1 시절부터 열렬히 사랑해온 개척단 최고의 요원 나샤 배릿지(나오미 애키)의 멜로이며, '미키 17'의 스토리상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죽었다가 다시 프린팅하는 과정에 매번 고통을 느끼는 미키를 항상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유일하게 그와 고통을 나누려고 한다. 이들의 사랑과 따스함은 결국 연대, 세계를 변화시킨다. 파국으로 치달을 뻔했던 결정적인 한 방도 두 남녀의 섹스체위 덕분이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키는 인간과 니플하임 원주민인 크리퍼 간 가교 역할을 하게 되는 동시에 인간이 과연 크리퍼보다 나은 집단인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에 힘입어 '미키 17'은 그동안 봉준호 영화에서 만나기 힘든 꽉 닫은 해피엔딩을 선보인다. 지독한 현실주의에 시니컬한 화법으로 빌드업해 완성된 씁쓸한 엔딩에 익숙했던 터라 이 지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작품을 통해 봉준호 감독이 희망, 혹은 희망에서 조금 더 나아간 낙관을 꺼내 보이며 이전과 달라진 듯한 인상까지 심어준다. 봉준호 감독의 심경변화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미키 17'의 총제작비가 1억 5000만 달러를 넘어서는 걸 고려할 때 해피엔딩으로 타협했을 수도 있다.
'미키 17'의 주연을 맡은 로버트 패틴슨은 이번 작품에서 또 한 번 연기 레벨을 업그레이드 한다. 봉준호 감독을 만나더니 그의 얼굴에서 송강호가 보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미키 17'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평을 빌려 로버트 패틴슨에게 주연상과 조연상 두 개를 동시에 줘야 할 정도로 순한 맛 미키 17과 마라 맛 미키 18 1인 2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이어 나샤를 연기한 나오미 애키는 매력적인 여성캐릭터를 제시하며 매력을 뽐내고, 본인피셜 이번 작품에서 첫 악역을 맡은 마크 러팔로는 구역질 나는 캐릭터에 빙의하며 미친 존재감을 과시한다. 만만치 않은 광기를 뿜어내는 토니 콜렛이나 '명존쎄'하고 싶은 티모 역의 스티븐 연의 분노 유발 연기도 볼거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