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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랑 Jan 30. 2023

눈치 없는 이어폰

가끔은 바깥소리가 더 큰 것을 가져다줄 거야


 눈 떠 있을 때 미련 없이 보낸 사람이 눈 감을 때 찾아온다. 그와 내가 있었던 익숙한 공간에서 속닥속닥 이야기를 하고, 어디인지 모를 장소에 떨궈져 무언가를 찾기도 하며 그렇게 잠깐의 밤 속에서 다시 만난다. 그리고 긴 아침이 시작되면 흐린 자국만 남기고 사라진다. 해가 높이 올라갈수록 흐렸던 자국은 선명해져 내가 그를 미련 없이 떠난 이유와 그가 나의 밤 속에 나타난 이유를 찾는다. 나는 그에게 미련이 없어 더 골똘히 생각한다. 아, 사실은 나 깨끗하지 못하게 어떤 마음이 남아 있는 걸까. 절대 후회나 미련은 아닌데 그럼 그 어떤 것은 무슨 마음이지. 어느 것도 찾지 못한 채 드문드문 나의 밤 속에 찾아오는 그를 그냥 둘 수밖에 없다.


 그런 밤을 보내고 나면 시간이 지나도 머리가 무겁고 뻐근한 턱관절이 잘 돌아오지 않는다. 어떤 마음을 정확히 찾지 못한 나에게 주는 벌 같은 것일까. 누가 나에게 주는 벌이지. 몸으로 쌓여가는 고통이 지나간 사람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미련이 없다. 미련이 없다고 확신했는데 사실은 마침표를 찍지 않았던 사람. 마무리가 엉성한 나답게 헐겁게 끝을 낸 것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무의식은 그 반대였나 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아빠가 딸에게 주는 메시지처럼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미래의 내가 혹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주는 걸까.


 내 몸에 미련이 더 쌓이지 않게 뻣뻣해도 마무리를 잘하자고 다짐한 해이다. 낯선 곳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낯선 이를 만나고 나니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더 오래, 온 마음으로 마무리를 하게 된다. 오늘도 내가 거주하는 곳과 가까운 곳에서 지구를 구할 궁리를 하는 멋있는 여성들을 만나고 왔다. 느슨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각자, 혹은 같이 하는 시간에 집중하니 정확하지 않은 마음에서 오는 고통이 없어진다. 내가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들로 둘러싸여 있는 시간을 갖길 잘했다는 생각. 정해진 시간이 되고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한다. 문밖을 나서면서 이 좋은 기분을 좋아하는 노래에 얹고 싶어 이어폰을 꺼내든다. 통통 걷다가 떨어진 낙엽을 보며 추워야 할 계절에 외투가 갑갑하게 느껴지는 날씨가 올라간 마음을 뚝 떨어트린다.


 집에 돌아와 내가 다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핸드폰을 켜니 메시지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 모임을 기획한 사람 중 한 명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친구라는 것,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발견하고 크게 안녕을 외쳤지만 멀어서 못 들은 듯하다는 글이 담긴 반가움이었다. 나의 기분에 취해 얼른 노래를 듣고 싶은 마음이 커 꺼내 든 이어폰이 미워지는 순간이다. 아쉬운 마음만큼 이 반가움을 더 크게 전하며 나를 향해 외치는 안녕을 받는 만약을 상상해 본다.


 잠시 몸 상태가 괜찮아지는 듯하다. 돌아갈 일 없게 사람을 만나는 것에 몸을 아끼지 말자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또 오늘처럼 아쉬운 상상을 더 하지 않기 위해 좋은 기분을 나의 방식이 아닌 여운을 두어 낯선 방법으로 마무리하자고 강조한다.

 알아가는 사람만큼 눈을 감을 때 찾아오는 그의 시간도 줄어든다. 언젠가 그에게도 적당한 마무리를 해야 짧은 밤이 더 짧아질 수 있을까. 아직 그런 씩씩함은 부족하니 조금만 더 미룬다. 헤어진 그에게 끌려가는 마음을. 언젠가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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