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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랑 Feb 11. 2023

지금 당신이 절박하게 갖춰야 하는 것

절박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어야 한다

 나에게 춤이란 몸의 근육을 단련하여 기술을 연마한 것이 아니라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것이다. 팔과 다리로 표출되는 나의 흥을 우스꽝스럽다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팔과 다리를 장단에 맞춰주는 사람도 있다. 동생과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우스꽝스러운 합을 맞춰왔는데 지나고 있는 겨울에는 캐럴에 몸을 맡긴다.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 간 동생과 떨어져 지낸 지 몇 달, 어렸을 때부터 약했던 몸은 성인이 돼서도 동생을 귀찮게 만들었는데 이번에도 몸에 큰 탈이 나 병원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큰 수술을 마치고 회복하는 동안 우리는 오랜만에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다행히도 눕고 일어날 때 도움받는 것 말고는 크게 불편할 것 없는 동생은 움직임이 작아졌지만 금세 팔과 다리를 흔들어 주었다.


 공기는 차갑지만 햇빛이 창문으로 한껏 들어오는 시간이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기분이 좋아져 춤을 춘다. 그동안 맞춰온 시간이 만들어낸 눈치로 동생이 시작한 춤에 나는 그에 어울리는 몸짓을 선보인다. 겨울 분위기에 들떠 한참을 장난스럽게 혹은 진지하게 춤을 주는 인간들과 가만히 앉아 그들을 지켜보는 강아지 한 마리이다.    


 서로의 장단에 맞추고 맞춰주는 시간을 보낸 지 며칠째, 나를 귀찮아하는 강아지에게 애정을 갈구하며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그 모습을 본 누군가는 “좋은 일 생겼냐? 기분 좋아 보이네?”라고 묻는다. 평소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만큼 사이가 돈독하지 않고 어쩌다 말이 몇 번 오고 가면 그때부터 생기는 무례한 질문이 싫어 그전에 차단하는데. 이날도 어김없이 “남자친구 생겼냐?”라는 무례함에 나는 차갑게 식는다. 아직도 성정체성이 고려되지 않는 가벼움과 고작 애인의 존재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얄팍한 물음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오류가 담긴 잘못된 질문이다. 오래된 질문만큼이나 낡은 상대방의 섬세함에 질려 안기기 싫어 팔딱거리는 강아지를 어색하게 안아 올린다.


 저런 식의 질문을 어려서부터 들어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질문 하나에 온갖 상황을 고려하여 어렵게 꺼낸 나와 다르게 변하지 않는 상대방의 하찮은 질문을 듣고 있노라면 눈이 가늘어진다. 왜 항상 분위기 파악하는 쪽은 한편으로 치우쳐 있을까. 그럴 필요 없는 편리한 상황 속에서 곱게 자란 그들은 분위기 흐리는 것을 상대 탓으로 쉽게 미루고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변함없을 모습에 화가 나기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게으름에 부럽기도 하며 성격이 다른 감정이 한 곳에 모여 엉망이 된다.


 이른 저녁 시간, 술을 먹었는지 모를 남자들이 한참 소리를 지르고 있다. 요즘같이 추운 날씨에는 잠깐이지만 바깥 활동이 많아지는 계절에는 새벽까지도 이어진다. 이런 나는 참을 수 없어(참을 필요도 없다) 경찰을 불러 나의 조용한 저녁을 되찾아 온다.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나는 그가 건넨 잘못된 질문과 똑같은 것을 느낀다. 그러면서 어느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기분을 우선하는 사람처럼 생각 없이 살고 싶다. 그들의 행동에 눈치 봐야 하는 쪽이 내가 되고 싶지 않다. 곰곰이 하는 생각을 따라 끄트머리에 가면 있는 이따위 부러움이 화가 난다.


 요즘 내가 기분 좋은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있지 않다. 그저 나와 같이 춤을 추는 동생과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강아지가 곁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질문이 잘못된 이유를 언제까지나 하나하나 설명해 줄 수 없다. 좁은 시야에서 나오는 상상력으로 쉽게 질문하지 말고 눈앞에 맥락을 잘 파악해서 고민이 잔뜩 들어간 질문을 해주길 바란다. 지금 당신은 주위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눈치가 시급하다. 물론 당신의 기분을 모두가 알 필요 없으므로 어디선가 시끄럽게 구는 당신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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