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위한 동물은 없다
흰둥이는 2년 전 동생과 가족이 된 강아지다. 유기견 센터에서 태어나 1년을 살고 동생을 만났다. 외로움이 많던 동생은 동물과의 삶을 늘 생각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무엇에 겁에 질렸는지 귀가 뒤로 접힌 하얀 강아지 사진을 동생에게 보여줬는데 몇 달 뒤 동생의 집에 눈이 동그란 강아지가 들어왔다.
흰둥이는 아가 때부터 겁이 많았다. 작은 소리에도 크게 반응하는 강아지라 동생의 집에 와서도 한참을 식탁 밑에 누워있었다. 동생은 서두르지 않고 흰둥이의 속도에 맞춰해야 할 일을 하나씩 헤쳐나갔다. 그러다 조금 지치면 동생과 같이 흰둥이를 돌보며 2년을 보냈다.
일정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동생 앞에서 동그랗게 도는 모습을 아주 천천히 보여주던 때가 있었다. 어색하지만 그만의 반가운 표시인데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삐그덕 거린다‘는 표현이 저절로 나온다. 모든 것이 조심스러운 흰둥이는 현재 동생의 껌딱지가 되어 외출을 끝내고 돌아오면 엉덩이가 떨어지게 꼬리를 흔들며 동생 앞에서 정신없이 움직이고 졸졸 쫓아다닌다.
그뿐만이랴. 쓰다듬이 필요하면 찾아와 앞발로 우리를 툭툭 건드리고, 부엌에서 음식을 만질 때 한달음에 달려와 앞발로 또 툭툭 건드린다. 또 문을 열고 싶을 때에는 눈을 한껏 동그랗게 만들어 고개를 45도쯤 사선으로 들어 쳐다본다. 어떤 것에 방해받고 싶지 않은 듯 식탁 밑에서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있던 아가는 어느새 의사표현을 확실하게 하는 강아지로 자랐다.
가끔씩 어이없이 웃긴 행동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귀여운 강아지다. 이런 흰둥이는 입양을 절대 반대하던 부모님도 흰둥이를 졸졸 따라다니게 만들었는데 누구든 흰둥이를 보고 있으면 뻔히 알 수 있는 결과이다. 우리는 지나간 크고 작은 일들로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특히 나는 흰둥이가 자는 모습에서 완전히 스며듬을 느낀다. 언제라도 도망갈 듯이 뒷다리를 세우고 자던 예전과 다르게 지금은 배를 뒤집고 뒷다리를 들고 잔다. 하루가 고된 날은 코도 골고 기절하듯 잠드는데 이때는 발을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아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다.
흰둥이가 네 발에 힘을 빼고 옆으로 누워 잘 때 나는 얼굴을 마주 보고 누워 배와 등을 쓰다듬어준다. 점점 얼굴의 근육도 느슨해지고 잠에 빠질수록 더 강해지는 콧김을 받고 있으면 그때만큼 평온한 순간이 없다. 따뜻한 살갗이 닿아 서로가 가지고 있던 긴장은 사라지고 깊이 밤에 빠져든다.
흰둥이는 아직도 겁이 많고 적응에 시간이 필요한 강아지다. 우리 가족에게 보여주는 모습을 다른 이가 볼 수 없어 오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누구보다 주변을 살피고 행동을 조심히 하는 똑똑한 강아지다. 가끔 산책할 때 진돗개라는 이유로 손가락질하고 모자란 소리를 크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이 지나가길 기다려주는 강아지는 황당한 말을 쏟아내는 당신을 물거나 해하지 않지만 그 강아지를 보호하는 나는 당신을 물 수 있으니 조심하시길.
가만히 털친구의 눈을 마주하고, 발소리를 듣고, 털 바깥으로 일정하게 울리는 심장 박동을 느끼고, 폴폴 올라오는 구수한 냄새를 맡고 있으면 좋은 마음만이 둥둥 떠다닌다. 더없이 좋은 마음을 갖고 매일 나오는 동물 학대, 유기 기사를 마주하면 뭔지 모를 죄책감이 든다. 동시에 약자에게 강한 모난 인간들이 사라지고 인간을 위한 동물이 없기를 바란다. 죄책감과 바람이 섞인 오묘한 마음으로 나는 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털친구는 사랑입니다. 동물을 구매하고 버리는 행위를 멈추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