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랑 Feb 18. 2023

붉고 검은 우스운 자국

나의 걸음이 몸에 남아

 휴가가 있는 계절을 싫어할 사람이 있겠냐만은. 나는 여름을 안 좋아한다. 뜨거운 계절에 가는 휴가가 싫어 몇 달을 기다렸다 다음 계절이 오면 휴가를 다녀왔다. 작년에는 봄과 여름이 헷갈리는 계절에 이른 휴가를 떠났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강한 햇볕에 아무런 방어를 하지 않아 뜨거움이 닿는 그대로 몸이 타버렸다. 종아리는 검고 허벅지는 하얗게 무릎 위로 선을 그어 놓은 것처럼 우스운 모습으로.


 지구온난화로 더욱 뜨거워진 여름, 다리에 새겨진 두 가지 색깔이 부끄러워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더욱 고민이 된다.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룸메이트는 오며 가며 나의 다리를 보고 깔깔 웃기도 하고 걱정도 하며 동시에 여러 감정을 느끼느라 얼굴이 바쁘다. 하지만 더운 날씨 앞에서 누군가의 웃음도 부끄러움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오래 기억될 이야기와 함께 초록색이 짙은 계절을 보내고 돌아왔다. 발등과 다리에 새겨진 햇볕의 모양은 여행동안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다닌 것을 설명해 준다. 해가 바뀐 지금도 지난 여행이 옅게 몸에 남아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던 붉고 검은 우스운 자국이 어느새 옅어지고 있다.


 해가 길어질 계절을 앞두고 지난 시간을 꺼내보며 길었던 휴가를 마칠 준비를 한다. 진달래 꽃을 따 먹었던 초등학생 잠깐 이후 처음으로 반복적인 것에서 벗어나 충분히 걷고 보고 들으며 건물이 아닌 길에서 천천히 해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토록 바랬던 하루의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 몸의 방향을 바꿔 간절히 원했던 것과 마주하는 과감한 결정은 몸에 남은 자국보다 더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물렁한 살 위로 지나간 계절, 시간, 이야기가 남아있다. 남겨진 것은 살을 우습게 태울 정도의 강한 열기를 잊고 좋은 것만 기억한다. 그래서 가끔 여름이 그립다. 뚝뚝 떨어지는 땀에 지치긴 했어도 흘린 땀 덕분에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까. 바들바들 몸이 떨리는 겨울 속에서 몇 달을 보내니 더욱 분명하고 뜨거운 여름이 생각난다.


 응원받지 못했던 나의 안식년은 새로운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고민을 최소화시켜 주었다. 고민만 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언제나 운신(運身)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휴가를 끝내고 있는 나는 볕을 보고 사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 약속을 한다. 넉넉하진 않겠지만 일상에서도 올해를 몸에 담을 수 있게 다시 한번 몸의 방향을 튼다. 화가 많아지지 않게 흙과 가까이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다짐이 오래 지속될 수 있길 바라며. 나는 다시 몸에 새겨질 자국을 위해 길을 헤매고 다닐 준비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배구가 나를 응원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