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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c Aug 10. 2024

5. 다른 맛

Oc


곰탕 한 그릇 주문하고 기다리며 숟가락과 젓가락을 준비한다. 테이블 한켠으로 따라간 내 시선에 어김없이 보이는 대파 한 무더기와 새하얀 소금이 투박하게 담겨있다. 보통은 시원하면서 조금은 시큼하게 잘 담가진 깍두기 국물을 말아 먹지만 가끔 맑은 국물 그대로 즐기고 싶을 때, 이 하얀 소금이 그 순간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소금이 주는 짠맛은 음식이 갖고 있던 단맛을 더 맛깔나게 만들어 주기도 하며, 어느 음식의 풍미를 올려주기도 한다. 주로 음식을 조리하거나 이미 조리된 음식의 간을 맞추기 위해 사용된다. 간을 맞춘다는 용어 자체가 짠맛의 정도를 조절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누구라 할 것 없이 소금이나 간장, 된장 등 짠맛을 이용해 음식의 맛을 조절한다. 반면에 양 조절을 잘못하면 모든 맛이 흐리멍덩해 맛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짠맛은 신맛이나 단맛, 쓴맛 순으로 느껴졌던 맛의 흐름에서 벗어나 앞에서부터 중후반까지 두루 영향을 준다. 후반부에 느껴지는 감칠맛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둘 다 어쩌면 짭짜름한 맛을 가지고 있으나 감칠맛은 뭔가 복합적인 맛이다. 곰탕이나 평양냉면, 또는 고기나 새우 등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맛이다. 그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자주 사용하던 미원이나 다시마 같은 제품도 이 맛을 위한 제품 중 하나다.


신맛, 단맛, 쓴맛밖에 없는 커피에서 짠맛이나 감칠맛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짠맛도 느낄 수 있으며, 감칠맛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이 맛들이 커피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이라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부정적인 답변만 하게 된다. 커피에서 짠맛은 잡미나 다름없다. 커피 씨앗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은피(Silver Skin)가 물에 고여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기는 맛 중 하나다. 갈아내지 않은 커피 원두를 관찰해 보면 평평한 바닥을 가로지르는 틈이 하나 있다. 센터 컷(Center Cut)이라 이름 지어진 이 틈에 양파 겉면을 감싸고 있는 얇디얇은 껍질 같은 것들이 겹겹이 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커피를 로스팅하는 과정 중에 커피 씨앗의 부피 변화로 대부분 떨어져 나가지만 이 좁은 틈 안에 빽빽이 박혀있던 은피는 떨어져 나가지 못한 채 남겨진다. 추출하기 위해 커피를 갈아내면 은피도 같이 섞여 들어갈 수밖에 없다. 커피만 맛을 가진 게 아닌 이 은피도 맛을 가지고 있어 추출 시 커피와 함께 추출된다. 비교적 빠른 추출보다는 물이 고여있는 상태에서 추출이 길어지는 경우 이 짠맛을 느낄 수 있다. 음식에 간을 하듯 강한 짠맛을 보여주진 않지만, 커피가 가진 본연의 맛을 흐리게 만들 정도는 된다. 여기서 생겨난 짠맛은 커피 본연의 맛은 아니지만, 은피도 커피에 한 부분이라 이를 커피 맛 중 하나로 봐야 할지는 서로 간의 의견에 따라 차이가 있을 듯하다. 근래에는 이 짠맛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이용해 만든 다양한 음료들이 만들어지고 만들어져 있다. 보통 워시드 커피보다는 내추럴 커피에서 이 맛을 느낄 확률이 높다. 물로 씻어내듯 가공하는 워시드 커피는 씨앗 겉면에 붙어있는 은피가 대부분 떨어져 나가 그 양이 적은 반면, 검붉은 열매 그대로 말려 버리는 내추럴 커피는 씨앗에 더 단단하게 붙어있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로스팅 후 은피가 한 무더기로 나오는 내추럴 커피와는 다르게 워시드는 그 양이 현저하게 적다. 그깟 껍질이, 존재 자체도 무의미해 보이던 은피로 맛의 차이가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면 직접 경험해 보길 권한다. 은피로 인한 짠맛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은피가 그대로 남겨져 있는 커피와 은피를 분리한 커피 두 잔을 추출해 비교해 보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신맛, 단맛, 쓴맛’ 말 그대로 딱 떨어지는 맛이 어떤 느낌인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추출을 어느 정도는 잘해야 한다. 은피를 분리하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기존에 사용하던 분쇄보다 한참 굵은 입자로 먼저 분쇄를 한 다음, 바람을 불어 은피를 날리고 원래대로 다시 갈아내면 된다.


과거에는 감칠맛도 잡미로 구분하곤 했으나, 근래에는 커피 맛 중 하나로 보는 경향이 종종 있다. 물론, 짠맛의 원인과 같이 은피와 미분 - 밀가루같이 아주 고운 커피 가루를 미분이라 한다. 이는 커피를 갈아내는 그라인더 날의 크기나 형태 등에 따라 그 양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다. 미분도 맛과 향을 가지고 있기에 추출 시 커피 향미에 많은 영향을 준다. - 에 의한 복합적인 맛들이 주는 잡미일 가능성도 있으나, 의도된 감칠맛도 있다. 커피를 로스팅하는 과정에서 이 맛이 생겨나기도 하나 그 정도는 미미하다. 대부분 커피 씨앗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이 맛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 

검붉은 열매 안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커피 씨앗을 우리가 사용하기 좋은 생두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됐었다. 물을 사용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물을 사용하는 열매의 껍질과 과육을 제거하는 과정부터 시작된다. 긴 수로를 따라 들어간 끄트머리엔 커다란 수조가 자리 잡고 있다. 수로를 따라 들어온 씨앗들이 여기에 잠시나마 머물며 발효를 거쳐 기계나 햇살에 건조를 시킨다. 워시드 가공이라 불리는 이 가공 방식은 화사하면서 밝은 신맛이 좋다. 반면에 내추럴 가공은 잘 익은 열매 그대로 뜨거운 뙤약볕에 말려버린다. 해를 잘 본 과일이 더 단맛이 돌 듯 바짝 말라버린 씨앗도 이와 다르지 않다. 워시드 가공보다 상대적으로 더 깊은 단맛과 바디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신맛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가지고 있는 신맛과 향이 워시드와 다를 뿐이다. 같은 씨앗이라도 워시드 가공을 거치면 레몬의 상큼한 느낌이 내추럴로 가공하면 오렌지와 같은 느낌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처럼 씨앗을 가공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향미로 인해 새로운 맛, 새로운 향, 남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새로운 가공 방식들이 생겨나고 또 생겨난다. 예를 들면 씨앗을 발효하는 과정에서 오는 독특한 향미를 더 부각시켜 의도치 못한 향미를 기대하는 가공 방식인 무산소 발효도 이 중 하나다. 물이 가득 담긴 비닐봉지 중간을 잡아매어 산소를 차단한 상태로 발효시키는 것과 같은 원리다. 실제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커피 씨앗을 가공해 나오는 생두도 많아졌으며, 새콤달콤한 과일을 첨가해 커피 씨앗에 같이 묻어날 수 있도록 가공하는 방법도 사용한다. 이를 두고 커피 본연의 향미인가, 아닌가를 논하기도 하지만 내가 만족하고 맛있으면 그만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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