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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필 Feb 03. 2021

서머셋 몸-달과 6펜스

인상주의 화가 고갱, 현대 미술의 상징이자 예술계의 달이 되다.


마치 달의 정복기를 그려놓은 듯한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고갱의 일생을 그려놓은 작품이다.

예술에 문외한인 나는 그를 '고흐와 동거했던 사람', '작년 여름 다녀온 빛의 벙커에 전시된 그림의 주인공'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깨달았다.

이 세계의 많은 천재들이 그렇듯, 그랬듯 그 역시도 현시대, 동시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했던 괴짜였음을..

나는 이런 특이한 사람의 일생의 마지막은 굳이 소설을 읽지 않아도 상상이 된다.

많은 선례들이 괴짜들 일생의 최후를 내게 각인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괴짜의 최후




지금이야 이슈가 뉴스가 되고 돈이 되는 세상이지만 과거만 해도 무언가에 너무 깊이 빠지면 스스로 안 좋은 길로 빠져들거나 사회가 개인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심연에 빠지면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듯, 작품이나 연구에 몰두한 이들은 사실 누가 어떻게 살아가고 내가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래된 문학작품에서 예를 찾자면 낭만주의 소설의 주인공은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하거나 무언가를 지나치게 갈망하는 경우가 많다.


노트르담 파리의 꼽추 꽈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열렬하게 사랑했고 그들의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이 났으며,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은 출세를 위해 남편을 버리고 마을을 떠났지만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시대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와 과학 분야로 눈길을 돌려보면 니콜라 테슬라라는 인물을 발견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서 일런 머스트의 테슬라 덕분에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실제로 니콜라 테슬라는 에디슨을 뛰어넘는 천재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는 교류발전기, 변압기, 테슬라코일 등을 발명하였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교류 전류 방식도 테슬라가 발명한 것이다.

테슬라는 연구 방식이 돈벌이가 되길 원치 않기에 교류 방식을 온 인류가 사용할 수 있게 특허권을 포기하자는 주장하였으나, 불행하게도 그의 행보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에디슨의 끊임없는 견제와 GP 모건의 자금 압박을 받에 결국 스스로 회사를 뛰쳐나오게 된다.

이후 그는 금전적으로 어려움에 시달리다 수많은 추종자들만을 뒤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나게 된다.









달과 6펜스의 의미




달과 6펜스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 두 단어에 담긴 의미는 의외로 단순하다.


일단 달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자

일류 최초로 달을 탐사한 사람은 미국인 닐 암스트롱이다.

제트 비행사로서 6.25전쟁에도 참전한 암스트롱은 1969년 달에 착륙했고 온 인류는 환호했다.

그가 발을 내딛기 전, 달은 오래전부터 인류가 궁금해하던 미지의 장소였다.

닿을 수 없었던 이곳에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주술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서양 신화 속에서 보름달은 마귀들이 축제를 벌이는 시기이며 늑대 인간이 눈을 뜨고 미치는 부정적인 상징으로 여겼고 동양에서는 보름달이 뜨는 날을 명절로 삼아 한가위라고 부르며 풍작을 위한 소원을 빌었다.

동서양이 부여한 의미는 상반되지만 공통점은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저곳에 닿을 수 있을지 사람들이 꿈꿔왔던 이상과도 같은 장소였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달은 인간이 간절히 바라는 이상을 상징한다.


반편 6펜스는 현실이다.

당시 영국에서 가장 낮은 화폐의 단위였던 이 동전은 달과 마찬가지로 둥근 형태를 띠지만 실제로 소유할 수 있음에도 그 가치는 아주 하찮다.

6펜스는 비교적 가치가 덜한 세속적인 삶 또는 사소한 감정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달은 예술의 극에 도달하고자 하는 고갱의 삶을, 6펜스는 물질적인 가치만을 쫓는 몇몇 등장인물을 대신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고 이해하면 된다.





예술 이외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


폴 고갱


지금부터는 책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이야기해볼까한다.


증권사를 다니던 평범한 회사원 스트랙랜드는 돌연 회사와 가족을 떠나 파리로 향하게 된다.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이라 의심하지만, 그가 허름한 호텔에서 처박혀 모든 이를 등지고 살게 된 이유는 바로 예술 때문이다.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가난에 허덕여 음식과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허약해져만 갔고 결국 그를 동경하던 스트로브라는 화가의 도움을 받아 기운을 회복해간다.

그러나 스트로브의 집에서 치료를 받는 도중, 그는 스트로브 부인의 마음을 빼앗아가게 되고 부인은 스트로브에게 작별을 고한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으니, 마음을 알 수 없는 스트릭랜드의 괴짜 같은 언행에 그녀는 혼란스러워하며 스스로 모숨을 끊게 된다.


이후 스트릭랜드는 파리를 떠나 남태평양의 타히티로 향하게 된다.

그는 빛나는 섬의 자연환경이 너무 마음에 들어 오랫동안 머물기로 결심하고 아타라는 원주민 여성을 만나 가정을 다시 꾸리고 그녀를 모델로 한 그림과 여러 작품을 남긴 뒤, 한센병에 걸려 타히티에 영원히 잠들게 된다.







 무인도에서 글을 쓴다면





주인공인 '나'는 이 책의 중반부터 스트릭랜드의 흔적을 따라가는 취재의 역할을 하지만, 그가 파리에 머물 때까지만 해도 가끔 대화를 나누는 인물로 등장한다.


나는 가끔 스트릭랜드가 속물이 아닌 진짜 예술인의 흉내를 내는 사람이라고 의심하며 진정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지 모르는 이들에게 감동과 전율을 선사할 생각은 없는지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는 비아냥 거리며 그럴 생각이 없음을 표명했고 나는 다시 되물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무인도에서도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요. 아무도 읽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과연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질문을 들은 스트릭랜드의 눈은 아주 반짝 빛났다.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마치 주변이 파랗게 빛나는 어느 섬에서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살게 된다면, 그곳에서 작품을 그릴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는 듯했다.

내가 질문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트릭랜드는 마르세유를 떠나게 되고 이후 무인도는 아니지만 나무로 둘러싸인 오두막에서 자신의 작품을 그리는데 몰두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작품을 쓴다는 것, 아무도 보지 않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과연 예술일까?

아니 단순한 예술을 뛰어넘는 순수한 의미의 그 자체일까.







아브라함을 만난다면



이집트 북부 알렉산드리아



주인공인 나는 스트릭랜드를 만나러 타히티로 가는 도중 우연히 알렉산드리아 근처 항에서 동창 아브라함을 만나게 된다.

아브라함은 학창 시절 전교 일 등에 상이라는 상은 모두 휩쓸던 아주 우수한 학생으로 아무나 갈 수 없는 병원의 상근의사가 된 친구였다.

그러나 그는 돌연 사직서를 던지며 사라지게 되고 그의 빈자리는 만년 2등을 하던 다른 친구가 메꾸게 된다.


아브라함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십여 년 후 나는 머리가 거의 다 벗겨진 채로 사람들의 진료를 봐주는 그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 소식을 들은 만년 2등 출신의 상근의사 친구는 아브라함이 일개 보건국 직원을 하기엔 능력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냐며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가엾은 친구, 그는 이제 완전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어. 알렉산드리아에서 보건국 관리인가 뭐인가 하는 시원치 않은 자리에 있다네. 머리만 좋으면 되는 게 아니야 인격이 있어야지. 아브라함에게는 그게 없었어.

물론 내가 아브라함의 행동을 안타까워한다면 그건 위선이겠지. 난 그의 덕을 봤으니까.

하지만 개인적인 입장을 떠나서 말한다면, 그처럼 인생을 망쳐버리는 것은 딱한 일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다고 할 수밖에.."


나는 생각했다.

아브라함은 정말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린 것일까?

자기가 좋아하는 곳에서 일을 하며 마음 편히 지내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것일까?

연봉 일만 파운드에 아름다운 아내를 얻고  기사 작위까지 받은 저명한 의사로 살아가는 것은 성공한 일생일까?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고 그는 나의 신중한 태도를 칭찬했다.









스트릭랜드와 고갱


작품 속 고갱은 스트릭랜드라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이 둘은 몇 가지 다른 부분이 있다.

첫 번째, 작품 속 고갱(스트릭랜드)은 증권사를 그만두고 아내와 아이들은 시골에 버려둔 채 파리로 떠나지만,

실제로는 고갱이 아내에게 버림을 받았다.

두 번째, 스트릭랜드는 나병에 걸려 요단강을 건너는 것으로 서술되어 있지만, 고갱은 매독과 심장질환을 앓다 결국 심장병으로 사망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고갱의 삶을 전적으로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솔직히 무언가의 계시라도 받은 듯 돌연 갑자기 가족을 버리고 자신을 치료해 준 친구의 와이프를 빼앗은 비도덕적인 그의 행보에 박수를 쳐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상적인 예술의 극에 도달하고 싶었던 고갱의 간절함은 이해하나 그에게 따듯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듯함은 고사하고 남의 말은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귀를 자른 것은 고흐지만 남의 말을 지지리도 듣지 않는 귀가 막히고 기가 막히는 인물은 고갱임이 분명하다.

아마도 이 책에 3인칭인 나와 아브라함 같은 인물이 없었다면 책을 읽는 내내 고갱을 욕했을 수도 있다.


달을 꿈꾸는 사람이 있었기에 우리는 달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이 책을 좋게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비범함과 독특함은 내가 상상했던 범주를 넘어섰기에

고갱만큼 무언가에 미친 듯 몰두해야만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만 남는다.


내 평생 고갱의 삶을 이해하는 날이 오지 않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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