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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민지 Jun 16. 2023

서점에서 조금 울었어

  서점은 늘 고요하지만 책을 몇 권 사서 집에 오는 길에 마음은 늘 소란스러웠다. 마음속에 간직해 온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있었지만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부채감 때문이었다. 어디서도 말 못 할 이 부채감은 초등학교 5학년 엄마에게 보낸 편지에 '멋진 작가가 돼서 자동차를 사주겠다'는 당돌한 약속에서 시작한다. 어른이 되면 효도를 하겠다는 선한 어린이들은 지금 다 자라서 무엇이 되었을까? 나처럼 월급쟁이가 되었겠지. 겨우 입에 풀칠하며, 학자금 대출을 갚거나 티끌을 모아 티끌을 만들고, 태산 같은 꿈은 잊은 채 일 년을, 한 달을 아등바등 버티며 살겠지.


  가볍게 생각해도 되는 그 약속에 엄청난 부채감을 느낀 것은 내가 직장에 갓 입사했을 때 엄마가 자동차 약속을 했던 것이 기억나냐 물으셨기 때문이다. 구두 약속도 약속인데, 하물며 편지에 구구절절 써놓은 자필의 편지는 공중에 흩어지지도 않고 고스란히 엄마의 작은 함에 남아있었다. 어머니, 저도 아직 자차가 없어요.


  작고 소중한 첫 월급을 받고 느낀 것은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불안감이었다. 작가가 되어야지만 엄마의 차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꿈보다는 부채감이 더 컸던 나날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부채감은 힘이 없다는 것을. 마음의 빚은 삶의 원동력이 아님을.


  부채감만 안고 자책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제자리였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라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엄마 택시 타시라고 용돈도 못 드리지 않나. 그러니 작가가 되고 싶은 나의 꿈은 작가가 되어야 하는 나의 부채감이 도둑질해 갔다. 가끔 꿈은 꿈이어서 죄가 된다.


  우습게도 몇 년이 흘러 엄마는 엄마의 힘으로 엄마의 작고 소중한 경차를(엄마, 미안.), 나는 나의 힘으로 나의 작고 소중한 경차를 각자 소유하게 되었다. 마음의 빚 일부가 중도 상환된 것이다. 부채감이 꿈 보다 작아졌을 때 '작가', '내 이름으로 책 출간' 같은 가공되지 않은 돌덩이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상하지만 그렇게 '꿈'이 원동력이 되었다. 퇴근 후 무거운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글만 썼다. 그렇게 쓴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만들었고, 좋은 기회로 지역 서점 몇 곳에 전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전시 기간은 일주일인데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았다. 하루, 이틀 미루다 드디어 서점에 가게 되었다. 토요일, 아침, 서점에는 아무도 없었다. 늘 그렇듯 고요했고, 민망할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같이 독립서적 작업을 한 친구들의 책들과 함께 내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내가 살아온 자취방을 다 합쳐도 더 큰 서점에, 각양각색 수많은 책들 사이에 내 꿈이 자리를 잡고 있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서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눈물이 왈칵 나는 것을 몇 번을 눌렀다. 해냈다는 뿌듯함과 대견함이 몰려왔다.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고생한 몇 개월 보다 꿈을 잊고 아등바등 버티며 살아왔던 지난날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버텨줘서 고마웠다. 내 책이 서점에 있다는 것은 짜릿하고, 기쁘고, 환상적이었다. 이런 말로 밖에 표현이 안된다. 아무것도 안 먹어도 배부르고, 땀이 비 오듯이 나지만 갈증이 나지 않는 그런 이상한 기분이다. 몸 전체가 알 수 없는 전율로 가득 차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토요일 아침 서점에서 티슈로 눈물 도장을 꾹꾹 하고, 서점 사장님께 감사하다는 인사글을 남기고 돌아왔다. 이 인연으로 서점 사장님이 정식 출간을 해보라 권유해 주셔서 정식 출간의 여정 또한 걷게 되었다.


  정식 출간을 하고, 운이 좋게도 영풍문고 여러 지점에 전시할 기회가 생겼다. 시골 사는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영풍문고 종로지점까지 발걸음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미 경험했지만, 큰 서점에 전시된 내 책을 본 우리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날 엄마의 눈동자에 비친 서울과 서울의 큰 서점과 서점 한편의 비치된 작은 내 책은 초등학교 5학년 효년이 감히 약속했던 자동차보다는 값어치가 있지 않았을까. 


  작게 남은 부채감 마저 서울에 버리고 왔다. 이제는 작가가 되겠다는 '나의 꿈'을 위해 쓴다. '쓰는 사람' 그리하여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여기부터 다시 시작이다. 내 이름으로 된 또 하나의 책.


(그럼 또 모르지. 내 차, 엄마 차 두대를 동시에 계약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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