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의 기가 막힌 특징 중에 하나가 아는 것이 나오면 꼭 아는 티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오늘을 위해 공부를 해온 것처럼 주식, 부동산, 다이어트, 자동차, 맛집까지 주제도 방대하게 알고 있어서 어떤 화두에도 꼭 지식 한 숟갈과 끝도 없는 잔소리를 퍼부어야 성이 차게 된다. 대한민국 모두가 주식에 빠졌던 2021년과 2022년 사이 나는 수많은 동생들을 붙잡고 제발 주식 공부 좀 하라고 부르짖었다. 기껏 주식 공부 좀 해서 수익률 몇 프로 올렸다고 워런 버핏이라도 된 것처럼 떠들었다. 반도체가 뭔지, 전기차가 뭔지, 자율주행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설명했고, 오늘은 K-콘텐츠가 좋네, 요즘은 2차 전지가 뜨네 같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들을 매일 9시 뉴스 앵커처럼 브리핑했다.
맛집 좀 안다는 선배는 누군가 어제저녁 A가게에서 삼겹살을 먹었다고 이야기하면 돈을 날렸다느니 삼겹살은 A보다는 B가게가 훨씬 맛있다느니 이미 먹고 온 사람한테 ‘A가게에 간 너는 바보다.’를 수십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해 줬다.
첫차를 알아보는 내가 신차로 할지, 중고차로 할지 고민할 때 어떤 선배는 뼈 빠지게 돈 벌어서 중고차를 왜 사냐며 신차를 사면 좋은 점과 중고차를 사면 나쁜 점에 대해서 비교 분석하여 나를 살살 꼬드기더니 결국 자기는 중고차를 샀다.
이 꼰대 선배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를 (웃기고 슬픈 현실이지만) 나는 이제 어렴풋이 알고 있다. 더 나은 선택을 했으면 하는 마음을 이렇게 후진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바보 같은 선택을 해왔으니, 후배 너네들은 제발 우리 같은 길을 걷지 말라는 일종의 ‘따듯한 조언’이 듣는 이 하나 없는 슬픈 메아리로 퍼진다.
그럼 후배들의 피 같은 돈을 ‘금리도 낮은 예, 적금에 썩히게 할 것이냐?’, ‘우리 후배가 더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날릴 것이냐?’, ‘중고차 사고 매번 수리비를 충당하도록 두냐?’라고 이 글을 읽는 얼굴도 모르는 선배님들이 묻는다면 대답해드리고 싶다. 그렇게 둡시다.
이 분들의 큰 문제점은 사실 아는 것을 꼭 아는 척해야 하는 심보보다, 경청하지 않는 자세에 있다. ‘적금을 계속 해지해서 고민이에요.’하며 하소연하는 후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적금보다는 주식이지.’라는 조언 공격부터 나갔을 확률이 크다. 어쩌면 그 고민을 뱉은 후배는 소비 습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를 내기가 어려워요.’라고 울상을 짓고 있으면, 어떤 점이 크게 어려웠는지, 이번 성과에서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질문할 법도 하지만 꼰대들은 그럴 시간이 없다. 왜냐하면 그 고민을 할 시간에 내가 성과를 냈던 초 대박 방법을 설명해줘야 하니까. 일단 후배님은 듣기만 하면 해결이 된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가끔 고민상담을 하는 친구들에게 모든 꼰대력을 발휘해서 해결해주려고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알려주는 해결책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저 상대방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상대방이 겪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귀를 활짝 열고 들어주는 것이 최고의 위로이자 해결책이다. 결국 스스로 (현명하든 그렇지 못하든) 선택하고 선택을 통해 배워야 한다.
그래서 요즘은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자세를 유지한다. 주식 얘기가 나오면 입을 꾹 다물고 있고, 상대방의 수백 마디 끝에 겨우 한마디를 던진다.
“버티세요.”
스스로 꼰대인 것에 반성을 하는 이 와중에도 도무지 참을 수 없이 아는 척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있다. 맛있게 반찬 하는 법, 스트레스 관리법. 요즘도 누가 입맛이 없다고 하면 마치 주문을 외우는 흑마법사처럼 ‘오이지를 총총총 썰어서, 고춧가루, 간장 조금, 참기름 한 바퀴, 깨가루 솔솔솔’이 저절로 나온다. 스트레스 관리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 방법으로 전혀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면서도 ‘잠이 보약이다.’ 같은 헛소리를 하면서 상대방 마음에 닿지도 않을 응원을 보낸다.
아는 척을 모르는 척하면서 경청하기는 생각보다 해볼 만하다. 문제는 우리 꼰대님들은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에 있다. 이 해괴한 태도는 결국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큰 화재를 만든다. ‘그때 팀장님이 아신다고 하셨..’ 아차 싶은 것이다.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지만, 생각보다 길다. 그 진리를 너무 잘 알기에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모르면 물어보고 해라.’라고 수천번도 말씀하셨던 분들도 정작 모르는 것 앞에서는 모르는 게 들킬 새라 쿨하게 아는 척을 해버린다.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모르면 묻고 배워라. 창피한 게 아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힙해 보이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 나는 신조어나 유행어 같은 것에서는 분위기 맞춰 웃는다. 모르지만 일단 눈치껏 웃어본다. 그리고 집에 가서 열심히 해당 단어에 대해서 공부한다. 웃기고 슬프지만 실화이다.
그래도 꼰대들이여. 조금이라도 모르는 건 배우는 척이라도 하자. 어차피 흔들린 동공 속에 물음표가 떠다니는 것을 나, 너, 우리 모두가 다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