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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민지 Jul 04. 2023

9시 1분 지각입니까?

늦잠을 잤다. 9시 출근인데, 9시 17분에 눈이 떠졌다. 바람은 선선했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은 윤이 났다. 분명 알람을 끈 기억이 없는데 아주 정확하게 꺼져있었다. 눈 뜨자마자 회사로 출발했을 때 아슬아슬하게 9시 턱걸이를 할 수 있다면 민첩한 몸짓으로 출근을 했겠지만, 이미 9시를 넘겼다. 재택근무라 다행인 건지, 대충 눈곱을 떼고 회사 시스템으로 접속하니 9시 20분이다. 다시 멍해졌다. 10년이 넘는 회사생활에서 4번째 겪은 지각이다.


문득 4번밖에 지각하지 않은 성실함에 감동했다가 오늘 한 지각에 자괴감을 느꼈다. 좀 늦으면 어떠나 싶지만 9시 땡 하면 경주마처럼 일을 몰아서 해야 하는데 그 출발부터가 어그러져 일이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9시 1분에 출근을 했어도 어그러졌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한 번의 지각으로 요 근래 내가 해이해진 것은 아닌지, 피로가 누적된 것인지에 대해 골똘히 반성하다가 때려치웠다. 지각할 수도 있지.


사실 사무실 근무에서 재택근무로 환경이 바뀌어도 내 아침의 루틴들은 변경되지 않았다. 기상 시간이 30분 정도 늦어졌다는 것 외에는 사무실에서와 똑같이 업무 10분 전에는 간 밤에 쌓인 메일들을 훑고 오늘 할 일들을 정리한다. 그전 30분 동안에는 책을 읽고, 책을 읽기 전에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만든다. 정주행을 하면 아아 한 잔에 정신을 깨우고, 독서로 호흡을 가다듬고, 워밍업으로 간단한 업무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글로 적으니 오피스 드라마물에서 본 ‘꼰대부장’ 캐릭터 같다.


어쨌든 내 하루 시작의 방식은 이렇게 성실하다. 그런데 요즘 출근 문화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유명한 ‘우아한 형제들’의 사규 첫 번째는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이다. 이 사규가 처음 인터넷을 통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들을 댓글로 남겼다. 9시 1분은 9시가 아니지만, 6시 1분은 6시인 아이러니한 상황들을 많이 겪어본 사람들의 불만과 9시가 되기 10분 전에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들이 키보드 전쟁을 치렀다. 정시 출근과 미리 출근에 대해서 2030 세대들과 4050 세대들의 시각 차이가 극명하게 나뉘기 시작했다.


30대인 나의 입장은 9시 정시 출근과 미리 출근 모두 이해가 간다. 10분 더 업무 준비를 한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다. 9시에 일을 시작해도 업무에 지장이 없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에는) 10분 먼저 업무 준비를 하면 확실히 일이 더 잘 된다. 9시에 허겁지겁 사무실에 도착하면 미리 스케줄 되어 있는 일들을 퍼즐처럼 맞춰서 처리하기가 좀 버겁기도 하다. 물론 일의 우선순위가 있고 순서에 맞게 처리하다 보면 오후에 여유로울 때도, 남은 일들은 익일로 넘길 때도 있다. 사람마다 업무 성향이 다르기에 충분히 다 이해가 된다. 그러면 미리 출근하라는 꼰대님의 조언보다는 정시출근을 이해해 주는 너그러운 선배가 낫겠지 싶다.


더 너그러워지자면 9시 1분 출근도 물론 좋다. 이번 지각처럼 9시 20분 지각 출근도 몇 년에 한 번 할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근데 문제는 지각마니아들에게 있다. 이들에게 9시 20분은 9시와 같은 개념이며, 각자의 사정으로 격렬한 일정들을 보내고 오전 하루를 하품과 한숨으로 죽치는 데에 있다. 이들의 자기 합리화는 놀랍고도 가볍다. 상습적이다 못해 뻔뻔한 태도를 보고 있자면 기운이 다 빠진다. 협업의 의지가 증발하는 느낌이다. 그들의 인생 시계를 딱 30분만 앞으로 돌려주고 싶다. 아니다. 그러면 이들은 10시에 나타날 것이다.


모두 똑같이 하루 24시간을 받지만, 사람들마다 24시간을 다르게 사용하듯이 ‘약속 시간의 융통성’이라는 논쟁거리도 수십, 수백 년간 반복되는 것 같다. 출근시간의 개념도 공동체마다 다르겠지만, 협의된 약속하에서는 9시 1분이 9시가 아니라면, 9시 정시출근을 해야 좋겠고, 9시 언저리에 모이자고 약속했다면 눈치껏 사람들이 많이 오는 시간에는 회사에 골인하는 게 상도에 어긋나지 않은 것 같다.


괜히 지각 한 번으로 너른 마음가짐과 공동체의 상도까지 꺼내는 것은 역시나 스스로 반성하기 위함이다. 최근 후배 한 명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늦잠을 자서 9시 20~30분에 출근하는 통에 심기가 굉장히 거슬리던 찰나였다. 건방지게 심기가 거슬린다는 표현을 쓰는 것부터 반성하겠다. 후배의 사정이 있겠지라며 너그럽게 넘어가는 선배가 되어야지. 이 시기가 지나면 다시 또 꼬박꼬박 9시에 출근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반성을 마친다.


P.S 만약 내가 지각마니아라면 부탁드린다. 몸을 낮추고 죄송하다는 아우라를 뿜으며, 숨을 헐떡이며 사무실에 들어와라. 책상에 앉아 1시간은 한숨도, 하품도 쉬지 마라. 최대한 지금부터라도 부서원들과 협업하겠다는 생각으로 앉아있어라. 꼰대 피가 섞여서 아직은 이해가 어렵지만, 마흔이 넘으면 지각마니아들도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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