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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민지 Jun 27. 2023

고기는 왜 저만 굽죠?

  대학생 시절 당연 꿀 아르바이트를 고르라면 학원 강사였다. 시원하고, 따듯한 곳에서 일하고, 적당히 월급도 좋은 편이라 나는 이 일이 꽤 마음에 들었다. 학원 회식이 있던 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고깃집에 갔다. 세상에나 삼겹살을 마음껏 구워 먹어도 된다니 어른들의 회식이란 너그럽게 베푸는 은혜가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회식을 하자고 하면 모두 싫어하던데, 회식은 회사 최고의 복지였다.

  선생님들과 등하원 기사님들까지 두런두런 앉아 고기를 구울 때 눈치껏 집게를 집어 들었다. 그때 선생님 한 분이 집게를 뺏으시면서 고기 굽지 말고 맛있게 먹기만 하라고 하셨다. 그래도 N년차 아르바이트생의 신분으로 ‘넌씨눈’의 단계는 넘은 고수였기에 맛있게 먹다가 테이블에 잠시 방치된 집게를 들고 고기를 열심히 구웠다. 그 선생님이 조용하게 말씀하셨다. ‘나중에 다른 회사를 들어가도 고기 잘 굽는다고, 굽겠다고 하지 마세요. 그럼 앞으로 회식 때마다 고기만 구워야 해요.’ 고기 굽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심지어 나는 ‘육고기 마스터’였다. 숯이든 철판이든 불만 있으면 고기를 야무지게 굽는 스펙을 소유한 능력자였다. 친구들과 고기를 먹어도, 가족들과 고기를 먹어도 나는 연신 땀을 뻘뻘 흘리며 맛있게 고기를 구웠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굽는 고기가 맛이 없기도 하고, 나만 아는 최상의 뒤집기 타이밍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식성에 맞게 고기를 작게, 크게, 촉촉하게, 바삭하게 굽는 재미도 좋아했다.

  그러다 회사에 입사했고, 늘 그렇듯이 나는 회식자리에서 마스터 셰프처럼 고기를 구웠었다. 어느 정도 직급이 올라 우리 팀에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진 그 시점에 나는 자연스레 집게를 놓게 되었다. 고기를 굽다 빈정이 상해서다. 말 그대로 삐졌다. 여느 때처럼 삼겹살집에서 회식을 했고, 삼삼오오 테이블을 잡고 앉기 시작했을 때 상급자님이 들어오셨다. 뺑 둘러보시더니 ‘민지 옆에 앉아야지. 민지가 고기를 잘 굽잖아.’하며 자리에 앉으셨다. 그때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다. 늘 내 역할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날 그 자리에서 나만 고기를 구웠다. 선배고, 후배고 할 것 없이 판에 깔린 고기만 주워 먹기 바빴고, 내 입에 고기가 들어가는지 땀방울이 들어가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누가 칼 들고 고기 구우라고 협박했나? 나는 그날 처음으로 이전 학원 선생님 얼굴을 떠올렸다. 아 그런 말씀이셨군요.

  그렇게 고기를 굽고, 지지고, 볶으러 회식을 갔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먹으러만 갔다. 집게를 안 잡고 불판만 뚫어지게 보고 있으면 알아서 고기가 익어 있었다. 상추쌈을 곱게 싸서 한 입 먹고, 소주를 목구멍으로 털은 후 야무지게 된장찌개에 밥까지 말아먹고 집에 왔다. 그래 나 때는 다 막내가 구웠어.

  요즘은 회식 문화가 다양해지기도 했고, 간소화되기도 해서 마냥 저냥 고깃집만 가던 때와는 또 다르지만, 고깃집만 가면 집게는 자체 모자이크처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안의 작은 꼰대를 만났다.

  가족들과 저녁으로 고기를 구워 먹으려고 오랜만에 만난 날. 삼겹살과 항정살을 사러 정육점에 왔는데, 웬일인지 가는 정육점마다 항정살이 없었다. 엄마는 다른 고기를 더 사라고 했지만, 하필 그날이 항정살이 본격적으로 당겨버린 날이라 다른 정육점으로 또 갔다. 드디어 원하던 항정살을 손에 쥔 순간, 엄마는 이 많은 고기를 누가 다 굽냐고 했을 때, 누가 굽기는 바로 내가 굽지 하며 방긋 웃었다. 그러면서 자랑이랍시고 “나 이제 회사에서 연차 좀 차서 회식 가면 고기 안 굽는다?”하며 농담을 던지고는 운전하는 동안 내 안의 꼰대님께 인사를 드렸다. ‘부쩍 꼰대력이 세지셨군요.’

  회식이란 무엇일까? 고깃집에서 고기를 굽는 사람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서로 집게를 돌아가며 고기를 굽는 최적의 시간은 얼마일까? 고기 구울 때 고기를 흑화 하는 흑마술사들을 위한 고기 강의는 없을까? 고기 굽는 것 하나에 나는 왜 이 원고를 쓰며 큭큭 거리다, 끙끙 거리는 걸까.

  결론은 이렇다. 회식은 조직구성원이 모여 식사를 하는 문화이고, 고깃집에서 고기를 굽는 사람이 정성껏 고기를 굽는다면 쌈이라도 하나 싸주던지, 앞접시에 고기를 채워주던지 챙겨주자. 서로 집게를 돌아가며 고기를 굽는 최적의 시간 따위는 없겠지만 당신의 눈치가 ‘이쯤 하면 잡아라’ 한다면 그때는 상하관계를 떠나 망설이지 말고, 눈치 보지 말고 집게를 잡자. 나는 고기를 구웠다 하면 숯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다 구워진 고기를 사이드로 밀어주고, 새 고기를 올리는 시늉이라도 하자. 그리고 고기의 육즙이 살아있다느니, 근래 먹은 고기 중에 제일 맛있다느니 하는 담백하면서 적절한 칭찬도 섞어주자.

  이렇게 해묵은 섭섭함을 글로 풀고 나니, 당장 내일 회식이 걱정이다. 소고기라는데 오랜만에 우리 후배님들 고기 맛있게 구워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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