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ungmom Jan 28. 2024

4년 만에 하는 운전

내가 운전을 좋아 하나 보다.

2009년 12월에 내가 LA를 떠나고 아들이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차를 바꾸기 전에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와서 혼자서 한인마트도 다녔는데

2013년 차가 바뀌어 차체가 저번 차와 달리 조금 커지고 곡선이 있어서 

도로에 주차를 많이 하는 좁은 길은 꺼려하면서 운전하는 일이 뜸해졌다.

아들이 동부로 떠나 있는 동안에는 정말 필요할 때만 운전을 했었는데

기분 탓인지 앞쪽으로 있는 곡선에 불편하다는 생각으로 운전을 했었다.


아들이 동부에서 돌아와 있는 동안에는 내가 운전을 한 적이 없었다.

아들의 운전이 많이 좋아지고 나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믿고 맡겼는데

코로나로 부산에서 지내면서는 아들도 나도 운전할 기회가 없었다.

그랬던 것을 이번에 와서 약 4년 만의 먼지를 씻어 내고 차를 점검해서 

등록증을 받아 아들이 운전대를 잡았는데 나는 엄청 많이 불안했다.


아들도 약 4년 만에 하는 운전을 걱정해서 한적한 도로를 이용했는데

젊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몸이 기억을 한다며 아들 자신도 신기해했다.

아들이 예전 그대로의 실력으로 운전하는 것에 몸이 배운 것은 다르다며

며칠 만에 프리웨이도 달리며 그동안 답답하게 살았던 시간을 해결해 주었다.


Lyft 택시를 불러 아파트 현관에서 기다리다 고맙다고 하면서 타고

딸과 둘이서 들을 수 있는 만큼만 식품을 사서 마트 앞에서 기다리고는

내리면서 트렁크를 열어 달라며 불편하게 만든 것에 미안해지는 마음이

그저 돈을 내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미국에 와 처음 운전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엄청 힘이 들었었다.

면허증을 받고도 긴장감을 내가 스스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안 했던 운전을

미국에 오니 아이들 학교가 걷기에는 멀어서 할 수 없이 운전을 했는데

그런 이유로 운전을 시작하고 매일 조금씩 하게 되니 실력이 늘어났다.


그때 아이들의 학교 문제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나는 운전을 하지 않고

운전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만 터득하면서 편하게 지냈을 것 같은데

운전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니 운전이 재미있기는 했었다.

이렇게 만든 나의 운전 경력은 10년간 16만 마일이나 되었고

긴 운전에 긴장은 있었지만 나름의 운전 기술이 있다며 좋아했었다.

그랬던 운전 실력을 거의 10년간 제대로 써 본 적 없이 살고는

이 나이가 되니 운전도 기술인데 이대로 버리는 것은 아깝다는 생각에

살짝살짝 운전을 다시 해야 한다고 내가 나를 부추겼다.


아들이 운전의 공백이 없던 것처럼 운전을 하니 공항도 갈 수 있겠다고

공항 갈 택시를 타면 세울 곳이 마땅하지 않은 공항에서 언제나 급하게

도망을 가는듯한 쫓기는 모양으로 택시를 내렸던 기억으로 좋지 않았는데

공항 주차장으로 간다면 편할 거라고 생각만으로도 느긋하니 좋았다.


그런데 좋은 것은 거기까지고 그 차를 가지고 오는 일은 어떻게 하는지

6년은 드문드문 운전을 해 봤고 거의 4년은 운전을 한 일이 없는데

갑자기 아파트 주변도 아니고 공항에서 차를 끌로 온다는 것이 가능한지

아이들은 특히 아들은 예전 실력이 있으니 운전대를 잡으면 할 거라고

자신도 그렇게 멀쩡하게 운전을 할 줄은 몰랐다면서 된다고 믿으라고 했다.


긴 시간의 공백에 내가 운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고민을 했다.

아들이 떠나고 딸과 같이 오면서 내가 떨면은 딸은 얼마나 공포스러울 건지

농담 삼아 아들은 뉴욕에 도착했는데 우리는 집에 못 오고 헤맬지도 모른다고 하니

그땐 차를 버리고 Lyft 택시를 타면 된다고 하는데 도움이 안 되었다.


차가 멀쩡해지고 아들의 운전 실력이 예전과 같아지니 욕심이 났는지

공항을 차로 가자고 마음먹고는 며칠을 마음 졸이면서 갈팡질팡했었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닥치면 운전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다가 

이런 불안한 일을 꼭 해야 하냐고 그냥 택시를 타자고 마음을 접었다가

이대로 운전을 놔 버리면 더 나이가 들어 운전은 정말 어려울 거라고

용기를 내야 한다고 이번이 좋은 기회 같으니 꼭 해 내자고 다그치다가 

이건 생명과도 관계가 있으니 호기로 운전대를 잡는 것은 아니라며

엄마가 되어서 이런 모험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나무라기도 했었다.


떠나는 전날부터 가져갈 것을 챙기며 여행 가방의 무게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파무침에 삼겹살 구이도 해 주며 정신없이 바빴다.

그리고 떠나는 날에는 더 바쁘게 시간에 쫓기며 아침을 차려주고

10시에는 나가야 한다고 했던 것을 10시 20분에 현관을 나서면서 

내 마음에 있던 불안은 마음 구석에 처박혔는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뭘 타고 갈지에 대한 갈등이 너무 심해서 떠나는 날 아침에 정하지고 했는데

아들은 벌써 차 열쇠를 들고 지하로 가는 엘리베이터 보턴을 누르고 있었다.

뭔가 아이들에게 말을 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득했는데 시간이 촉박하고

운전을 하기 시작한 아들에게 마음불편한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었다.



공항에서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니 딸아이가 우리도 가자고 하는데

그제야 내가 운전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딸의 얼굴을 보면서

내가 망설이거나 두려워하면 이 아이는 공포에 가깝겠다고 하는 생각에

그냥 운전석에 앉아서 공사 중인 공항의 길을 구불구불 따라 서행을 하다가 

큰길로 나왔더니 매번 가던 길이 아니어서 딸에게 물으니 반대방향이라고 했다.


덕분에 주택가로 돌면서 한바탕 웃으면서 여유를 가지게 되었는데

아직 이륙하지 않은 아들에게 딸이 우리의 어설픔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신기하게도 내 다리는 알아서 엑셀과 브레이크를 구분하고 깜빡이도 켰는데

아들이 운전을 잊지 않고 해 내는 것에 아직 젊고 남자라서 그런가 했더니

나도 그럭저럭 운전이 되어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무사히 도착을 했다.


딸에게 내 운전을 물었더니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다고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4년을 방치한 차에 시동을 걸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