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ungmom Aug 09. 2024

오래 살던 아파트의 가치

익숙함이 새것을 이긴다.

아들은 지은 지 4년 된 건물에서 살게 되었다.

미국에서 이렇게 새 건물에 살기는 처음이다.

어바인에서 10년 살았던 집은 거의 70년이 지났다고 했었고

LA 아파트는 주변보다는 나중에 지어져 새것이라고 했는데

40년이 다 되어 가는 그래도 규모가 조금 있는 건물이다.


어느 것도 한국 아파트나 오피스텔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인데

Jersey City의 건물은 최근 것이어서 그런지 20층이 넘는다.

딸이 살고 있는 LA 아파트는 4층이지만 엘리베이터가 있고

1층에 작은 로비도 있고 사무실에 소포를 받아 놓는 방도 있다.


처음 뉴욕에 가서는 적어도 이 LA 아파트 정도는 되겠지 했다.

뉴욕이라고 봤던 사진 속의 집들이 4층정도의 건물들이어서

여기처럼 계단이 엉성해도 엘리베이터는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아들이 1년을 지낸 4층의 건물에는 그 엉성한 계단만 있었다.


아들 말대로 집세가 싼 이유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하더니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납득을 하면서 그래도 이건 아닌데 했었다.

아들은 집세를 500$ 더 올려 찾으면서도 구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비싼 뉴욕을 벗어나니 조금은 돈의 가치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찾아낸 Jersey City의 건물은 거의 새것이었는데

처음 로비를 지나면서 집의 현관을 열면서 세탁기가 집안에 있다고

바닥에서 천장까지 전면이 유리창인 것에 딸과 같이 감탄을 하면서

부럽다는 딸의 표정에 눈치를 보면서 아들에게 엄지 척을 했었다.


그런 첫날의 감탄은 딸이 LA로 떠나고 매일매일 집안 정리를 하면서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일단 뭐든 내 키와 안 맞았다.

LA 아파트도 내 키와 맞지는 않지만 그것보다 뭐든 다 높았는데

샤워기를 고정시키는 것이 힘들어서 뽑아 쓰지를 않았다.


싱크대는 편편한 흰 대리석 같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보기에는 엄청 산뜻했지만 물이 고여있는 것이 잘 안 보이고

그 물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도 나중에 느끼고는

타일로 되어 있는 LA 아파트의 싱크대는 턱이 있다는 것에

딸아이에게 불평을 했더니 타일로 된 싱크대가 더 문제라고 했다.


LA 아파트는 가스레인지인데 이 새 건물은 전기로 되어 있다.

언젠가 새로 짓는 집에는 가스를 쓰지 못하게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전기가 코일이 아닌 것은 다행이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배가 고플 것 같을 때 시작을 해야지 고프고 나서 시작하면 안 되었다.


이런 모든 것도 어쩔 수 없이 살다 보면 받아들이게 되겠지 하는데

LA 아파트에 와 지내니 마음을 뜯어고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았다.

미국에 와서 장만한 24년 된 ikea 가구들과 세월의 물건들이 가득해

이런 오래된 것이 레트로라는 것이 아닐까 하니 잔부 달리 보였다.


레트로라는 수식어만 붙이면 가치가 올라가고 분위가 달라지는데

눈을 감고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낼 수 있는 익숙함에

그런 집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삐걱거리는 손잡이의 불편함도

아들집의 묵직한 이중창에 비해 꼭 들어맞지 않는 낡은 창문에도

이제까지는 오래된 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다른 가치가 있었다.


이번에 와서 느끼는 기분은 정말 편안하다는 것이다.

그게 집이 해 주는 최고의 경지가 아닌가 하니 그걸 이제야 느낀다며

그동안 느끼지 못한 것을 떠나는 날까지는 푹 즐겨보기로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이 Central Harlem을 떠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