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 정해준 3번의 아파트로
아들은 Central Harlem에서 일년을 지내고 이사를 했다.
나는 뉴욕의 생활이 다 이런 것이라고 체념을 했었는데
아들은 생활 방식이 너무 달라 힘들어 하더니 일자리를 찾고
좀더 여유가 생긴 수입으로 혼자서 지낼수 있는 곳을 마련했다.
거의 반년을 찾더니 대학교에서 한번의 전철로 갈 수있고
역에서 걸어 10분이내의 거리로 깨끗한 건물에 방에 세탁기도 있어
딸아이도 부러워하는 그런 곳을 아들이 찾아내고 계약을 했다.
Central Harlem에서의 월세는 1700$이었다.
이곳은 쉐어하우스 였는데 전기나 수도등 따로 내는 것이 없었다.
받는다는 월급에서 세금을 빼면 얼마가 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뉴욕의 세금은 LA보다는 높다는 말에 월세를 줄여야 했다.
그런 계산으로 선택한 방을 처음 봤을때의 내 표정이 엉망이었는지
Jersey City를 처음 들린 날에 아들은 내 표정이 밝다고 했다.
Jersey City에는 3월 딸아이와 같이 4일간 뉴욕에서 지내며
건물 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역이나 주변은 한번 봐야 한다고
딸과 같이 다녀왔는데 정말 허허벌판에 지어 놓은 것 같은
그런 곳에 건물들이 있어서 조금은 허전한게 쓸쓸해 보였다.
Central Harlem은 복닥거리는 것은 모두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서 건물을 나서면 홈리스들도 마약냄새도 진동을 했지만
걸어서 5분안에 유명한 마트는 모두 있었으며 식당도 많아서
먹는 것은 돈만 있으면 뭐든 해결이 되었던 환경이었다.
이사하고 싶다는 Jersey City에 있는 그 건물 주변에는
유명한 마트는 하나도 없으면서 햄버거 간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역에서 나와 아파트로 가는 길에 마트가 오픈을 했다는데
들어가보니 입구에 라면과 김이 있었고 김치가 진열되어 있어
주인이 한국인인가 하면서 얼마나 반갑고 안심이 되었는지
딸과 주변을 둘러 보면서 깎아 버린 점수를 다시 후하게 쳐주었다.
이렇게 주변을 보고 아들과 장소에 대한 결정을 했다.
맨하탄에 있는 대학의 주변은 도저히 어찌해 볼 엄두가 안되어
쭉 위로 올라가서 Central Harlem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때도 강을 건너 브루클린이나 뉴저지로 갈까 하는 아이에게
강 바닥을 건너야 하는 부담이 크다고 내가 겁을 내며 말렸었다.
그런데 강바닥보다 힘들다고 하니 할 수 없이 강을 건너기로 하고
딸아이와 강바닥을 지나는 전철을 타면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내가 강을 건너지 못하게 집세를 보태어 줄 수도 없으면서
아들에게 마음의 부담만 커지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허드슨 강을 지나서 아파트의 썰렁한 주변을 보고 부산에 와서
계속 아들과 어느 건물로 어떤 집으로 할건지 영상 통화를 했는데
같은 회사에서 역 주변으로 지어 놓은 아파트 빌딩이 4개가 있고
그 건물은 거리의 이름으로 되어 부르려니 어려워서 번호를 붙였다.
아들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으며 집세와 조절을 했는데
1번은 역과 가장 가까워서 좋지만 면적에 비해서 집세가 높고
2번은 1번 건물의 뒷쪽에 있는데 면적도 집세도 적당해서 그런지
우리가 Jersey City로 가자고 마음을 굳이고 나니 빈집이 없었다.
3번은 2번 건물의 뒷쪽인데 그러니까 역에서 가장 먼곳인데
그래서인지 집세는 가장 낮은편으로 세탁기가 들어 있었다.
4번은 역을 중심으로 123번과는 반대 쪽으로 걸어야 하는데
한인 마트 같은 것이 123번 쪽으로 있어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들이 아파트 사무실에 예약을 해서 집을 보고 와서는
1번은 너무 집이 좁다고 3번은 집은 넓어 좋지만 가장 멀었다고 하더니
이렇게 걸을거면 4번도 좋지 않겠냐고 해서 그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찬찬히 보니 방의 구조도 월세도 적당하니 마음에 들어 4번으로 하자니
아들은 가서 봐야 한다고 하기에 그러라고 하고는 마음을 굳혔다.
당장 아들은 방문 예약을 했는데 주말이 지나야 해서 며칠 후에 갔더니
원했던 집은 선약이 있다며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은 집을 봤다고 했다.
뉴저지로 결정하는 것도 엄청 힘이 들었는데 이런 상황도 오는구나 하니
정말 인생은 쉬운 일이 없구나 하면서 3번에 가라는 운명인것 같다는데
여기서 짜증을 내면 아들만 힘들어 질 것 같아서 좋은 점만 찾아내자고
덕분에 가장 싼 집세를 억지로 내게 되었다고 부자가 되겠다고 했다.
그렇게 3번 건물로 정해지고 6월초부터 비어있는 방에 바로 들어가야 하는지
6월 집세는 벌써 Central Harlem에 지불했으니 7월부터 살고 싶다고 해
아들이 이렇게 야무졌었는지 신기해서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웃었다.
Jersey City의 3번 집은 그래도 된다면서 이사는 미리 해 둬도 된다고 해서
6월 29일 이삿짐을 호텔로 가져다 놓고 7월 1일까지 있으려고 했는데
29일 이삿짐을 Jersey City 3번 건물에 바로 가져다 둘 수 있었고
그때 처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아들의 방을 구경했는데 너무 좋았다.
아들은 이번의 경험으로 자신을 많이 믿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