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공간이 완성이 되었다.
LA 딸의 아파트에 와서 뉴욕행 비행기를 타기 전 10일간
아들의 이사를 도와야 한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긴 비행도 피곤했지만 흔들리는 비행기는 감당이 안되어
멀미가 나에게서 빠져나가는데 거의 일주일이 걸렸다.
아들이 유팬을 다니면서 썼던 엄청 큰 붉은색 가방에
일본에서 미국으로 올 때 썼던 커다란 헝겊가방 3개와
이제까지 방이 좁아서 가져가지 못했던 겨울옷들을 넣어
딸과 같이 LAX 공항으로 가면서는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두 번이나 뉴욕 맨해튼에서 묵었던 호텔에 10박을 예약했는데
딸아이는 10일이나 있어야 하냐고 동생의 아파트에서 지내자고
너무 많은 지출이라고 5일까지는 틈만 나면 이야기를 했지만
생각보다 일이 많다는 것에 아무 말도 없이 지내다 LA로 갔다.
딸이 떠나는 그날에는 호텔을 나와 아들의 거처로 옮길 거라서
그날에 맞춰서 아들과 딸이 ikea에서 배달된 가구를 조립했는데
하루 꼬박 일을 하면 다음날에는 다시 아파트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잠은 잘 수 있도록 부탁했더니 가구를 완성해 주었다.
꼭 아들의 아파트에서 20일간을 지내고 LA로 건너왔는데
첫 주는 1년간 좁은 공간에서 살아 그런지 모든 물건이 찝찝해서
세탁기를 돌려도 되는 것은 모두 빨고 건조를 시켰는데
그동안 늘어진 것들이나 냄새가 베인 것은 모두 버렸다.
2번째 주는 물건을 아들의 성격에 맞게 넣어 두는 일을 했다.
옷장에 두고 쓸 상자와 찬장에서 쓸 상자들을 고르는데
공간을 cm로 재어서 inch로 표기가 되어 있는 것을 찾으려니
엄청난 인내가 필요했는데 오랜만에 머리를 썼던 것 같다.
마지막 주에는 아들과 한인마트에 가서 모든 조미료부터
커다란 웍 같은 프라이팬에 양푼까지 사면서 마트를 뒤졌는데
해 주고 가려고 김치도 큰 통으로 한통을 사고 삼겹살도 사서
김치찌개등을 만들어 먹이면서 남은 것은 얼려 두었다.
주문한 상자들이 도착하면 다시 꺼내어 정리를 해 두면서
사 온 재료는 다 만들어 먹여야 한다고 안달을 했었다.
가득했던 작은 냉장고가 널널해지고 더는 만들 것이 없어지니
정신이 차려졌는데 그게 떠나기 이틀 전으로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부산에서 딸과 영상통화로 뉴욕행 왕복 비행기표를 예약했었다.
6월 29일이 토요일이어서 아들이 그날 짐을 옮겼으면 했는데
30일 오전 10시까지는 비워달라는 문자를 받았다고 해서
29일 새벽에 도착하도록 잠은 비행기 안에서 자도록 했었다.
아들에게 호텔에서 10박을 하고 나는 7월 30일에 떠난다고 하니
아들이 영상통화에 눈을 크게 뜨면서 그렇게나 오래 있냐고 했다.
살짝 이 의미가 뭔가 하면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내가 해 주고 싶은 것은 하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이렇게 떠나는 날짜가 고정이 되어 있으니까 매일이 소중했는데
그저 생활하기 편한 상태로 만들어 주고 가게 되길 바랐다.
2주일이 지나 정리가 끝나고부터는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줬는데
아들은 LA집과 같은 방식으로 되어 있네 하더니 바로 적응을 했다.
매일 조금씩 부실해지는 몸은 그다음에 추스르자고 하면서
그래도 너무 힘이 들 때엔 얼른 떠나는 시간이 오기를 바라다가도
해 주고 싶은 좋은 생각들이 떠오르면 컴퓨터를 뒤져가면서
잠시라도 늘어져 있는 내가 나를 미워할까 봐 일어나 앉았다.
이렇게 하다가 몸이 망가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이런 삐그덕거리는 몸도 움직이면 쓸만해지는 것에 고마워했다.
딸이 LA로 떠나고 혼자 가방을 들고 아들의 방에 들어와서부터
떠나는 날까지 내가 해 주고 싶었던 것은 모두 다 해 놓았다.
이런 일이 나에게는 정말 재미있는 일인 것 같았다.
한 사람의 사는 공간을 모두 내 의지대로 만들어 둔다는 일이
이게 내 아이의 공간이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신나게 했던 것 같다.
이제 아들과 나의 대화에 이 공간은 많이 등장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