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어 봅니다.
혼자가 되어 살아가는 시간이 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내가 잘하는 것을 했는데 그걸 읽어 주는 사람들까지 있다면 더욱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기라는 것은 계속 썼지만 일기에 쓰기는 힘든 기분에 대한 것은 따로 노트를 장만해서 쓰기 시작한 것이 대학 때부터였다. 한참 나를 찾아가는 시간에는 그 공책은 눈물에 분노에 막 날아가는 글씨가 한 페이지를 가볍게 넘겨 썼는데 그런 시간이 나를 지켰다.
그 어둡고 무거운 그 노트들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를 알게 해 주었는데 거기서 해방이 되고부터는 예쁜 끈으로 묶어서 눈앞에서 치웠다.
그 후 나는 더불어 성장하는 아이들과 모르는 나라에서 투쟁을 했는데 그 시간에도 일기는 썼지만 감정의 노트가 꼭 필요하지는 않았는지 흐트러진 글씨로 써 둔 종이들만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많이 달라져 가고 있었는지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더는 쓰지 않아도 나를 잃어버리지 않을 힘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았다.
아이들과 떨어져 살아야 하게 되었을 때는 내가 가져야 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그걸 인정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이 상태를 내가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암담했고 그렇다고 받아들이자니 떨어져 나가는 내가 너무 불쌍했다. 그런 시간 동안 아이들이 같은 대학에 다니게 되어 그걸 위안으로 그래도 최악은 아니라고 같이 살던 집을 학교 가까운 곳으로 옮기고 내가 없는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집안을 정리해 두었다.
일단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내 시간에 대한 것은 뒤로 미뤄뒀는데 그러면서도 혼자가 되는 시간은 어떻게 할 건지 너무 망막했었다. 내가 봐도 이 정도면 만족이 된다는 수준으로 아이들이 살아간 공간을 만들어 놓고 떠나면서 내 걱정을 하기 시작했는데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떠 오르는 것이 없었다.
혼자가 되는구나 하면서 비행기 안에서 불안해했던 것이 부모님의 집에서는 내가 이 집을 떠나기 전보다도 더 못한 그런 신분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걸 스스로 알게 되기 전까지는 같이 살았던 사람의 집으로 가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라고 믿었다.
그래도 점점 심해지는 차별과 무시에 나는 나의 존재가 어디쯤에서 굴러다니고 있는지 알게 되었는데 이건 아니라고 그동안에 다져진 나는 덕분에 용기가 생겼는지 박차고 나와서 같이 살았던 사람에게 집을 쪼개자고 재안을 하고 답을 듣기도 전에 일을 진행시켰다. 아이들과 썼던 가구들을 가지고 이사를 하고 같이 살았던 사람의 집은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옮겨서 혼자서 사는 것을 원했던 데로 집 정리를 해 뒀다.
이렇게 시작한 나의 완전하지 않은 독립은 반의 성과는 있었는데 혼자서도 충분하게 잘 지낼 수 있는 소질이 있다는 발견이었다.
그때부터 딱 5년을 나는 내가 좀 더 단단한 내가 되길 바라면서 책을 많이 읽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떤 심리인지에 대해 이렇게 인연을 끊어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나의 행동에 힘을 실어 주려고 노력을 했었다.
그렇게 조금은 어둡게 차분하게 혼자가 되길 바라면서 나를 바라봤는데 그게 도움이 되었는지 다시 밝은 세상 속으로 나가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래서 도시로 이사를 하면서 적극적으로 살아 보자고 나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나를 속박했던 주변이 아직은 버티고 있지만 이젠 내가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한 번 두 번 입으로 확실하게 내뱉고 나니 나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떠나 와서 내가 나로서 설 수 있게 된 것이 2015년이었다.
그 덕분일까 나도 세상이 움직이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걸을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긴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그런 눈으로 보는 사람만 주변에 있지 않다는 것을 생각할 줄도 알게 되었다.
이런 걸 알게 되니 불안했던 혼자의 시간도 여유로운 시간이라고 느껴지더니 그 시간을 잘 쓰는 방법도 하나둘씩 떠올랐다.
원하던 그런 내 공간을 만들고 나니 시간은 더욱더 길게 많이 주어졌는데 그런 시간을 잘 쓰지 못한다면 나는 예전의 나보다 더 한심한 내가 될 것 같았다. 어떻게 이루어낸 이 시간의 나를 다시 허접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찾던 내에게 브런치가 나타난 것이다.
아이들의 나이만큼이나 남은 긴 시간을 잘 버텨야 내가 찾은 나를 살리는 일이라고 내가 살아 있다는 것에 힘이 되는 것을 찾았는데 그게 브런치였다.
그러면서 대학 때 쓰던 노트들이 생각났고 그 어두움을 모르는 사람들까지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고 첫 글을 쓰기 전에 나와 약속을 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나를 읽어 보려고 하는 것인데 남들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니 없는 마음의 여유도 챙겨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내 나이가 되어 한번쯤 읽어 준다면 하는 기대로 조금은 살아가는 시간이 즐거워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썼다.
그렇게 써 가면서 2025년이 된 지금 나는 내가 많이 밝아진 것을 느낀다.
단어의 선택도 표현도 이게 정말 나였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유쾌해진 것 같아 뿌듯하다. 거기다 이 나이에 글로 소통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혼자는 아니라고 모두들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든든하다.
덕분에 이렇게 잘 지내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