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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진을 정리하는 기준

이번엔 죽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

by seungmom

내 사진 첩으로 3권이 있다.

이것은 내가 한국을 떠나면서 가지고 있던 사진들을 버리고 버려서 만든 앨범이다.

그때의 기준은 일본에서 지내면서 내가 나 인 것을 잊지 말자고 딱 그 의미의 것들로

내가 커 온 기록과 나를 귀하게 여길 수 있는 그런 것으로 그 외의 것은 모두 버렸다.


지금도 보면 돌사진부터 입학과 졸업을 한 내가 뿌듯해 할 수 있는 것이 중점인데

그러면서 얼굴 표정이 내 마음에 들면서 사진의 분위기가 귀하게 컸다는 것이 보이는

그래서 가족들의 모습까지 신경을 쓰며 가장 아름답게 멋지게 나온 사진들로만 골랐다.


덕분에 나는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대학까지 나온 여자라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는데

일본에서 조선인이라고 마구 헐뜯기면서 짓밟히는 그 시간의 방패가 되어 주었다.


미국으로 갈 때엔 아이들이 쓰던 것들을 알뜰하게 모두 챙겨서 가져가는 것으로

쓰던 물건을 보면 안정이 될 것 같아 다시 사는 것보다는 나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미국에 갔더니 학용품들이 너무 투박해서 비싼 운임비 낸 것이 아깝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들의 물건을 쓸어 담아 보내면서 아이들 사진이나 내 사진은 두었는데

왠지 가져가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면서 일본보다는 미국생활이 나을 것 같았다.

설마 미국에서는 뒷퉁수에 조선인이라고 돌을 던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는데

미국에 살고 있던 일본인도 일본에서 살기는 힘들었다며 잘 왔다고 하는 말에

일본에서의 시간이 담긴 사진들이 그렇게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사진들을 일본으로 가져가야겠다고 정리할 때의 심정은 정말 비참했다.

가져갈 사진을 고르면서 나만 떨어져 나가는 유배를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고국에서의 시간이 다시는 없을 것 같아 울면서 지나간 시간에 매달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모자라고 겁이 많았던 것 같다.


그 시간에서는 미래에 내가 부산에서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해 봤을까

조금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나는 그저 일본에서의 하루하루가 버겁기만 했는데

내가 만든 계획도 아닌데 부산에 주거지가 생기고 살아가도록 주변이 바뀌었다.


내 나라에서 살아서 그런지 계속 긴장하던 그 일본 생활에서 많이 벗어났다.

그래서인지 오래 전의 내 물건도 꺼내 볼 용기도 생기고 보면서도 덤덤하다.

그 덤덤함으로 사연이 많아 무거웠던 내 사진들을 제대로 볼 수 있었는데

나를 위했던 역할은 다 끝났다는 것과 내 나이가 가지는 의미가 보였다.


그러니까 이 3권의 사진첩은 그 역할을 잘한 것으로 사진 정리 기준도 맞았는데

이 나이가 되고 아이들이 성인이 된 이 시점에는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내가 사라지고 난 후의 시간을 생각하며 정리를 해 볼까 한다.

내가 가장 빛났던 젊은 시절의 웃는 얼굴도 그저 한 장 정도면 충분할 것 같고

나의 어린 시절의 사진들은 정말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잘 정리를 해서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하려고 한다.

나는 아버지의 몇십 년분의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느낀 것이 너무 많았다.

어떤 것이 자식에게 의미 있는 사진이 되는지 아버지 덕분에 공부를 했는데

그걸 기준으로 내 사진도 정리를 다시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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